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추억

by 애기타

‘우 to the 영 to the 우, 동 to the 그 to the 라미.’

아내가 즐겨본 TV 드라마 주인공과 친구의 인사법이다. 세계적 공급망을 가진 N 프릭스에 소개되어 몇 나라에선 드라마 인기 순위 1위를 했다고 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주인공의 직업이 변호사로 다양한 법률적 문제를 독특한 접근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을 비롯한 출연진의 뛰어난 연기력도 볼만했으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고래가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였다.


유년 시절부터 중학교 졸업까지 성장기의 온갖 추억이 어려 있는 울산은 난류와 한류가 마주치는 바다와 접하고 있어 다양한 어종과 해산물이 풍부하였다. 방어가 많이 잡힌다고 붙여진 이름의 방어진(방어동)과 전국 제일의 포경산업의 전진기지로 지금은 고래축제로 유명한 장생포가 시 외곽에 있다.


서울을 강남과 강북으로 가르는 한강처럼 십리 대밭(숲)을 거쳐, 시 중심을 가르며 동서로 흐르는 태화강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된 도시 지형이 서울과 흡사하다. 친구들과 멱을 감다 큰일 날 뻔했던 태화강 하류에는 지금은 사라진 재첩이 많이 잡혀 재첩국이 유명했다. 매일 아침 정구지(부추)를 듬뿍 넣고 끓인 재첩국을 헝겊으로 둘러싼 항아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재치국(재첩국) 사이소”를 외치던 아주머니가 항아리 속을 국자로 휘휘 저어 퍼주던 재첩국 그 향과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농촌과 어촌이 어우러진 곳이라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볼거리가 참 많았다. 다양한 농산물과 함께 고등어, 갈치, 새끼상어, 문어, 멍게, 해삼, 미역 등 다양한 해산물은 언제 봐도 흥미롭고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생선의 눈을 보고 신선도를 판단함을 그때 알게 되었다. 전대를 허리에 찬 주인이 생선을 갈고리로 가리키며 “생선 눈을 한 번 보이소”라고 했다. 눈자위가 희고 눈동자가 까만 것이 물 좋은 생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다양한 어종 중에서도 고래고기를 파는 곳은 늘 내 발걸음을 붙들었다. 됫박 크기로 삶아낸 고깃덩어리를 함지박에 누런 삼베 보자기로 덮어두고 작은 덩어리를 도마 위에 올려 손님이 원하는 만큼 썰어 팔았다. 고래고기는 부위별 맛과 값이 다르다. 내장 부위를 최고의 맛으로 쳐 가장 비쌌고, 부위별 맛이 다르기에 고래고기에는 열두 가지 맛이 난다고 했다. 또 특유의 향과 기름기가 많아 외지인에겐 친숙하기가 쉽지 않은 음식이기도 하다. 고래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고기는 식용으로 뼈와 수염은 공예품 재료, 가죽과 심줄은 스포츠용품의 재료로 기름은 식용 외 램프를 밝히는 연료, 윤활유, 비누, 양초, 약품 등 공업 분야의 재료로 쓰였다. 어릴 적 명절이나 제사 때 등잔불을 사용하던 큰집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세수할 때 코안의 그을음이 묻어 나왔던 기억이 새롭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시장에 가서 고래고기 오십 환 어치씩 사 먹기도 했다. 언젠가 어머니가 추석빔으로 사주신 코르덴 바지 주머니 속에 신문지로 싼 고래고기를 넣어둔 채 한 점씩 꺼내 먹으며 놀다 해거름에 집에 갔다. 고래고기 기름이 배어 나와 바지 주머니에 커다란 얼룩이 져 있는 모습을 본 어머니에게 새 바지를 다 버려놓았다고 야단맞기도 했다. 지금은 상업적인 고래잡이와 고래고기 위판과 공매가 금지되어 정치망(자리그물)에 걸린 혼획混獲된 밍크고래 정도나 맛볼 수 있으며, 귀한 만큼 값도 비싸 고래가 걸린 그물의 주인은 그야말로 ‘로또’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유년 시절부터 고래 이야기를 듣고 또 고래고기를 맛보며 자랐기에 울산 사람들에겐 고래는 고향의 상징이요, 고래고기는 향수 어린 음식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동네 어른들을 따라 장생포로 바다 구경을 하러 갔다.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수평선에 뱃고동을 울리며 들어오는 배가 있었다. 뱃고동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고래 잡았다' 소리치며 우르르 포구로 몰려갔고 우리 일행도 뒤따랐다. 포경선은 포구와 가까워질수록 신이 난 듯 뱃고동을 거푸 울려댔다. 포구에 도착한 배 뒤쪽엔 등에 꽂힌 몇 개의 커다란 쇠 작살과 함께 밧줄에 묶여있는 초가집 지붕만 한 고래가 보였다.


해체장으로 끌어올려진 고래는 바로 해체작업이 시작되었다. 사용하는 장비는 의외로 단순했다. 고교 시절에 읽었던 소설 삼국지 관운장의 청룡언월도처럼 기다란 칼자루에 날이 선 긴 칼이 전부였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칼이 닿는 부위마다 그냥 쩍 하고 갈라지는 듯했다. 적당한 크기로 해체된 고래고기는 저울로 무게를 잰 후 기다리고 있는 상인들과 식당 주인에게 넘겨졌다. 고기를 받은 사람들은 집과 해체장을 몇 차례 더 바쁜 걸음으로 오갔다. 60여 년 전의 아스라한 추억으로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래에 대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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