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2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ong May 10. 2019

'누가 죄인인가'에 대한 어른의 대답

MBC <PD수첩-누가 죄인인가, 아이돌 사관학교에선 무슨 일이>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청소년 2명 중 1명은 이렇게 생각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청소년 통계> 결과다. 채용비리, 입시비리 등 근거리에서 벌어지는 각종 비리들은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하게 만들었다.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난 4월 30일 방영된 MBC <PD수첩-누가 죄인인가, 아이돌사관학교에선 무슨 일이...?>편은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의 사학비리 실태를 고발하며 이런 현실을 비췄다. 교장의 만행을 견디다 못한 학생들은 직접 거리로 나와 ‘누가 죄인인가’라고 물었다. 불공정 사회를 직조한 어른의 대답이 궁금했다. 


잘못한 어른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의혹의 중심인 박재련 교장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잘못한 어른이 해야 할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사자인 학생이 원치 않는 군부대 행사에 동원됐고,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지적하자 나온 답변이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진실을 외면했다. 사과받길 원했던 학생의 기대가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방관한 어른 “죄를 말할 수 없다”

비단 교장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교장 일가가 학교를 장악하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데는 이해관계자의 방조가 있었다. 학교 이사회는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데 거수기 역할을 하며 교장 일가의 전횡을 묵인했다. 

한 이사는 ‘죄인이라 해도 죄에 대해 증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답변 역시 뒷맛이 씁쓸했다. 잘못이란 걸 알면서도 방관했다는 말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어른 “잘못하지 않았다”

교장 일가는 사실상 학교를 가족 회사로 만들고 있었다. 교장의 딸은 지난해 정교사로 임명됐다. 자체 교사 선발 절차를 정당하게 거쳤다고 하지만, 실기부터 심층면접까지 심사위원 중 외부인사는 단 1명뿐이었다.

심사에 참여한 인사는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며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의 답변을 내놓았다. 잘못이 없으니 사과할 이유도 없었다. 무책임한 어른의 전형이었다. 


마지막 대답,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지막 어른의 답변은 ‘어쩔 수 없다’였다. 학생들의 고발로 서울시교육청의 감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교장은 파면 조치를 받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현행 사립학교법상 교육청이 징계해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답은 학생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국민청원부터 언론 보도, 유튜브 영상까지 학생들은 피해사실을 알리는 데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말하면 달라지겠지, 어른들이 답해 주겠지’ 기대했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다. 학생들은 거리로 나섰고, 지금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책임지려는 ‘어른’의 대답이 필요하다

<PD수첩>은 잘못한 어른들의 민낯을 까발리며 ‘책임지려는 어른’이 되고자 했다. 지금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어른의 대답에 ‘사립학교법 개정’이란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언론은 고발과 문제제기를 통해 잘못한 어른을 꾸짖어왔다. PD저널리즘을 표방하는 <PD수첩>도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이를 통해 각성하고 달라지는 어른이 있어야 그 효과가 발휘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PD수첩>이 ‘사립학교법 개정’이란 대안을 던져도, 듣고 실천하는 어른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서울공연예술고의 사학비리 실태가 밝혀지고 있다. PD수첩은 보다 세세하게 관련자들의 면모를 밝혔지만, 기본적으로 이전의 언론 보도들이 해왔던 문제 제기 차원에서 머물고 있다. 실제 방송 역시 잘못한 이들을 찾아가고 잘못을 따져 묻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렇다면 언론이, <PD수첩>이 진짜 ‘책임지는 어른’이 되려면 할 일은 무엇일까.

변화를 기대하는 학생들 곁에서 변화에 동참하는 것이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구체적으론 ‘어떻게’ 하면 사립학교법을 개정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법 개정은 여론의 힘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리고 언론은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여론을 모으는 힘을 갖는다. 단순히 대안을 던져주는 것을 넘어 대안 그 자체를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저널리즘을 고려해봄직 하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학생들에게, ‘책임지는 어른’의 대답은 달라야 한다. 불공정 사회를 타파하고, ‘앞으로는 다를 것’이란 희망에 확답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거 안 본 눈 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