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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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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May 11. 2019

진실에는 힘이 없다. 그럼에도...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보도하는 이유_PD수첩 [누가 죄인인가, 아이돌 사관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지난 2월 27일. 동영상 하나가 유튜브에 업로드 되었다. [누가 죄인인가]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뮤지컬 [영웅] 삽입곡인 동명의 넘버를 개사한 음악극이다.  노란 교복을 입은 남학생의 독백으로 영상은 시작한다.


https://youtu.be/l_uzzNPnCXQ


  우선,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 점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본 학교의 학생의 일원으로써 SNS에 글을 올리고 명예를 훼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고 싶습니다.

(Youtube/영화전공 8기: 누가 죄인인가_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피해와 불이익을 고발합니다. 中)


  지난 4월 30일, PD 수첩 [누가 죄인인가, 아이돌 사관학교에선 무슨 일이?] 편이 방영되었다. 서울공연예술학교(이하 서공예)의 사학 비리를 다룬 이 화에서는 열악한 교육환경에 대항하는 학생들을 조명했다. 서울공연예술학교 학생들은 SNS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교장 일가의 비리를 폭로했을 뿐 아니라 직접 거리로 나와서까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알렸다. 아이돌 사관학교의 그림자가 천하에 드러났다.


  선택권 없이 외부 공연에 참여시킨 죄

  학교의 시설을 불법으로 개조한 죄

  공연 거부시 불이익을 받거나 눈에 띄게 차별한 죄

  공연장에서 섹시함과 스킨쉽을 요구한 죄

  공연으로 발생한 여러 비용을 학생 사비로 사용케한 죄

  학생의 권리와 소망을 짓밟은 천인공노의 죄 때문이다

(Youtube: 영화전공 8기: 누가 죄인인가_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피해와 불이익을 고발합니다. 中)


  부적절한 행사에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동원하고, 학비에 못 미치는 열악한 교육환경을 제공한 일. 학교 시설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도 모자라 부당한 방법으로 가족을 임용하기까지. 서공예 교장 박재련은 학생들의 꿈을 미끼삼아 사리사욕을 채웠다. 학생과 학부모의 분노를 산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학교측에 시정을 요구하고 불만을 담은 설문을 제출했지만, 교장은 교직원들에게 설문 조작을 지시했다.


서공예 사건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  http://me2.do/xt9JzxaC


  결국, 청와대 국민 청원 글이 올라왔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게시한 글은 20만명 이상의 청원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에 청와대는 이에 강력 조치할 것을 약속했으나, 그 결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당시의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사립 학교의 교원 인사권은 학교 법인에 있어 교육청이 직접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공예 학생 인터뷰_PD수첩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학생들은 학교측의 제재와 압력을 견뎌냈다. 하지만 청원 이후에도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SNS에 고발글을 올린 학생들이 선도 위원회에 회부되고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하는 등 학교측의 횡포가 거세졌다.

  서울시 교육청과의 행정심판으로 문제의 핵, 박재련 교장은 사임했다. 하지만, 여전히 박재련의 아내는 행정실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사진 대부분이 교장의 최측근이다. 노력에 비해 달라진 것은 적다. 청원 인원수를 간절히 꼽으며 변화를 기다렸다던 학생들. 그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진실은 힘이 없다


  답답하다. PD수첩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는 사건 없다. 사건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시작과 과정이 있으면 결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하지만 PD수첩에서 보도되는 대부분의 사건에는 결과가 없다.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이들은 진실하게 사건을 마무리 지을 마음이 없고, 진실을 아는 이들에게는 정의로운 결과를 쟁취할 힘이 없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PD 수첩을 보면서 늘 외친다. 해결할 방법 없는 진실은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과 같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은 불편한 진실은 튀어나온 못처럼 옷을 다 긁어 놓는다. 뽑을 방법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알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목격, 앎이 가진 힘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PD수첩의 기조다. 그저 목격. 바라보는 것 이외의 역할은 없다. 정직하게 목격한 사실을 알릴 뿐이다. 그것이 보도다. 보도로 인해 사람들은 앎을 얻는다. 앎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이것은 사람에게 달린 문제다. 앎을 다른 이에게 퍼뜨릴 수 있고, 앎을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으며, 그저 가만히 있는 것도 가능하다. 앎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

  앎은 사람들이 몰랐던 정보를 습득하는 그 순간에 기능한다. 앎으로 얻은 정보는 진실일수도, 거짓일수도 있다. 앎에 따라 사람은 진실 혹은 거짓을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진실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 진실을 알리는 일은 사람이 가진 힘이 옮음으로 쏠릴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것과 같다.


보도(報道): 대중 전달 매체를 통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림. 또는 그 소식.


  시대의 목격자가 알리고자 하는 바는 보다 정확한 사실이다. PD수첩은 실명 보도를 지향한다. 지상파 방송의 파급력에 따른 무죄 추정의 원칙 위배에 대한 비판도 따라붙는다. PD수첩을 시청하다 보면 섬뜩할 때가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도 될까?’

  실제로 명예 훼손 등 다양한 명목으로 법적 제재를 당한 경우가 많다고 PD수첩의 한학수 PD는 말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법정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꿋꿋이 실명 보도를 이어오는 것은 그만큼 보도의 정확성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정확한 보도는 곧 당연한 사실이 된다.

  PD수첩의 어투는 그렇다. 사건을 꺼내 놓고는 그 원인을 밝힌다. PD수첩이 보도하는 사건과 원인의 관계는 너무도 명확해서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만, 그 원인은 우리가 몰랐던 숨은 진실이다. PD수첩은 숨겨져 있던 사실을 비밀 드러내듯 밝히지 않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마치 ‘이런 원인이 있으니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지.’하는 말투다. 대중이 당연히 알아야 할 사건과 진실을 당연히 이야기하는 듯하다.


  다만, PD수첩이 이야기하는 것은 거기서 끝난다. 사건과 원인 이외의 말을 아낀다.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 달라는 감정적인 호소는 않는다. 원인과 결과, 그리고 무수한 근거들을 제공하여 판단을 시청자의 몫으로 돌린다. 행동할 것인가, 혹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시청자 각자가 선택해야 한다.


  진실은 힘이 없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힘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과 발언, 행동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옮음으로 향하게 만드는 방향키가 진실이다.


  꿈을 안고 학생으로 들어와 부당에 맞서 싸우는 것

  이것이 참된 배움이니 나 기꺼이 받아들이나

  이를 보는 모든 분들 그들의 거짓과 야욕에 속지 마시고

  그들의 위선과 우리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 주시오

(누가 죄인인가_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피해와 불이익을 고발합니다. 中 일부)


  서공예 학생과 학부모들이 올린 청와대 청원 글은 참여 인원 20만을 넘긴 최초의 학교 운영 관련 청원이 되었다. 서울공연예술학교 학생들이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에 업로드한 [누가 죄인인가]는 현재 조회수 약 480만, 댓글 약 2만을 달성하며 큰 응원과 관심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 말하는 진실에서 앎을 얻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비록 서공예 학생들의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작년 12월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었다. 이에 따라 교육청이 요구하는 사립학교 교직원 징계를 학교 법인이 사유 없이 따르지 않을 경우, 올해 3월부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사립학교 교직원의 비위를 국공립 교직원과 마찬가지로 징계할 수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서공예 사건 이외에도 PD수첩이 보도한 사건 중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 있다. 진실에는 힘이 없다. 그럼에도 알려야 하는 이유는 그것을 전해 받은 사람에게는 세상을 움직일 힘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돌아가는 PD수첩의 카메라에는 아직까지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그대로 담긴다. 시대를 정직하게 담아내는 것. 그리고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정직하게 알리는 것. 그것이 PD수첩이 계속 이행해야 할 역할이다. 진실이 가져오는 변화가 더디 오지만 포근한 봄볕과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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