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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썸

〈헛소동〉(1993)

by Albert 이홍규
발타자르:
한숨은 그만, 숙녀분들, 한숨은 그만,
남자들은 언제나 사기꾼이었으니,
한 발은 바다, 한 발은 항만,
어디에도 절대 머무르지 않으니:
그러니 한숨 쉬지 말고, 그들을 보내요,
마음을 편하게 놓고, 표정이 필테니.
당신의 슬픈 곡소리를 이렇게 바꿔요,
나와 함께 니노니, 노니.

『헛소동』, 2장 3막

상황: 베네딕과 베아트리체를 이어주려는 작전 실행 직전, 분위기를 깔기 위해 발타자르에게 노래를 주문한 돈 페드로.


한국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코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4대 비극"과 "5대 희극"일 것이다. 영문학 출판계에서도 『리어 왕』, 『맥베스』, 『오델로』, 『햄릿』은 "4 Great Tragedies (출처)"라고 묶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의 희극의 경우 한국처럼 (『뜻대로 하세요』,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십이야』, 『한여름 밤의 꿈』) 최고 인기 작품 선정이 확실하지는 않다. 영문학 출판사 중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펭귄 랜덤 하우스는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 『십이야』, 『템페스트』를 "4대 희극"으로 묶어 출간하였으며 (출처), 미국의 유서 깊은 공연 잡지인 타임아웃이 뽑은 희극 랭킹의 상위 5위에는 『헛소동』과 『템페스트』가 대신 들어와 있다 (출처).


개인적으로는 영국이 되었든, 미국이 되었든, 한국이 되었든,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에 불과한 4대 비극이나 5대 희극과 같은 분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 본인이 저렇게 묶은 적도 없을 뿐더러 각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나 성격을 보아도 같은 그룹에 포함될 당위성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특히 저 분류에 속하지 않은 작품들이 영화든 책이든 조명을 받지 못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5대 희극에 포함되지 못하는 『헛소동 (Much Ado About Nothing)』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남녀 간 알콩달콩하는 대사에 한해서는 시대를 넘어선 재치 발랄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독특한 매력으로 인해 비교적 최근에도 〈어벤져스〉(2012) 감독 조스 위던의 연출로 원작의 대사를 살린 채 영상화되기도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편이다.


1598년에서 1599년 집필되어 초연한 것으로 기록된 『헛소동』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에서도 유난히도, 적극적으로 명랑한 분위기 가운데 서사가 전개된다. 성공적인 전쟁을 마치고 이탈리아의 메시나를 방문한 아라곤의 왕자 돈 페드로의 군대에는 그에게 열등감을 가진 이복동생 돈 존, 그리고 그의 심복 클라우디오와 베네딕이 있다. 메시나의 총독 레오나토의 딸 히어로는 돈 페드로의 보좌관인 클라우디오에게 연심을 품고 있으며, 히어로의 사촌인 베아트리체는 또 다른 보좌관인 베네딕과 견원지간인데, 작품은 돈 페드로의 군대가 휴식을 위해 메시나에 머무는 동안 일어나는 귀여운 음모, 오해, 그리고 그 해소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국에는 단순히 『헛소동』이라고만 번역이 되지만 원제목인 『Much Ado About Nothing』은 사실 일종의 말장난으로 Nothing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단어와 Noting (알게 되는 과정)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하였다. 즉, 눈으로만 읽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야단법석”이지만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야단스럽게 알아 가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중첩 된다.


새침데기 마스터 셰익스피어

베아트리체(엠마 톰슨), 베네딕(케네스 브래너), 〈헛소동〉(1993)


제목부터 영문학적 아재 개그를 시전 하는 이 비범한 작품에서 가장 즐겁게 볼 수 있는 부분은 베네딕과 베아트리체가 극 초반에 (설정상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쏘아대는 장난 섞인 놀리기가 아닐까 싶다.

베아트리체: 아직도 떠드는 중인가요, 베네딕 씨?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데요.
베네딕: 아니, 안하무인녀 아니십니까? 아직 살아있었군요!
베아트리체: 당신이 여기 살아있는데, 어떻게 안하무인이 죽나요? 당신 주위에서는 요조숙녀도 안하무인녀로 바뀔 텐데요.
베네딕: 그건 요조숙녀가 아니라 배신녀지요. 모든 숙녀는 저를 사랑하니까요, 물론 당신을 제외하고. 제 마음이 너무 닫혀있다는 게 안타깝군요- 누구도 사랑할 수 없거든요.
베아트리체: 진정 모든 여성들의 행운이군요! (후략)

출처: 『헛소동』, 1막 1장

상황: 전쟁에서 돌아온 베네딕을 보고 놀리기 시작하는 베아트리체


사실 어느 정도 원작을 존중해서 번역을 하였지만, 만약 작정하고 현대극으로 바꾼다면 아래와 같은 대화도 상상해볼 수 있다.


장면: 회사의 임원과 해외 출장을 다녀온 영업 팀장(남) 업무 복귀, 그리고 그와 예전에 썸을 탔다는 소문이 있는 디자인 실장(여)

영업 팀장: (출장 중 있었던 해프닝 이야기 중)
디자인 실장: 팀장님- 아직도 떠들고 계세요? 다 지루해하는 거 안 보여요?
영업 팀장: 어이쿠, 실장님, 오전에 안보이시길래 아 드디어 잘렸구나 하고 좋아했는데-
디자인 실장: 어머, 팀장님이 아직 계시는데 제가 왜 잘리죠? 팀장님 옆에 있기만 해도 비교적으로 제 능력이 얼마나 빛나 보이는데요.
영업 팀장: 아 그래요? 다행히 실장님 옆에 있으면 제 외모가 빛나게 되네요. 안타깝게도 제가 독신주의자라서 이 훌륭한 외모를 쓸 곳이 없지만.
디자인 실장: 와, 세상의 모든 여자를 대표해 독신주의자로 살아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글쓴이의 작문 실력이 모자라 느끼기 힘들 수도 있지만, 행간에 함유된 섬세한 유머 교환이라는 면에서는 많은 현대의 로맨틱 코미디의 대사 작법도 셰익스피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예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무대를 현대의 고등학교로 옮겨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으로 남은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는 셰익스피어 희극에서 현대적인 감성들을 세련되게 추려낸 훌륭한 고전 각색 사례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보통 새침한 성격, 흔히 일어로는 츤데레라고 하는 면모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며, 이러한 감정의 움직임은 현대의 “썸”이라 하는 연애 관계에도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극의 초반, 베네딕과 베아트리체의 관계는 서로를 좋아하는 것인지, 혐오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 썸을 타다가 무산이 된 것인지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지만, 관객들은 물론 그 둘이 서로를 놀리는 모습을 보며 관계를 응원하게 된다.


베네딕과 베아트리체 커플의 연애사가 이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정석적인 사랑-오해-시련-극복의 연애사를 거치는 클라우디오와 히어로 커플에게 밀린다. 하지만 묘하게도 관객들이 느끼는 공감도에서는 베네딕과 베아트리체가 오히려 주연으로 나서는 상황이 발생한다. 아마, 무언가 교과서적인 연애보다는, 상대방에게 연애적 관심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틱틱 거리는 행동들이, 그래서 생기는 “썸의 교류”가 더 재미있는 것은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나 보다.


롤러코스터 감정선

베아트리체(엠마 톰슨), 〈헛소동〉(1993)


베아트리체: 수염이 있는 이는 청년기를 지났고, 수염이 없는 이는 아직 남자가 아니죠: 청년기를 지난 이는 너무 나이가 많고, 남자가 아닌 이는, 저랑 어울리지 않아요.

출처: 『헛소동』, 2막 1장

상황: 본인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베아트리체.


셰익스피어의 영상화를 이야기하다 보면 매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바로 희극 영상화의 어려운 점이다. 셰익스피어 연극 연출의 거장으로 꼽히는 리처드 이어(Richard Eyre)는 셰익스피어 시대의 관객과 현대의 관객이 원하는 유머의 스타일이 다른 점을 꼽았다 (출처). 감독 샘 멘데스의 〈뜻대로 하세요〉(2010) 무대화는 평단의 혹평(버라이어티, 뉴욕타임스)을 받았는데, 평론가들은 공통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의 장면에서 경쾌한 장면으로의 전환이 어색하며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공감이 되지 않음에 대해 토로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에는 공통적으로 이런 오해와 오해의 해소에서 오는 분위기 전환이 존재한다.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임에도 불구하고 그 유명한 1파운드의 살덩이를 요구하는 살벌한 전제가 있으며, 본작인 『헛소동』에서는 행복하게 시작한 클라우디오와 히어로 커플이 어떠한 인물의 음모로 인하여 번져버린 큰 오해로 겪는 시련이 있다. 시련의 존재까지는 믿을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히어로에 대한 오해를 하게 된 클라우디오와 그 옆에 있었던 돈 페드로 왕자의 반응은 극의 상황이 17세기이든 20세기이든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오해를 풀려는 노력은 전혀 없고, 상대방에게 막무가내로 죄를 묻기만 하는 그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있어 이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스트레스를 줄 뿐이다. 즉, 불과 몇 분 전까지 행복한 연인의 상징처럼 보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나도 어이없게 금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부분이 명목상의 주연인 클라우디오와 히어로 커플보다 개연성 있고 발랄한 연애 감성을 보여주는 베네딕과 베아트리체 커플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주연과 조연의 위치를 헷갈리게 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셰익스피어 희극의 감성은 샘 멘데스처럼 노련하고 천재적인 감독에게도 실패를 가져다준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베네딕-베아트리체 커플이 보여주는 유머의 재기 발랄함과 클라우디오-히어로 커플이 보여주는 사랑과 전쟁과도 같은 연애사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헛소동』의 경우, 다른 희극과 비교해도 독보적으로 늦은 1993년이 되어야 첫 극장용 영화가 제작되었다.


1990년대 셰익스피어 분더킨트의 모범적 실수

베네딕(케네스 브래너), 베아트리체(엠마 톰슨), 〈헛소동〉(1993)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SC)과 국립 극단(National Theatre Company)이 배출한 남자 영화배우 중, 극단을 떠난 후에도 셰익스피어 원작에 충성심을 보이며 영상화 기회가 올 때마다 열의를 가지고 연출과 주연을 맡는 배우들이 있다. 로런스 올리비에로 시작되는 그 계보는 이안 맥켈런, 패트릭 스튜어트, 제러미 아이언스로 이어지게 된다.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대배우로 평가되는 이들을 잇는다 평가되는 배우가 바로 케네스 브래너로, 1984년 RSC 〈헨리 5세〉 무대화의 주연을 맡아 공연을 매진시킨 브래너는 영화감독 데뷔작으로 본인의 무대 대표작인 〈헨리 5세〉(1989)를 선택해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을 정도로 평단의 대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사용하는, 어떻게 보면 흥행성을 대놓고 무시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제작비를 회수하고 수익을 남기는 쾌거를 달성했다.


자신감에 찬 케네스 브래너가 두 번째로 연출한 셰익스피어 작품은 영미계 영화 역사상 단 한 번도 극장 개봉된 역사가 없었던 희극 〈헛소동〉(1993)이었다. 이 영화판 〈헛소동〉의 캐스팅은 지금 보아도 대단한데, 당연히 주연인 베네딕은 브래너 본인, 상대 여우주연인 베아트리체는 당시 브래너의 부인이었던 엠마 톰슨, 더블톱 주연에 가까운 아라곤의 왕자 돈 페드로는 덴젤 워싱턴, 돈 페드로의 이복동생이자 악역인 돈 존은 키아누 리브스, 그리고 조연인 히어로는 케이트 베킨세일이 연기하였다. 참고로 이 당시 덴젤 워싱턴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청년 배우이자 최고의 흥행배우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고, 93년에는 〈헛소동〉 외에도 톰 행크스와 공동 주연한 〈필라델피아〉(1993), 그리고 존 그리셤 원작의 〈펠리컨 브리프〉(1993)가 개봉하여 모두 박스오피스 홈런을 터뜨리는 덴젤 워싱턴 전성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키아누 리브스 또한 〈포인트 블랭크〉(1991), 〈아이다호〉(1991) 등의 액션과 인디계를 넘나드는 행보로 젊은 미남 배우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상태였고 이듬해에는 액션 영화의 전설인 〈스피드〉(1992)에 출연한다. 즉, 〈헛소동〉은 93년 당시 셰익스피어 배우의 성골 라인을 잇는 영국 배우가 미국 최고의 청춘스타들을 캐스팅해 만든 야심 찬 작품이었다.


영화 촬영 당시에는 부부였던지라 브래너와 톰슨의 케미스트리는 탁월하다. 지금도 연기력으로는 인정받는 이 두 배우는 그 어렵다는 셰익스피어 희극 대사를 고어체로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관객이 미소를 지을 정도로 서로를 놀리는 대사가 오가는 타이밍이나 표정 변화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유일한 흑인 배우이자, 미국인인 덴젤 워싱턴 또한 이 두 명의 연기에 못지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비주얼적으로는 이 캐스트에서 확 튈 수밖에 없는 덴젤 워싱턴이 영화 중반에 가서는 완벽하게 녹아 있다는 것은 영화를 본 관객은 누구나 인정을 할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의 경우 안타깝게도 이 영화에서 연기 방향성이 완전히 잘못 잡힌 나머지,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골든 라즈베리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영화 전체에 대한 평을 할 때,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는 사실 그렇게 크게 생각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원작 『헛소동』에서도 악역 돈 존의 역할이나 동기는 셰익스피어가 만든 모든 악역 중 가장 1차원적이며, 공감이 가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는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력 문제보다는 감독인 브래너의 캐릭터 해석력 부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베네딕(케네스 브래너), 클라우디오(로버트 숀 레너드), 돈 페드로(덴젤 워싱턴), 돈 존(키아누 리브스), 〈헛소동〉(1993)


영화는 배우의 캐스팅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고 무대가 되는 메시나 성의 규모도 작은 저택에 가깝지만, 중세 이탈리아의 분위기라는 미장센만을 생각하면 미술과 조명 모두 훌륭하다. 주인공 남성들이 입는 군인 제복은 2020년에 보아도 세련되었다는 감상이 들 정도로 옷의 태가 잘 뽑혔고, 여성들의 드레스 또한 어떠한 시대적 고증을 따른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배경인 중세 이탈리아의 전원에 어울리는 의상적 미학이 살아있다. 촬영 기술에 있어 확 눈에 뜨이는 부분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아주 거슬리는 부분도 없었다. 다만 엔딩 부분에서 상당히 길고 복잡한 롱테이크를 보여주는데, 그 장면이 요했을 기술적 어려움에 비견할만한 미적인 성과가 있었는지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 있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패트릭 도일이 작곡한 영화음악들이다. 아무래도 대사가 주가 되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징 때문에, 영상화에서 음악이 돋보이는 일이 잦지는 않다. 그런데 〈헛소동〉의 경우 영화를 여는 대사와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같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대사가 바로 영화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노래인 “Sigh No More Ladies”의 가사이기도하다. 이 대사 자체는 원작에도 존재하지만 여기에 멜로디를 붙인 것은 영화 내에서 발타자르 역할로 출연하여 노래도 부르는 작곡가 패트릭 도일인데, 한 번만 들어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었다.


〈헛소동〉의 두 주인공의 연기력, 미술, 음악을 종합적으로 모아보았을 때, 이 영화는 80년대 영화 중 손꼽히는 명작인 〈프린세스 브라이드〉(1978)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동화적 미학과 해학이 있다.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연기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현대에도 관객들을 웃길 수 있다는 사실은 케네스 브래너가 얼마나 뛰어난 셰익스피어 연출가이자 배우인지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클라우디오와 히어로의 연애 부분이 너무나도 아쉽다. 아무래도 브래너 본인이 셰익스피어 순수주의자에 가까운 연출 성향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가 생각한 영화의 주인공이 베네딕과 베아트리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에서는 클라우디오와 히어로의 연애담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티로 남는다.


브래너는 보통 셰익스피어 희극을 영상화하는데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 되어왔던 유머를 연기, 미술, 음악 등 연출적 장치를 통해 기사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원작과 원작자에 대한 존중심을 조금만 내려놓았다면 쉽게 고칠 수 있었던 서사적 결함이 더욱 크게 보인다.


셰익스피어 영상화 한줄평:

동화와도 같은 매력을 잘 살려낸 연출 가운데, 베네딕과 베아트리체가 보여주는 썸의 고전


(끝)


맺는 말: 번역에 관하여

셰익스피어 작품의 일부분을 직접 한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약강 5보격(iambic pentameter)이라 불리는 운율을 지닌 운문(verse)인데, 운율까지 살리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행바꿈을 지킨 형태로 번역합니다.

MIT에서 호스팅 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원서를 번역 대상으로 사용합니다.


『헛소동』 원서: http://shakespeare.mit.edu/much_ado/ful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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