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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근 Sep 09. 2020

나는 뉴질랜드로 간다.

나의 사랑하는 그리움 01

만감이 교차한다. 기어코 뉴질랜드란 낯선 땅을 밟았다. 이곳은 남섬의 어느 소도시이며, 앞으로 내가 지낼 홈스테이 집이다. 방에는 빨간 시트가 깔린 커다란 침대가 있다. 침대 위에 앉아 벽에 기대 허리를 세웠다. 두터운 이불을 허리까지 덮었다. 그리고 허벅지 위에 노트북을 올렸다. 은은한 주홍 빛을 뿜는 스탠드를 켰다. 이미 적막이 내린 창밖으로는 작은 집들이 반짝인다. 그 불들이 하나씩 꺼지고 나면, 별들이 하늘을 수놓을 것이다. 내가 정말 뉴질랜드에 왔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워킹홀리데이는 내게 그런 것이었다. 아득히 멀어 보이는 것. 그저 막연하게 꿈틀거리는 것. 1년이란 시간을 타국에서 살게 된다면, 내가 경험한 그 나라를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뉴질랜드란 나라를 알고 싶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끌림이 있고, 환상이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뉴질랜드 관련 방송을 찾아봤다. 다큐, 오락, 개인 크리에이터 할 것 없이 다 찾아봤다. 가이드북, 에세이, 지식서 등 책도 여섯 권 정도 읽었다. 팟캐스트도 들어봤다. 뉴질랜드에서 촬영된, 영화 '반지의 제왕'도 모두 봤다.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생의 자취방이었다.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기 6개월 전이다.





'그래서 저는 지금 뭘 해야 하죠?'


뉴질랜드 생활 12개월의 밑그림을 그려봤다. 첫 3개월은 어학연수를 하며 영어를 배운다. 그다음 7개월은 돈을 벌 것이고, 남은 2개월은 여행을 해야겠다. 그 유명한 밀포드 트레킹도 꼭 하고 싶다. 그런데 이건 뉴질랜드에 도착한 뒤의 모습이다.


뉴질랜드로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아니 모르는 게 많다. 비자 신청, 신체검사, 여권 만들기, 지역 선택, 어학원 등록, 홈스테이 등록, 국제선 비행기 예매, 환전 등.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아는 것도 없고, 돈도 없다. 당장 비행기표를 살 돈, 어학연수 비용, 홈스테이 숙식비, 초기 3개월 생활비도 없다. 돈을 모아야 한다. 앞서 말한 저 답답한 것들을 함께 준비하면서 말이다. 막연했다. 그때 알았다. 어학연수는 유학원과 함께 준비해야 한다. 워킹홀리데이 신청 절차까지 유학원에서 모두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상담시간이 꽤 길었다. 대충 이해는 되지만 그래서 당장 내일부터 내가 할 것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유학원 상담사에게 물었다. 답은 명쾌했다.


- 그래서 저는 당장 무엇부터 하면 되나요?

- 나머지는 맡겨두시고, 돈 모으세요.


3개월치 짐을 싸서 건설현장 숙소로 들어갔다. 상담을 받은 뒤로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기 4개월 전이었다.





'간다. 진짜 간다.'


3개월 동안 700만 원을 벌어야 했다. 그래야 준비하고자 하는 것들이 맞아떨어진다.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90일 동안 7일을 쉬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최장 40일까지 일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밤 12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들었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휴대폰을 바꿨고, 두 번째 월급을 받았을 때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이제 실감이 난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가고 싶은 도시, 내가 다니고 싶은 어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1,000만 원을 벌었다. 최대한 저렴하게 갈 수 있는 도시와 어학원에서, 내가 가고 싶은 도시와 어학원으로 목적지가 바뀌었다.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기 2개월 전이었다.





'지금 이 시간'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리고, 지난 6개월을 되감아 본다. 나는 뉴질랜드의 아늑한 소도시 넬슨에 있다. 소박하지만 부족함 없고,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답다. 창 밖은 동화 같고, 홈스테이 하우스는 드라마 같다.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테라스에는 새가 날아와 앉는다. 이제 뉴질랜드는 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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