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Feb 23. 2023

누군가에겐 성공, 누군가에겐 실패

면접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들


남들은 몇 살 때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잘하던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과거를 곱씹을 때 "몇 학년 때 무엇을 했다" 혹은 "어디서 살 때 무엇을 했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올해는 확실히 나이로 기억되는 해일 것 같다.


작년 말, 석사 생활 마지막 학기부터 2월 초까지 미국에서 대략 150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공정성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미국 취업 시장에 인턴 경험만 있는 외국인 사회초년생이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란 꽤나 험난한 선택이다.


초반에는 연락도 거의 오지 않아 기계적으로 지원서를 꾸준히 넣었다. 11월부터는 연락이 종종 오곤 했는데, 면접 경험이 적다 보니 말아먹기 일쑤였다. 어느 정도 감이 잡혔을 때는 최종 면접까지 간 곳도 좀 있었는데 이제 이 짓거리를 그만둘 때가 가까워진다는 희망이 생겨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취업할 때조차 시험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격증이 있으면 플러스알파 요인이 되는 직종도 있지만 아닌 직종도 많다. 대신 미국에서는 네트워킹이 중요하다. 아무리 잘난 스펙을 지니고 있어도 미리 회사 내부자와 내통하고 있던 지원자가 있으면 그 사람이 뽑힐 가능성이 더 높다. 한국에서도 "대기업 임원이 본인 지인을 낙하산으로 꽂아 넣을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정도 수준은 애교다.


대기업 임원이 아니라 사원이더라도 아는 지인에게 본인 리퍼럴 코드(referral code)를 줘서 지원할 때 회사에서 다른 지원자들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는 곳도 흔하다. (무슨 할인 쿠폰도 아니고 정말 어이가 없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들어가고 싶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과 네트워킹을 통해 리퍼럴 코드를 받아내어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또 네트워킹이 당장 취업을 시켜준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네트워킹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 취업 시장이 이런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트워킹을 할 생각이 없었다. 스스로 하는 데까지 하고, 나중에 정 안 되면 링크드인으로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 연락을 해볼 생각이었다. 이렇다 보니 경기가 안 좋은 것까지 보태서 취업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나도 결국에는 제3자인 리크루터의 도움으로 면접 기회를 얻어내어 취업을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이 매거진에 넣는 이유는 면접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면접도 결국 대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서로를 파악해 가며 신뢰를 쌓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면접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라 그중 인상 깊었던 것만 언급하려고 한다.



• 환경 연구원


처음으로 두 번째 면접까지 갔던 회사는 워싱턴 D.C. 에 있는 저명한 환경 연구 기관이었다. 첫 번째 면접은 기관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시니어 펠로우와의 화상 면접이었다. 면접관은 대학교로 강의도 나가는 분이셨고, 회사보다는 학교에 더 친숙한 나에게는 교수님과 학술적 대화를 하는 느낌이라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1시간 넘게 대화를 했다. 그분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면접이 끝나기 전에 아마 며칠 뒤에 인사팀에서 두 번째 면접 일정을 잡기 위해 연락을 할 거라 하셨다. 하지만 비자 스폰서를 하지 않는 자리라고 했기 때문에 두 번째 면접을 볼 거란 기대는 없었으나 금방 두 번째 면접 일정이 잡히게 되었다.


두 번째 면접은 다른 시니어 펠로우와 좀 더 젊은 펠로우 한 분과 함께 했다. 이 면접도 괜찮게 치렀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외국인이라 그런 것인지 경험 부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몇 주가 지나서야 결과를 알려준 탓에 빈정이 상해 왜 떨어졌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 비영리단체 컨설팅


환경 연구 기관에서 첫 번째 면접을 봤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뉴욕에 있는 비영리단체에서 연락이 와서 대면 면접을 보러 갔었다. 지원한 자리는 비영리단체에서의 컨설팅 업무를 1년 동안 배우는 계약직이었다. 솔직히 되더라도 가고 싶지 않은 자리였는데, 면접에서 다 티가 났을 것 같다. 컨설팅이라는 업무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자리라고 해서 나름대로 질문들을 준비해서 갔다. 그러나 질문을 해도 1년 동안 업무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면접관들은 내 성격이 어떤지 알아내기에만 급급했다. 내가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파트너와 일을 하게 될지 물어봐도 컨설팅이라는 직업은 언제 뭐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며, 내가 너무 융통성 없는 사람인 양 몰아갔다.


면접관 두 분 다 한인 교포였는데, 결국에는 내 MBTI가 뭐냐고 질문을 했다. 당연히 그걸로 사람을 거르려고 한 아니었겠지만 업무 설명할 때는 애매하게만 말하더니 내 MBTI 맞추는 거엔 진심이어서 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내 MBTI가 P라고 하니 한 분은 데이터 사이언스 전공인데 어떻게 J가 아니냐며 놀라셨는데 안 봐도 나를 어떤 틀에 가둬놓고 생각하는지 보였다.


이 면접을 통해 느낀 점은 정말 규모가 작은 기관들은 중구난방인 업무와 행정처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해외에서 사는 한인들은 요즘 한국에 있는 한국 회사들보다 훨씬 선이 없다는 것이다.


• 사기업 데이터 애널리스트


비교적 최근 리크루터를 통해 최종 면접까지 간 회사가 있다. 판매 데이터를 분석하는 자리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온라인 스크리닝을 통과한 후 첫 번째 면접을 무사히 보고,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첫 번째 면접에서는 애널리스트의 업무 보고 대상인 디렉터 분이 면접관이었다. 이 회사도 한국인들이 많았고, 디렉터 분도 역시 한국인이셨다. 이 분도 내 MBTI를 물어보셨다가 선을 넘었다 생각하셨는지 본인이 알아서 질문을 철회했다. 앞서 언급한 비영리단체에 비해서는 회사 규모도 매우 큰 편이었고, 성격적인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했음에도 회사와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한 과정인 것이 느껴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최종 면접에서는 여러 명이 내 이력서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짧은 케이스 스터디를 제공했다. 이력서에 대한 질문도 회사 업무와 연관되게 잘 대답했고, 케이스 스터디도 원하는 대답을 했으나 탈락했다. 회사에서 굳이 이유를 알려주는데, 내가 정말 회사의 일원이 될 의지가 안 보였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자세히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그 회사 제품을 평소에 사용한다는 점과 그 회사 제품과 내 정체성을 잘 연관시켜 자기소개를 했고, 면접 도중 제품에 대한 지식도 꽤나 많이 언급했다. 이걸로도 설득이 되지 못했다면 그들 역시 나를 색안경을 끼고 평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뉴욕시 정책 고문


가장 최근 본 면접은 30분 동안 이루어진 짧은 화상 면접이었다. 외국 회사들은 본격적인 면접 단계로 지원자를 보내기 전에 전화로 20-30분 동안 지원 동기 등 기본적인 질문들을 해서 1차적으로 지원자들을 거르는 경우가 많다. 이 기관은 특이하게 이 과정을 화상 면접으로 진행했다.


한국이라면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을 대부분 시험을 통해 선출하겠지만 다른 회사들과 같은 방식으로 채용을 하는 것은 신기하면서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심지어 뉴욕에서 얼마 거주하지도 않았고, 외국인인 나에게도 면접의 기회를 준 것도 뉴욕을 조금 다시 보게 했다. (나는 뉴욕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면접은 정부 기관답게 아주 형식적이고 건조했으며, 처음에 몹시 긴장하고 있던 나조차 감흥 없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관련 업무에 관한 질문을 해도 관련 없는 대답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보며 속으로 "역시 뉴욕..."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되었다. 끝날 때쯤 앞으로 면접이랑 채용 일정에 대해 질문을 했다. 돌아오는 답이 다소 충격적이었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면 면접은 5주 내에 2-3번 더 보게 될 것이고, 합격을 한다면 그 후로 백그라운드 체킹이 2-6달 걸릴 예정이라 합격을 해도 언제 시작을 하게 될지는 예상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금 미국 사회보장번호를 지원할 때와 정부의 행정처리에 대한 기억이 스쳐 지나가며 끝난 면접이었다.




최종적으로 합격하게 된 회사에서 본 면접들은 워낙 짧았고, 대화를 한 느낌이 아니라 시험을 통과한 느낌이라 언급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좋아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보통의 인간은 모든 것을 이분화시켜 생각하려고 하고, 나도 결국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최근 아는 지인이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 것 같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왜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나눠야 하는지부터 이해를 못 하겠지만 생각을 해봤다. 최근에 취업 준비를 하고 취업을 한 경험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처음에는 이 모든 경험이 실패로 느껴졌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는 것을 싫어하고,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할 때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6개월을 바라보면 아주 크나큰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결과주의적인 성향도 강한 편이라, 결국 취업에 성공했으니 이 모든 과정이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내가 결국 하게 된 일에 초점을 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면접을 봤던 환경 연구 기관이나 뉴욕시 정책 고문 자리에 합격을 했더라면 이 반년 동안의 취업 준비가 성공적이었다고 (성공과 성공적인 것은 또 다르긴 하지만) 평가를 할 것 같다. 대학교 때부터 환경이나 정책과 관련된 일,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취업에 성공한 곳은 몇 년 전이라면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곳이다. 남들이 보기에 여러모로 괜찮은 회사와 직업을 갖게 될 예정이긴 하다. 연봉도 괜찮고, 직급도 석사 학위를 업무 경험으로 인정받아 지원한 것보다 높은 자리로 들어가게 되었고, 회사도 유명한 기업이다. 그러나 내가 여태 대기업을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평가가 조금 달라질 것 같다. 그래도 정책 및 환경과 관련이 크기도 한 일이고, 최근 관심사와 맞아떨어지는 업무를 하게 되어 일단은 첫 직장으로 만족스러운 결과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항에서 처음 만난 아저씨와 두 시간 동안 나눈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