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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bert 이홍규 Mar 22. 2021

[원서 서평] 『체크메이트』, 도로시 더넷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1557년. 잉글랜드의 국왕 메리 1세, 메리 튜더(Mary I, 1516 - 1558)와 스코틀랜드의 국왕 메리 1세,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1542 - 1587)는 국내외 적으로 왕권에 대한 다양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 1558년 두 명의 메리 1세가 마주한 위협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16세기 중반 서유럽의 지정학적인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두 메리에게는 국왕이라는 이유로 한 인간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복잡다단한 난제가 던져진 상황이었다.


(左) 스코틀랜드의 국왕 메리 1세, (右) 잉글랜드의 국왕 메리 1세 [출처: Wikimedia Commons]


첫 번째 위협은 종교 개혁이었다.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잉글랜드의 메리 튜더는 왕위에 오른 후, 부친인 헨리 8세(Henry VIII, 1491 - 1547)가 로마 가톨릭 교회와 반목한 결과로 만들어진 잉글랜드 국교회(후의 성공회)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문제는 후사가 없는 상황에서, 왕관의 후계자는 여동생이자 국교회의 지지자인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 - 1603)라는 사실이었다.


한편 스코틀랜드 왕실은 불과 16년 전만 해도 잉글랜드 국교회에 대한 반발로 잉글랜드와 전쟁을 불사하고, 솔웨이 모스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에도 개종하지 않았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국가였다. 그런데 1558년에 와서는 16세기 초반 유럽 본토에서 종교 개혁을 이끌고 있었던 장 칼뱅(John Calvin, 1509 - 1564)의 제자인 존 녹스(John Knox, 1513 - 1572)가 스코틀랜드에서 개종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두 번째 위협은 결혼상대와 부부 생활을 기반으로 한 국가적 동맹구조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잉글랜드의 메리 튜더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아들이자,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2세(Philip II)와 결혼했는데, 몸이 건강하지 못했던 메리 1세는 두 차례나 상상임신 소동을 겪었고, 두 번째에는 그녀가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다는 오보가 런던에 도달해 축제가 벌어지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자녀의 부재는 두 국왕의 결혼의 결과인 스페인-잉글랜드 동맹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솔웨이 모스 전투 패배 이후, 잉글랜드의 강제 합병 야욕을 막기 위해 메리 스튜어트의 모친 마리 드 기즈(Marie de Guise, 1515 - 1560)가 어린 딸을 자신의 친정인 프랑스로 탈출시켜 그곳에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안배하였다. 메리 스튜어트는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의 왕세자(도팽, dauphin)인 프랑수아 2세(Francis II, 1544 - 1560)와 약혼한 사이였는데, 1558년 결혼을 앞두고 프랑스 왕실은 스코틀랜드를 합병하여 스페인-잉글랜드 동맹에 대항할 수 있는 프랑스-스코틀랜드 동맹을 구상하고 있었다.


채널 제도를 사이에 둔 두 메리 1세의 삶은 기이할 정도로 유사하면서도, 이러한 유사점 때문에 서로의 목에 칼날을 겨누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1557년. 프랑스는 6년 전 시작된 합스부르크-발루아 전쟁의 대미에 다다르고 있었다. 유럽 본토 패권, 가톨릭 세력의 진정한 패자를 가리기 위하여 프랑스의 국왕 앙리 2세(Henry II, 1519 - 1559)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왕조의 총수 카를 5세(Charles V, 1500 - 1558)에게 전쟁을 선포했고,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 전쟁은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가 부친을 돕기 위해 프랑스로 진격하면서 프랑스 전역으로 전선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군대는 스페인-잉글랜드 연합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오히려 최후의 반격을 시작했다.


프랑수아-에두아르 피코 作, 〈칼레 공성전〉(1838)  [출처: Wikimedia Commons]


1558년 1월. 프랑스의 군대는 티옹빌 전투의 승리 후, 2세기 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흑태자(Edward the Black Prince, 1330 - 1376)가 크레시 전투의 승리로 탈환한 유럽 본토 최후의 보루 칼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7일에 걸친 이 전투에서 프랑스는 잉글랜드 군을 완전히 패배시키고, 눈가시였던 칼레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도로시 더넷의 《라이몬드 연대기》의 6부, 그리고 마지막 작품 『체크메이트』는 러시아에서 귀환한 세비니 백작, 라이몬드의 프란시스 크로포드가 프랑스-스페인 전쟁에서 장군으로 참전해, 자신의 목을 조아오는 과거를 마주하고 청산하는 모험을 그려낸다.


『체크메이트』의 시작에서 프란시스 크로포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지난 10년간 유럽 전역과 광활한 러시아 제국을 무대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활용하려는 군주들과 자신의 목숨을 노려오는 정적들 사이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위태로운 행보를 보이며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겪은 수많은 부상과 자신이 아끼던 인물들이 하나씩 세상을 떠나가고, 자신의 가문에 얽힌 추악한 혈연의 비밀을 깨달아가며, 라이몬드는 더 이상 살아가려는 의지를 잃고 있다. 그 와중, 그는 자신의 일생을 바쳐 사랑할 수 있는 여인, 자신의 구원자가 누구인지 깨달았지만, 지난 10년 살아온 본인의 인생은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라이몬드는 타의에 인해 러시아 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에게 러시아 제국에서의 2년은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도피처로 남게 된다. 프랑스 왕실은 라이몬드에게 파리 직전까지 닥쳐오는 스페인 군대에 맞서 싸운다면 러시아 제국으로의 귀환을 포함하여,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는 매력적인 제안을 하고, 라이몬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군 사령관이라는 직위를 받아들이고 세인트 메리 시절의 전우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선다.


프랑스-스페인 전쟁, 칼레 공성전과 뒤이어 일어나게 되는 프랑스 왕세자 프랑수아 2세와 스코틀랜드의 소녀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세기의 결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1503 - 1566)의 등장은 라이몬드의 남은 이야기를 펼치기 위한 완벽한 무대로 거듭난다.


영웅의 삶과 개인의 행복

투르게네프가 고안한 "햄릿형 인물" 또는 "돈키호테형 인물"의 분류에서 보자면, 라이몬드는 햄릿과 같은 고뇌를 돈키호테와 같은 행동력으로 풀어내는 인물이다. 6권 즈음에 와서는 라이몬드의 천재성을 전 유럽의 군주가 노리거나 두려워할 만큼, 그는 시대와 전황의 핵심을 짚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한편 이러한 판단력에 걸맞은 시원하고 직선적인 행동력 또한 증명한다.


그러나 모든 서사가 끝나고 났을 때, 독자는 그가 심적으로 받은 고뇌와 주변인들에 대한 깊은 죄책감, 본인이 희생시킨 친우들에 대한 부채감을 느끼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라이몬드 본인의 결정과 야망에 따라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던 그의 삶은 사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선택을 내리도록 몰려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져 왔다.


어쩌면 도로시 더넷이 그리고 싶었던 것은 가장 고결한 르네상스적 영웅, 만인의 지도자가 어떠한 압박에 눌려 살아가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가치를 희생해야 하는지가 아닐까 싶다. 일반적인 영웅 서사는 독자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독자가 영웅에 자신을 투영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물론 읽은 독자들마다 다채로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라이몬드 연대기》지만, 단 한 번도 "라이몬드가 되고 싶다"라는 감상이 들거나, "라이몬드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라는 감상을 읽어 본 경우가 없다. 오히려 오디오북을 녹음한 성우인 데이비드 몬티스(David Monteath)는 소설의 전개에 너무 충격을 받아 녹음을 하다가 작업을 멈춘 적이 있다고 고백을 할 정도로 그의 삶은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출처).


물론 서사적으로 보면 6권에 걸친 시련은 석탄에게 가하는 압력으로, 모든 사건이 끝났을 때 불길에서 금강석이 되어 나타나는 라이몬드의 모습을 위한 준비작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대함을 위해서는 개인의 행복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해묵은 경구는 라이몬드의 삶을 통해 뼈저리게 증명된다.


1부 『왕들의 게임부터 5부 반지의 성탑에 이르기까지, 더넷 여사는 일련의 서사적 공식을 완성해왔다. 개별 소설은 모두 라이몬드의 주위 인물들이 그의 불가사의한 결정에 따라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음모와 시련으로 가득 찬 모험을 시작하게 되고, 라이몬드가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제반 상황과 논리는 소설의 중반부 이후부터 독자에게 서서히 그 심연과도 같은 깊이를 드러낸다.


개별 소설의 종반부에 가서는 독자는 이러한 전개 외에는 다른 어떠한 전개도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라이몬드가 결단력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본인이 자신의 숙명을 깨달은 순간 그 어떠한 고통도 불사하고 빠른 속도로 숙명의 전개를 위해 달려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3부인 무질서한 기사들부터, 6부 체크메이트』에 이르기까지 더넷은 새로운 영웅을 정성스레 조형해 나간다. 바로, 1권에서는 10살의 소녀로 등장했던 필리파 소머빌이다. 라이몬드에 비견할 수 있는 천재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녀의 결정은 라이몬드와 상극의 이유로 이루어진다.


라이몬드의 결정이 종합적 판단 아래 수많은 문을 닫고 유일하게 남은 하나의 문을 여는 모양새라면, 필리파는 본인이 열고 싶은 단 하나의 문을 찾아 망설임 없이 열어나간다. 그녀의 결정은 때로 라이몬드를 포함한 주변 인물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필리파가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그 순간에 설명이 되며, 그 직관이 가져올 후폭풍은 응당 본인이 짊어져야 한다고 판단한다.


바로 필리파가 라이몬드의 삶의 반대편에서, 위대함에 대한 집착과 타인의 평가에 두는 가치가 덧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르네상스 유럽과 지중해라는 무대에서, 라이몬드와 소머빌의 사이는 마치 두 개의 행성이 공전하듯이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던 그 사이가, 『체크메이트』에서는 마치 둘이 서로를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위태롭게 돌진하며 좁혀진다. 한밤 중 파리에서, 라이몬드와 함께 자신들을 노리는 청부 살인업자들을 피해 탈출하던 중 필리파는 둘의 관계에 관한 통찰을 얻게 된다.


원문:

A heady experience, for an only child accustomed to single-thread happiness, and not to the moment of creation that occurs when the warp is interlocked with the weft. When the singer is matched with the soundingboard; the dream with the poet. When the sun and the fountain first meet one another.


번역:

몹시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특히 하나의 줄로만 이루어진 행복에 익숙했던 외동딸에게는 더욱이나, 날실이 씨실과 겹쳐질 때 일어나는 창조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가수가 공명판과 조화하는 순간, 꿈이 시인과 만나는 순간과 같았다. 태양과 분수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는 시리즈 사상 가장 긴 분량을 가진 (약 780 페이지) 본 작품에서, 가장 빠른 속도감을 제공하는 장치로 사용되어 독자에게 밤을 새워서라도 둘의 행보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고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20세기 역사소설 중 가장 서정적이고 만족스러운 결말로 라이몬드와 필리파의 10년에 걸친 여정은 끝을 맺게 된다.


두 개의 태양

『체크메이트』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가장 깊게 남았던 놀라움은 (물론 온몸에 돋았던 소름이 가신 이후에) 《라이몬드 연대기》가 주조연을 묘사해 나가는 방법이었다. 《라이몬드 연대기》에서 라이몬드가 주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연대기의 주인공이 어스시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한 분석이다.


라이몬드를 굳이 주인공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서사 내의 사건이 그의 행적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는 라이몬드의 주위를 살아가는 이들의 눈을 통해 르네상스 유럽을 경험한다. 라이몬드는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자 소설의 배경이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독자가 시점과 의식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주연이 누구인지 고민을 하다 보면 해당 서사에서 라이몬드라는 태양이 발하는 빛을 가장 환하게 반사하고 있는 행성들이다.


1부 왕들의 게임의 윌 스콧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2부 여왕들의 수의 펠림 오리엄로와 우나 오드와이어, 3부 무질서한 기사들과 4부 유향을 받은 병정들의 제롯 블라이스, 유향을 받은 병정들의 마르트, 그리고 제롯 블라이스와 함께 3, 4부 주연이자, 5부 반지의 성탑과 6부 『체크메이트』를 통해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부상하는 필리파 소머빌 모두, 라이몬드라는 태양계의 행성으로 자신만의 여정을 시작한다.


만약 이러한 평가만을 보면 평범한 군상극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기 전에는 정확히 어떠한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문학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시점 묘사는 독자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는 르네상스 역사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의 묘사에서 빛을 발한다.


작가 미상, 〈프랑수아 2세와 메리 스튜어트〉(1558) [출처: Wikimedia Commons]


도로시 더넷이 1547년부터 1558년까지의 유럽을 이 연대기의 무대로 삼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모두 메리 1세라는 여성 국왕의 통치하에 있었고, 이들의 행보는 마치 두 개의 태양처럼 본토 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합스부르크-발루아 왕조의 전쟁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유럽 반대쪽의 강호, 오스만 제국에서는 쉴레이만 1세가 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실부인인 휘렘 술탄을 맞아 이슬람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여성의 목소리가 강해진다. 소설에도 잠시 등장하고, 이 직후에 왕위에 오를 엘리자베스 1세는 유럽의 패권을 영국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남성과 여성이 현실 정치판에서 만나 자유롭게 수를 겨누게 된 이 시대에서, 도로시 더넷은 시빌라 크로포드와 필리파 소머빌, 마르트라는 각각 다른 배경의 여성을 통해 르네상스 여성의 삶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다. 물론 이 여성들은 칼을 들고 전쟁에 참여하거나, 용병단을 이끌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여 주도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이들은 칼날만큼 날카로운 혀와 펜이 얽혀나가며 만드는 사선에서 각자의 전쟁을 치러나간다.


여성 군주들 주위를 불나방처럼 떠돌며 야욕을 채우려는 귀족들 사이에서 프란시스 크로포드라는 공통점을 가진 세 명의 여성은 각자가 정의한 의로움을 위해 때로는 서로와 부딪히고, 때로는 협력해간다. 도로시 더넷이 역사소설가로 가진 가장 뛰어난 역량은 프란시스 크로포드가 종군하는 전쟁터와, 살롱이라는 전쟁터 양쪽에서 물들이 내리는 결정의 무게를 피부에 와 닿도록 묘사하는 필력이다.


하지만 도로시 더넷이 보이는 문학적 역량의 꽃은, 20세기에 와서 낭만주의, 로망스 소설이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이다. 6권 내내 태양처럼 홀로 빛을 발하던 프란시스 크로포드는 종장에 와서 필리파 소머빌이라는 또 하나의 태양을 찾게 된다. 두 태양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이유로 한 곳에 도착했지만, 뒤돌아보면, 둘이 도착할 수 있는 목적지는 이 곳뿐이었다. 『체크메이트』라는 제목과 몹시 어울리는 귀결이다. 체스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내고, 그 마지막 순간에는 킹이 움직일 수 없도록 포위하면서 끝나게 된다.


소설의 숙명적 분위기는 아직까지 종교의 영향에 젖어있던 시대의 인물들이 운명과 필연이라는 개념을 바라보았던 사상에 대한 철학적 고증이기도 하며, 이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키워드인 점성술, 그리고 6권에 등장하는 노스트라다무스를 통해서도 은유되고 있다.


세자르 드 노트르담 作, 〈미셸 드 노트르담/노스트라다무스〉(1614?)  [출처: Wikimedia Commons]


하지만 신을 잃은 시대에 운명을 믿으며 살아가던 인물들이 정해진 결말을 위해 고난을 이겨나가는 이야기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프란시스 크로포드는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


원문:

"We are here. We will work together for what purpose seems to us right. We will work with calm, and with tolerance, and please God, with saving laughter.

"We know something of men. We know of evil, and of sloth, and of self-seeking ambition. We accept it, and will use what we have of wit and good faith to overcome it.


번역: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옳은 목적을 위하여 함께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차분하게, 넓은 아량을 가지고, 그리고 신이여 제발 허락해 주신다면, 구원의 힘을 가진 웃음소리와 함께 일할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이나마 인간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는 악과 나태를, 그리고 자기 충족만을 위한 야망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가진 재치와 선의로 이겨나갈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정의지만, 낭만주의는 외적, 내적인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거대한 담론이다. 그리고 도로시 더넷은 더없이 우아한 문장과 아름다운 인물, 그들이 겪는 처절한 비극, 그리고 잿더미에서 불사조처럼 날아오르는 인간의 의지를 통해 또렷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끝)


『Checkmate』(1975), Dorothy Dunnett

https://www.goodreads.com/book/show/112074.Check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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