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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람있다 Aug 15. 2021

고향을 잊은 인어공주_다시 쓰는 안데르센(인어공주)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_인어공주



출처: pixabay

아주 먼 옛날, 세상은 물로 덮여있었어요. 물속에는 인어들만 살고 있었습니다. 차갑고 어두운 물속 세상엔 인어들의 왕국 외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인어들은 깊고 좁은 동굴에 웅크린 채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문득 인어 왕은 백성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거나 소원을 말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에게 기도를 했지요.

  “신이시여. 소원이 있습니다. 저희 백성들이 불쌍합니다. 넓은 바닷속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디며 살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에게 풍요로운 삶을 선물해주세요.”

  신은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 날, 인어들의 두 눈은 휘둥그레 졌습니다. 한 줄기의 따스한 빛은 시커먼 바다를 푸른빛이 감도는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영롱한 산호와 크고 작은 물고기들, 알록달록 해초와 다양한 소리를 내는 바다 생물들까지. 인어들은 산호를 깎고 조개껍데기와 진주 구슬로 왕국을 장식했습니다. 어둡고 음침했던 인어들의 터전이 밝고 화려한 산호초 왕국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혹등고래를 타고 바다 곳곳을 여행 다니기도 하고, 여전히 차가운 바다에 사는 인어들과 따뜻한 바다로 이동한 인어들은 각자의 터전에서 자라는 생물을 주고받으며 우애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삶은 계속될 것만 같았습니다.



출처: pixabay

  그런데 어느 날, 근사하고 풍족한 생활과 평화로운 일상에 막내 인어공주는 따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현듯 바다 위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바닷속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위로 올라가 바다 끝을 겪어본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다 위 세상이 궁금해진 인어공주는 다음 날 이른 아침 바다 위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빠와 가족들에겐 비밀로 한 채, 막내 공주는 바다 위로 힘껏 올랐습니다. 반나절 정도 지나 드디어 물 위로 솟구쳤습니다. 반짝이는 꼬리지느러미로 힘껏 튀어 오른 인어공주는 상쾌한 공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공주의 눈앞에 펼쳐진 신세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양 아래 반짝이는 윤슬, 땅 위의 각종 풀과 나무, 나무를 기어오르는 다람쥐와 새하얀 털로 깡충 뛰는 토끼, 산호만큼 큰 뿔로 위엄을 자랑하는 사슴,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새. 인어공주의 눈에 담긴 바다 위 세상은 황홀함 그 자체였습니다. 막내 인어는 육지를 향한 설렘과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가득 안고 인어 왕국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제 소원이 있습니다. 신께 기도해주세요.”

  “그래, 우리 딸의 소원이라면 뭐든 신께 부탁을 드려봐야지.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저의 꼬리지느러미 대신 두 다리를 갖고 싶습니다. 오늘 바다 위 육지에 다녀왔습니다. 지금껏 바닷속에서는 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어요. 이제부터는 땅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막내야, 두 다리를 갖게 되면 다시는 가족을 못 만나게 될 거야. 그래도 괜찮다는 말이냐?”

  “아바마마께선 항상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자라면 독립해야 한다고요. 바닷속 생활은 지겨워졌어요. 어차피 독립을 해야 한다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인어 왕은 막내 공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신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로 했지요.

  “신이시여. 제 막내 딸아이가 육지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두 다리를 갖게 되면 더 이상 공주와 함께 살 수 없는데, 공주의 부탁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를 들은 신은 인어 왕에게 공주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두 다리를 얻는 대신, 바닷속 기억을 지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어공주는 사람이 되어 물 밖 세상을 가꾸고 육지를 풍성하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출처: pixabay

  다음 날, 인어공주는 육지에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며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막내 공주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인어 왕과 가족들, 그리고 신하들과 백성들은 바다 위로 헤엄쳤습니다. 검푸른 바다는 점점 더 빛을 머금으며 푸른 빛깔을 띠더니 드디어 인어들이 해수면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몇 백 마리의 고래 떼가 바다 위로 점프하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것 같았지요. 인어들은 바다 위 광경에 감탄했습니다. 그동안 상상해본 적 없는 근사하고 멋진 육지의 모습과 하늘에 압도된 것입니다. 왕과 신하들은 두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가 환상적인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바다 세상에 돌아온 인어 신하들과 백성들은 두 다리를 갖고 싶다며 인어 왕을 괴롭혔습니다. 왕은 안 된다고 했지만, 그들의 불만과 시위는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인어 왕은 깊은 시름에 잠겨 신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왕의 고민을 들은 신은 말했습니다.

  “모든 인어들이 두 다리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방법으로만 육지에서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너도 허락하도록 하라.”

  인어 왕은 아기로 태어나야 한다는 조건에 인어들이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어 왕의 예상과 달리 많은 인어들은 두 다리 인간으로 태어나길 택했습니다. 근심 걱정이 없는 바닷속은 더 이상 매력적인 터전이 아니게 된 것이었지요. 

  그 후로 인간 세상은 산고와 탄생의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두 다리 인간들이 아름다운 육지를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pexels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인어 왕과 바다에 남은 인어들은 바닷물이 점점 탁해지고 호흡도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어 왕국을 지키는 호위무사인 게는 얇고 투명한 주머니에 질식해 죽었습니다. 왕비의 시녀인 잉어는 반짝이는 조개껍데기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뾰족한 조각에 몸이 찢겨 죽었습니다. 인어들의 장거리 이동을 도와주는 고래기사는 딱딱하고 질긴 물체가 먹이인 줄 알고 먹었다가 배탈이 나서 열흘 동안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인어 왕은 바다 위에 살고 있는 막내 공주와 백성들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왕은 자라 대신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두 다리 사람들이 잘 지내는지 알아보러 육지에 다녀오라고 시켰습니다. 자라 대신은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해수면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물은 더 탁하고 고약한 냄새도 심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왕국으로 돌아갈까 망설였지만, 육지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고 싶어 눈을 질끈 감고 속도를 냈습니다.



출처: pixabay

  해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자라 대신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무와 꽃, 나비와 새, 크고 작은 동물들 대신 검은 물질들이 하늘과 땅, 바다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친구들과 동료들을 죽인 물건들이 육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막내 인어공주는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온갖 오물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자라 대신은 인어 왕에게 돌아가 자신이 본 것을 말했습니다. 인어 왕은 인어공주의 기억을 되찾을 방법도, 인간이 된 인어들의 만행을 막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신께 부탁을 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인간들이 저지른 잘못은 그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대답뿐인 것입니다. 바다 동식물들은 물론, 많은 인어들이 바닷속에서 알 수 없는 이유들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남은 인어 무리들 중 대다수는 두 다리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육지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얻은 두 다리로 가족과 친구, 고향을 짓밟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어들이 여전히 바다를 지키고 있습니다. 두 다리 인간이 된 인어들이 자신들과 함께 살던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떠올려주길 바라면서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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