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음주 강권인가
이 글은 아직까지 다양한 이유로 술을 강권하는,
한국의 지독한 술 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기 위해 쓴다.
어디 내놓기 창피한 경험이지만, 전국의 숫자 추정 불가한 알콜 쓰레기들을 위하여.
할아버지의 첫제사. 서울에서 할머니 댁으로 내려간 나는 부모님보다 먼저 도착해서 친척들을 만났다. 호시탐탐 내게 술을 먹일 기회를 노리던 작은 고모부도 와계셨다. 술을 너무 못 마시고 몸도 좋지 않아 술을 피하던 나는 부모님의 보호 없이 작은 고모부 손아귀에 들어간 꼴이었고, 그대로 제사 전에 차려진 술상 앞에 불려 가게 되었다.
고모부들은 술을 권하셨고, 나는 으레 그랬듯 두어 번 거절했다. 다른 고모부들은 포기하셨는데, 작은 고모부는 끈질기셨다. 작은 고모부는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강권을 정당화하셨다.
"요즘 애들은 이렇더라. 어른이 주는 술도 안 받아먹고."
이렇게 시작한 한탄은 다른 고모부들의 거듦에 따라 플로우를 제대로 탔다. 회사의 젊은 애들과 그분들의 아들 이야기, 정치로까지 넘어갈 기미가 보이는 대화에서 벗어날 방법 오직 한 가지는 그 자리 유일한 '요즘 애'의 원샷뿐이었다. 기성세대의 수법에 굴복하고만 나는 작은 고모부가 따라주신 소주를 한 잔 마시고 고모들을 돕겠다는 핑계로 주방으로 나갔다. 그 한 잔은 내 치사량 이상이었다.
고모들이 내게 일을 시키지 않아 의자에 앉아 2리터짜리 물통을 그대로 들이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도착했는데, 엄마는 날 보자마자 취했냐고 물어봤다. 나는 엄마의 등 토닥임을 못 견디고 화장실에 달려가 그날 먹은 음식들을 다 게웠다. 토하니까 더 술이 올랐다. 밖으로 나가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나한테 술냄새가 난다고 했다. 엄마는 나한테 물통을 안겨주고 주방 한 구석에 앉혔다.
그런데, 그게 좀 불만이었다. 엄마를 정말 오랜만에 봤단 말이지. 엄마가 반가운 마음 반, 술기운 반으로 엄마한테 치덕거렸다. 고모들 따라 일하는 엄마를 뒤에서 껴안고 옷을 잡아당기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엄마가 웃으면서 밀어냈고 딸 없는 고모들도 애교로 봐주시며 귀여워해 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자꾸 앉히는 것 빼고.
엄마가 빨리 안 와서 나는 술도 먹었는데!
그래서 엄마를 뒤에서 끌어안고 안 놔줬다. 안고 막 흔드니까 엄마도 웃더라. 그게 너무 신나서 텐션을 주체 못 하고 엄마 어깨를 물었는데, 그게 엄마의 임계점이었나 보다. 엄마가 '그만 좀 하라고!'하고 짜증을 내고 나를 의자에 확 밀쳐 앉혔다. 엄마 눈이 화나 보여서 너무 서러웠다. 그렇게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첫제사 시작하기 직전에, 제사상 차려진 안방 앞에서, 물통 끌어안고!
엄마를 쳐다보면서 우니까 엄마는 엄청 당황하셨다. 너 여기서 울면 큰일 난다고, 내 얼굴에서 눈물을 훔쳐주면서 달래주시는데 나는 그것도 서러워서 울었다. 그 장면을 고모들도 봤다. 고모들은 당황한 엄마랑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같이 눈물 흘리셨다. 손녀가 할아버지 많이 보고 싶나 보다, 하면서. 그때서야 술이 깨더라.
작은 고모부는 '울지 마.'하고 그냥 가셨다. 내가 술 때문에 그랬다는 걸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그때 이후로 작은 이모부를 볼 일이 없어서 모른다. 주방에서 도운 것 하나 없으니 모를 가능성이 더 높지. 이 사실 역시 분노를 부르는 부분이다.
하지만 말이야, 만약 다음번에도 내 목구멍으로 술이 넘어가는 일이 발생한다면, 물리는 사람은 우리 엄마가 아닐 것이라는 점만 염두하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