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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리라 Aug 11. 2021

속상했지.. 괜찮아? 이말이 그리 어려운가요

남편에게 듣고 싶던 따뜻한 말 한마디

예전에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다.

2013년겨울에 했던 드라마인데, 따말 이라고 줄여서 불리던 이 드라마의 제목을 처음 봤을때 ‘뭔 제목이 이래?’라고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제 막 결혼을 하고 첫아이 임신과 함께 세상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나라서 이 말이 갖고 있는 절절함의 무게를 잘 몰랐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르고 내가 남편에게 원하는 것이 결국 이 드라마 제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잘 지은 제목이다. 생각난김에 조만간 시간이 된다면 그때 못 본 드라마 다시보기를 한번 해야겠다



언제부터 남편은 나에게 무뚝뚝 한 사람이었을까?

분명 그의 다정함에 마음이 움직여서 한 결혼이었는데… 그 당시 내가 콩깍지가 씌여서 그의 퉁명스러움을 놓친걸까 아님 4년전 닥친 불행으로 그는 변한걸까..


내 기억속 그의 무뚝뚝함은 곳곳에 자리잡아 있다 



-Memory 1. 연애시기


남편과 만난지 반년쯤 되었을때 나는 인후염이 걸려서 엄청 아팠던 시기가 있었다. 

결혼전에는 44~55 사이즈의 옷을 입을 정도로 마른 체형이었던 나는 겉으로 보이기에는 좀 약해 보여도 사실 일년에 몇번 병원 갈일도 없을 정도로 체력이 강한 타입는데,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때면 한번씩 크게 아프게 된다는 속설이 있는데 아마 나도 그런 나이병치레가 아니였을까 싶을 정도로 이때 며칠간을 침대에서 못 일어날 정도로 아팠다.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집에 와서 아픈 나를 돌봐주던 행동은 친절했지만 건네는 말에는 따뜻함이 없었다. 시종일간 장난삼아 내가 허약해서 그렇다며 자기는 한번도 아파본 적이 없다는 등의 말을 했다. 나는 이게 참 서운해서 나도 20대에는 안 아팠고 이렇게까지 아픈건 처음이라 말했다. 아마 당신도 30대가 되면 이렇게 한번 아플꺼라고 했지만 남편은 내 예언에 콧방귀를 뀌었다.

 연하의 남편과 살면 무엇이 힘든가요?라고 물어본다면 젊은 그의 경험부족이 많은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답해 줄수 있을꺼 같다. 원래 아플때 가장 서러운 법인데 이후에도 남편은 간혹 아팠던 나에게 따뜻한 말한마디 해주는 것에 인색했다.


웃기게도 내 예언은 적중하여 남편이 32살이 되던 해, 남편은 진짜 심하게 인후염에 걸려서 말도 안나올 정도로 며칠을 아팠다. 간호는 해주었지만 속으로는 6년전 그때를 떠올리며 ‘거봐 내가 그랬지’라고 생각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아플때 상대방에게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해서 남편의 간호를 기대하거나 따뜻한 말한마디가 있을꺼라 애초에 생각하지 않는다. 기대는 실망을 불러오고 그런 실망이 반복되면서 생긴 학습효과로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이미 익숙해져 있다.


-Memory 2. 결혼4년차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게된 2017년 6월, 나는 둘째 아이를 임신중이었다.

처음에는 임신을 했다는 걸 몰랐다. 전직장 대표가 하루아침에 잠적하고 모든 사건의 정황을 알아가고 있을때 나는 내 돈은 아니어도 고객자금은 한푼이라도 더 건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쫓기며 제대로 잠 잘 시간도 없이 이리저리 뛰어나니고 있었다.

잠적한 전대표를 찾아내기 위해 사설탐정까지 고용했다. 횡령과 배임으로 빼돌린 자산중에 뭐가 남아있는지 파악하기에 바빴고 변호사를 찾아가고 고객들에게 일일이 연락하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상황을 전달받은 고객들은 계속 번갈아가며 나에게 전화하고 찾아오기를 반복하였기에 나는 밥도 잠도 뒤로 하고 매일을 눈물짓고 쓰러지기를 반복하였다.

그래서 그 시기에 자꾸 살이 빠지고 헛구역질이 나는 건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라고만 생각했다. 7월말이 되어서 자꾸 반복되는 구토증상이 큰 병일까 무서워서 병원에 가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문득 혹시나 싶어 약국에 들러 구입한 테스트기는 선명한 두줄과 함께 나에게 임신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임신 중에서 나는 온갖 일들을 다 겪었다. 8월쯤 전직장 대표가 잠적을 끝내고 자수라는 형식을 갖추고 모습을 드러냈고 그래도 혹시나 했던 기대는 이내 절망이 되어 현실화 되었다. 원망의 화살은 향할 대상이 필요했고 9월부터 나는 가해자의 프레임을 뒤집어 쓴채 피고소인과 피고인의 신분을 왔다갔다 하며 소송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밖에서 당하는 처음 겪는 수많은 일들임에도 나는 마지막 정신력으로 집에 와서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일이 터지고 얼마뒤 남편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저녁부터 밤새서 일하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나갔고 시간이 흐를 수록 남편과 나는 점점 대화가 없어졌다. 나는 애써 밝은 말투와 표정으로 일하러 나가는 남편의 도시락을 챙기고 말을 걸고 하며 나름의 애를 썼지만 한번 어두워진 남편은 단답형의 대화만을 이어갈 뿐 나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임신한 나를 살피거나 하는 손내미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겪는 절망과 충격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기였을거고 남편에게 미안하고 그가 걱정이 되었던 나는 이때는 남편이 원망스럽진 않았고 그저 그리웠다.

 

나는 임신을 하면 입덧이 심한 타입이라 오히려 살이 빠지고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원래 그런 체질에 더해서 외부요인으로 인해 더욱 심한 체력저하가 찾아와서 그로인해 체질이 바뀐 나는 한랭알레르기 라는 증상이 생겼다. 찬바람을 맞는 모든 부위에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10분이라도 바깥 바람을 맞으면 정말 눈뜨고도 보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두드러기까지는 괜찮았지만 겨울쯤이 되었을때 병원에서 경부길이가 너무 짧아졌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조산을 하게 될꺼라는 경고를 들었다.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사실 그 시기를 돌아보면 유산 되지 않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태어나 벌써 4살이다.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나의 두번째 보물이다.


이런 시간속에서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던 나는 계속 외로웠고 무서웠다. 남편과의 대화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대화라던가 싸움뿐이었기에 점점 말이 삼키게 되었다. 유산을 방지하기 위해 누워만 있어야 하는 상태였기에 남편이 큰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주말에는 고요한 빈집에서 몸은 편했지만 정신은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아이와 남편이 궁금해서 연락하면 남편은 한참이 지나서야 답장을 해왔고 역시나 단답형의 멘트가 많았기에 나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남편의 차가움이 느껴졌기에 나도 점점 손내미는 걸 안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재산도 직업도 커리어도 친구도 한꺼번에 순식간에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나와 가장 오래된 친구였던 아이가 제일 먼저 소송을 해왔고, 그동안 나와의 대화를 모두 녹취하면서 본인에게 유리한 멘트만을 발췌하여 나를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고소장을 받았을때는 분노보다는 무서움이 더 컸다. 그 아이는 20년의 친했던 시절동안 알게된 내 삶의 모든 내용을 건드려 가며 나를 몰아세워갔고 그 아이의 선동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비슷한 패턴의 공격도 그 뒤로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소송 공방이 3년을 넘게 갔다.

이 시간동안에도 내가 남편에게 바랬던 것은 그저 따뜻한 말한마디 였다. 어차피 내가 다 해결해야 하는 일들있기에 나 대신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랬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배신, 망함, 소송, 경찰서와 법원 이런식의 단어가 내 인생에 불쑥 쳐들어와서 쓰러질듯한 나에게, 처음겪는 내 인생의 바닥에서 그래도 정신차리고 일어나보려고 애쓰는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주고, 상황을 걱정해주고, 함께 누군가를 비난해주고.. 그리고 나에게 잘해낼수 있을꺼라고 응원해주길 바랬다.


지금도 그 시절의 남편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그시절에 몰래 일기장처럼 적었던 글도 지금 다시 읽으면 마음이 아프다. 




-Memory 3. 한달 전


7월 중순 캠핑을 갔을때 갑자기 타프가 무너지는 일이 발생했다. 하루종일 미친듯이 덥다가 저녁이 되어 약간 살만해 졌을때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장 내에 있는 키즈놀이터를 갔다.

혼자 있던 나는 잠시 조명들을 정리하고 저녁먹은 그릇과 냄비 등을 챙겨서 설겆이를 하러 갔다. 그 시간대에는 저녁설겆이를 하는 사람이 많아서 개수대마다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캠핑장 사장님이 갑자기 뛰어들어오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거기 a-1번 손님계시면 빨리 오시라고해! 옆에 텐트가 무너졌어!!’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거긴 우리 자리인데?'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엄청난 양의 스콜성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 비로 인해 우리 텐트 옆 타프가 쓰러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설겆이 하는 물소리에 빗소리도 못 듣고 있던 터라 나는 깜짝놀라 우리 자리로 뛰어갔다. 폭우같이 쏟아지는 비에 순식간에 몸이 홀딱 젖었지만 어떡하든 타프기둥을 다시 세워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쓰러진 타프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회생 불가능했고, 그 다음 수습으로 나는 전자기계들 부터 옮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비를 맞으며 코드를 뽑고 선풍기, 전기밥솥 등의 전자기계들을 들고 날랐다. 하필 차 문도 다 열어놨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문을 닫으러 차쪽으로 뛰어갔는데 자동문인 카니발 옆문이 고장이 났는지 문이 닫힐 생각을 안했다. 확 잡아당기면 혹시 고장이 날까봐 걱정되어 우선 트렁크에서 돗자리를 갖고 와서 문쪽을 덮어두고 이런식으로 우왕좌왕 혼자 난리를 치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더이상은 나 혼자만으로는 뭔가 수습이 안되서 핸드폰을 찾아보았다. 무너진 타프 중간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맞은 핸드폰을 찾아내서 열어보니 남편에게는 카톡이 와있었다.

‘옆에 텐트가 쓰러졌다며?’이게 뭔소린가 싶어서 전화를 걸어 우리 타프 무너졌으니 빨리 오라고 말했다. 캠핑장 사장님께 전화를 받아서 상황을 알고 있을꺼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그 얘기를 전달 받고도 우리 텐트가 쓰러졌을꺼라는 생각을 못하고 옆텐트 라는 표현에 진짜 우리 옆텐트라고 생각했던 거였다.


나타난 남편은 인상부터 팍 쓰고 있었다.

나를 보고 했던 첫 마디는 “비오는 줄 몰랐어?”였다. 순간 변명을 하는 입장이 된 나는 “설겆이 하느라 빗소리를 못 들었어”라고 대답했다. 

“키즈놀이터 안에서도 빗소리 엄청 크게 들리던데 그걸 몰랐어?”라고 이어 말하는 남편의 말과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보고서야 알았다.

타프 무너진 거에 대해서 남편은 나를 탓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말과 표정의 해석은 ‘타프가 무너지는데 너는 뭘 하고 있었냐’라는 뜻이었다.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무너진 타프만을 살피는 남편은 “이거무너졌을때 어디있었어? 왜 빨리 연락안했어?”라고 한마디 더 했고, “설겆이 하러 가 있었고, 핸드폰도 타프밑에 깔려 있어서 늦게 찾았어”라고 나는 대답함과 함께 “여보. 이 밑에 내가 없었던게 다행이었던거 아냐? 괜찮아 라고 물어보는걸 먼저 해줘야 되지 않아?”라고 한마디를 했다

그 뒤로 남편은 입을 꾹 다물고 일만 했다


무너지기 전 평온했던 모습


남편은 모든 일을 내탓만을 하는게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 같았다. 

나는 문득 4년전이 떠올라서 이 상황이 어쩌면 그떄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처럼 닥친 일에 대해서 나는 비에 쫄딱 맞든 어찌되든 상관없이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애썼지만 결국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였다. 어차피 저지러진 거라면 둘이 힘을 합쳐 수습해 가면 되는데 남편은 나를 탓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또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이날의 사건이후 계속 벼랑으로 몰렸던 우리 관계는 더이상 회생 불가능처럼 내 감정이 선을 넘어가 버렸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다음주 수요일 한 달 반을 기다렸던 우리부부의 첫 부부상담이 시작되었지만 이미 나는 남편과의 관계를 포기하게 되어버렸다.



이 일도 아이러니 하게도 그로부터 2주뒤 다른 캠핑장에서 마치 영화처럼 똑같이 발생했다. 

내가 저녁 설겆이를 간 사이 캠핑장에는 그때와 같이 스콜성 소나기가 내렸고, 아이들과 함께 텐트 안에 남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프는 무너져 내렸다.

설겆이를 마치고 뒤를 돌았을때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는 걸 보고 속으로 나는 ‘마치 지지난주 같네. 나만 설겆이 하러 오면 비가와.. 설마 타프가 또 무너지진 않았겠지. 이 빗속을 뚫고 어떻게 가나… 이런 나를 남편이 우산갖고 데리러 오는 일은 아마도 절대 없을테니 기대하지 말자’등등의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5분 정도 지났을까 비를 쫄딱맞으면서 큰아들이 뛰어왔다

“엄마!! 타프가 무너졌어!!!”


아들과 함께 설겆이감을 챙겨서 텐트로 돌아가보니 상황은 2주전 그때보다 더 심각해서 텐트 안 이불도 다 젖고 세간살이가 물에 둥둥 떠있는 꼴이었다. 역시나 남편은 짜증이 가득난 얼굴이었고, 비를 맞으며 쓰러진 타프를 고쳐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젖은 수건을 짜내며 텐트안에 들어온 물을 닦아내고 살아남은 옷들과 이불들을 수습하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넣어놓은 뒤 비를 맞으며 텐트줄을 당기고 있는 남편에게 “내가 뭐 도와줘?”라고 말을 걸었다. 인상을 찌푸린 남편은 고개만 저을뿐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더이상 그를 걱정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 4년간 남편과 싸우고 서로를 비난하는 시간을 반복하면서 나는 내가 싫어하는 남편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에 나는 싸우고 뚱해 있는 그런 시간을 못 견뎌했다. 그래서 남편과 싸우더라도 얼른 화해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굳이 나쁜 감정을 길게 가져가서 뭐하나 라고 생각했기에 싸움의 원인이 남편이든 나든 그 싸움을 길게 끄는게 너무 싫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다툼이 일어나면 입을 다물어 버리는 타입이었다. 화가나면 화가난 대로 미안하면 미안한대로 그냥 말을 안한다.

이런 남편의 모습이 처음에도 싫었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고 반복 될 수록 정말 나를 미치게 하는 것만 같아서 너무너무 싫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엄마아빠 사이의 분위기 라는걸 감지할수 있게 되는 나이가 된 이후로는 싸우게 된 원인보다는 싸우고 나서의 저런 남편 태도에 더 화가 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남편의 모습 그대로를 닮아있다. 이제는 어쩌면 내가 더 말을 안하게 된 것 같다. 


변명하자면 어쩌면 이게 나의 마지막 노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말을 내뱉어 버리면 그동안 내 마음에 쌓인 서러움이 분노가 되어 어떡해서든 남편을 찌르고픈 창과 칼이 될 꺼 같아서. 그렇게 남편을 찌르고 베어버리면 우리 관계는 아이들의 엄마아빠로도 유지가 안 될꺼만 같아서 나는 계속 입을 다물고만 있다.


오늘은 부부상담의 4주차다.

1주차 이후 우리는 한주씩 돌아가며 각자 상담을 하고 있고, 오늘은 남편의 두번째 개인상담 차례이다. 지난번 상담 이후에도 묻지 않았고, 오늘 상담에 대해서도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 부부는 대화하지 않는 시기이다. 


괜찮아? 라고 물어봐주는 한마디

힘들지? 라고 다독여 주는 손내밈

내가 남편에게 원했던 이게 그렇게나 어려웠던 걸까? 

나는 정말.. 그거 하나면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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