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로 읽은 문학작품이어서 영문으로 생각을 정리하다가 일단 영문으로 글을 마치고,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때문에 표현이 어색한 부분이 있다면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립니다.
수개월이 걸린 여정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도로시 더넷의 《라이몬드 연대기》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 작품군에 대해 들었던 모든 이야기가 퍼즐이 맞춰지는 듯 이해가 된다. 찬사, 작지만 충성스러운 팬덤, 그리고 더넷의 수많은 팬들이 실제로 작가가 된 연유까지도- 물론 마지막 부분은 모든 독자에게 적용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더넷은 지난 세기 영문학이 배출해낸 글 중 거의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소설을 쓰는 작가이며, 아마도 그 목록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만약 초반의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면, 독자는 라이몬드의 비극적 모험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린다. 한편 이 독서 경험은 독자를 몹시 힘들게 만들기도 하는데, 서사상 더넷이 주인공을 몹시 사디스틱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물론, 외적인 요소도 존재한다. 독자-작가들은 이렇게 미적으로 완성된 글이 적어도 같은 세기 내에 동일한 언어로 또 한 번 배출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라이몬드 연대기》를 끝낸 독자-작가들은 문학적 환희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절망적 성찰을 동시에 느끼며, 그래도 이 경험이 끝났다는 사실에 만족해한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완독한 것은 독자들에게 있어 일종의 이정표와도 같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서 잠깐! 독자가 작품을 끝냈을지는 몰라도, 이 작품은 아직 독자와 끝나지 않았다. 독자는 문학 관련 블로그, 온라인 토론 그룹, 도로시 더넷 소사이어티의 잡지, 해설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섭렵하기 시작한다. 이 경험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는 깨닫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역사적 인물들과 알아차리기 힘든 문학적 인용구들, 더넷이 번역하지 않은 모든 프랑스어, 라틴어, 러시아어 대사 모두가 단순히 서브텍스트가 아니라 메타텍스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교에 가까운 오래된 팬들의 온라인 토론을 읽다 보면 얼마나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었고, 첫 번째 독서 중 이해를 하지 못하고 넘어갔는지를 깨닫게 되며, 더넷이 쓴 글의 표면 조차 닿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라이몬드가 돌아왔다…"
1회 완독으로 얻는 지식만을 가지고 독자-작가가 더넷의 글을 유의미하게 분석하기에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1회는 독자-작가들을 개종시키기에는 더 없이 충분하고, 이들은 눈을 뜬 바울의 마음가짐으로 더넷의 복음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넷 복음서는 더 큰 범위에서는 "낭만주의 역사소설 경전"의 으뜸가는 서적이다.
이 경전의 다른 사도들인 뒤마, 월터 스콧, 로버트 그레이브스처럼 더넷의 산문은 다양한 형용사로 표현될 수 있다. 더넷의 글은 관능적이고, 방대하며, 장광설적이다. 그녀가 묘사하는 등장인물들의 액션은 포괄적이고, 순간에 충실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그리는 장면은 파노라마와도 같지만 한편으로는 시적이다. 그녀는 16세기 프랑스의 도시 지붕 위에서 벌어지는 정신없는 추격전을 묘사하기도 하고, 오로라가 드리워진 밤하늘 아래 러시아의 설원을 질주하는 고요한 썰매 여행을 그려내기도 한다. 두 장면 모두 엄청나게 흥미진진하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절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모든 수식어 아래 더넷의 문학적 뿌리가 자리 잡고 있으니 바로 낭만주의다.
몹시 거칠게 요약하자면, 더넷은 운문에 가까운 산문을 통해 이상적인 가치를 말초적으로 전달하고, 형이상학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그녀가 산문으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독자는 그녀가 고대, 그리고 중세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증거를 이야기 내에서, 그리고 글을 쓰는 형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이몬드는 유명한 기사도 발라드와 옛 스코틀랜드 시를, 종종 한 장면 안에서 읊어댄다.
작품군 초반에서 라이몬드의 입을 통해, 그리고 후반에는 필리파 소머빌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시와 발라드는 인물의 진심을 숨기면서도, 주문과도 같은 낭송 내, 인물의 고백에 은유적 의미를 더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직접적 인용과 더불어서, 작가 본인 또한 산문에 시와도 같은 운율을 드리워 워즈워스나 키츠와 같은 영국 낭만주의 시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문장을 쓰는데, 해럴드 블룸은 이러한 낭만주의 시인들을 묶는 공통분모는 자신들이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어 있었던) 진정한 영문시(English tradition of poetry)의 전통을 부활시키고 있다"는 신념이라 평가했다.
물론, 스코틀랜드 출신인 더넷은 본인의 문학적 뿌리를 워즈워스나 키츠보다는 월터 스콧, 그리고 제임스 맥퍼슨으로 더듬어 올라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작품군 내내 그녀가 인용하는 스코틀랜드 켈트 민속시들은 더넷이 확실히 스코틀랜드 문학적 자아를 성립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모두) 영어라는 공통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잉글랜드 계열 낭만주의에서 비평적으로 유의미하게 구분하는 것은 힘들 수도 있지만, 스코틀랜드를 잉글랜드와 동떨어진, 독자적 문화로 그려내려는 의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이는 《라이몬드 연대기》의 서사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더넷의 글은 이 낭만주의적 기운에 흠뻑 젖어있으며, 그녀는 작품 전반에 이 문학적 사조를 대담하게 적용한다. 『왕들의 게임』과 『체크메이트』에서 그려지는 스코틀랜드는 목가적인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추구하는 유미주의적 관점은 단순히 낙원과도 같은 자연 광경을 넘어, 육체적인 묘사에도 영향을 끼친다. 더넷은 라이몬드가 입는 흠잡을 데 없는 옷가지, 그의 아름다운 육신, 수레국화처럼 푸른 눈을 묘사하기 위해 수많은 문장을 사용한다. 필리파 소머빌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부상하면서, 더넷은 필리파가 보낸, 좋게 말하면 기묘한 10대 시절이 어떻게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허영이 없는 귀족적 우아함을 안겨주었는지 설명한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은 《라이몬드 연대기》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며, 실제로 서사 내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기회와, 그에 걸맞는 고통도 함께 선물하기도 한다. 이는 장르로 작용하는 로맨스 소설의 특징이기도 한데, 당연히 낭만주의 문학적 특징과는 별개로 연구되어야 한다- 일단은.
《라이몬드 연대기》의 주요 서사 중 한 줄기는 라이몬드가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찾는 비극적 탐색이다. 그가 연애와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몹시 문제가 많지만, 이 묘사는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천 스튜어트, 우나 오드와이어, 귀젤 모두 그에게 육체적,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사가 진행되면서 내적으로 꼭꼭 숨긴 감수성과 사회적으로 그에게 기대되는 이성의 균형을 잡는 작업을 몹시 힘들어한다.
물론 장르적 분류 관점에서 보는 로맨스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와서는 자체적인 패러디가 된 경향이 있지만, 로맨스 소설의 원류는 낭만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로맨스, 즉 연애를 (심지어 작품 제목에도 사용하면서) 이성과 감성이 조화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제시하고, 어쩌면 결론까지 내려버린 인물은 다름 아닌 제인 오스틴이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전쟁을 충실한 고증으로 묘사하고, 라이몬드의 모험을 그려내면서도, 이 작품의 근간에는 제인 오스틴을 연상케 하는 제도타파주의적(iconoclastic) 로맨스가 존재한다. 사회적인 부담과 기대를 뛰어넘는 사랑,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는 사랑이 존재한다.
《라이몬드 연대기》의 반은 제목에도 이름이 들어가 있는 주인공이 지리적으로 상징적으로, 스코틀랜드인이라는 자신의 자아를 버리고 외적 세계로 향하는 여행과, 그리고 결국 그곳으로 회귀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물론 다른 반은 필리파 소머빌의 여정으로, 초반에는 라이몬드라는 거대한 별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으로 시작하지만, 그녀의 성장을 통해 둘은 마치 서로를 공전하는 쌍성과도 같은 서사를 그려간다. 물론 이들의 관계는 각자가 안고 있는 내적인 고통과 외적으로는 지정학적이고 사회적인 기대가 얽혀 복잡하게 꼬여간다. 하지만, 필리파 소머빌이 하나의 별로 자리 잡으면서 그녀는 라이몬드를 자신의 공전 궤도로 끌어들이고, 두 개의 별은 완벽한 움직임으로 서로를 향해 회전한다.
이 지점에서 해럴드 블룸이 낭만주의 시문학에 대한 비평 중, 낭만탐색(Quest-Romance) 영웅이 공통적으로 거치는 두 단계의 자아 체계, 즉 프로메테우스와 "진정한 인간, 상상력(the Real Man, the Imagination)"을 제시했음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낭만탐색의 영웅은 탐색을 시작하면서, 시인 자신의 발현으로 작품의 외적 요소, 즉 정치나 체계화된 종교, 또는 문학적 사조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첫 번째 탐색이 끝나고, 먼지가 가라앉고 나면, "진정한 인간, 상상력"이 잿더미에서 깨어나 "자아의 내부와 그 복잡다단함"을 향하는 탐색을 떠나는 것이다.
물론 블룸의 비평은 잉글랜드 낭만주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앞에도 언급했듯이 더넷이 《라이몬드 연대기》에 뒤섞는 고전시들과 운율이 살아있는 산문은 그녀 본인도 자신을 해당 문학 사조, 물론 블룸 비평의 대상이 되는 잉글랜드 시인들의 스코틀랜드 계열 라이벌들이라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일원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와 더불어, 더넷의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블룸의 낭만주의 시문학에 대한 해석을 접하고 나면 라이몬드와 필리파가 유럽 지도 전체에 그려나가는 여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라이몬드는 실제로 프로메테우스적인 존재로 이 여정을 시작한다. 그는 영웅적인 용병대 대장이며, 여러 개의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정치적인 천재로 그려진다. 물론 그가 봉건주의적 제도를 대하는 방식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몰라도, 그는 정계의 암투에 깊이 관여되어 있으며, 그 구조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라이몬드가 러시아에서 보내는 짧은 시간은 그가 얼마나 표면적 세상에 얼마나 정통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그곳에 심지어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세상을, 자신만의 에덴동산을 구현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자만심이 꺾이고,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자아와 의미 사이의 화해를 이루어낸다.
더넷이 《라이몬드 연대기》의 주인공을 통해 도착하는 결말은 서사적이나 감성적으로 성취감을 충족시킬 수는 있어도, 어찌 보면 장르의 공식을 따라가고, 세속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 것이 낭만주의 영웅의 운명일 수도 있다. 블룸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모든 유미적인 쾌락은 전희에 불과하고, 진정한 자극의 덤이며, 자아도취적인 환상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를 기반으로 낭만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환원주의적이지만, 독자 대부분은 라이몬드의 여정이 장르나 문학적 운동을 초월하지 않는다는 비평에는 수긍할 것이다.
낭만주의라는 사조 전체에 은유적 깊이가 없다는 의견은 오웬 바필드의 평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바필드는 워즈워스의 실패는 "만약 표면의 저편에 상징의 실체가 부재한다면, 우리가 이러한 표면을 경험하고, 묘사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묘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지 못했다는 곳에 있다고 평했다.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해 유의미한 응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시적인 문학적 사조에서 낭만주의가 현실주의에게 길을 내어준 것이 아닐까.
블룸도 이러한 비평에 동의하는 듯한데, "워즈워스가 시문학에서 이루어낸 코페르니쿠스적 사상 전환은 주관성(subjectivity)을 제외한 모든 주제(subject)의 소실, 즉 무엇에 대한 시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버렸다"라고 평하면서, 워즈워스를 몹시 애정하고 아끼면서도 "굳이 필요했냐"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질문이 바로 라이몬드가 상상을 뛰어넘는 모험으로 가득 찬 여정 끝에 독자가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여기서 바로 독자는 로맨스(romance)에 대해 낭만주의적(Romantic) 방법론을 적용하고, 곧이어 낭만주의(Romanticism)에 대해 낭만적(Romantic)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만약 앞에서도 언급한 블룸의 두 단계 영웅 서사를 작가 본인에게 적용해 본다면, 더넷의 문학적 탐색은 그녀가 소설의 서문에서 고백하듯이, 영웅을 통해 르네상스 유럽의 파노라마를 그려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다.
저는 몇 권의 책에 걸쳐, 클래식한 영웅의 본성과 경험을 탐험하고 싶었습니다. 뛰어난 재능의 지도자로, 하늘의 별을 화나게 한 기구한 운명이 충격적이고, 유쾌하며, 위험한 형태로 펼쳐지는 과정을 가장 세세한 면모까지 따라가며 묘사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르네상스 시대를 살아가도록 배치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더넷은 라이몬드의 여정을 그려내면서, 작가로 내적인 여행을 시작하고, 사상적 동기와 그 모든 것의 답이 무엇인지 자문한다. 라이몬드와 필리파가 도달한 결론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이다. 이 사랑은 세상의 미추와 갖은 고난 모두를 받아들이기로 하는 결정이다. 셀 수도 없는 외적인 고통과 제약 때문에 너무나도 오랫동안 미뤄온 이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은 자신들을 사랑하는 방법 또한 배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라이몬드 연대기》는 지고의 로맨스 소설이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체크메이트』에서 더넷과 라이몬드는 거의 동시에 스코틀랜드의 낭만주의 영웅이라는 자아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깨닫는다. 라이몬드의 경우, 필리파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두통을 유발할 정도로 골치 아픈 가족사와 그들이 살아온 스코틀랜드를,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도착한 결론 때문에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더넷의 경우, 그녀는 월터 스콧이나 아서 코난 도일의 영웅처럼, 스코틀랜드를 상징하고 스코틀랜드 인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영웅을 창조해냈다.
어떻게 낭만주의에 대해 낭만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고문헌
Bloom, H. (1970). The Internalization of Quest-Romance. In H. Bloom (Ed.) Romanticism and Consciousness (pp. 3-24). W. W. Norton & Company.
Barfield, O. (1970). Symptoms of Iconoclasm. In H. Bloom (Ed.) Romanticism and Consciousness (pp. 41-46). W. W. Norton & 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