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명의 천사
이건 정말 너무한 교통체증이다. 2년 전 양평에 귀촌한 친구집 방문과 지난해 근무지 행사로 이 길을 다녀본 기억으로 집을 나선 게 두 시간 반 전이다. 그것도 약속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미 도착했었어야 할 그 시간에 팔당대교 남단 진입로 부근에서 움직이지 않는 차량 행렬에 끼어 속이 타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평상시 집에서 예까지는 이십여 분이면 족한 거리였다. 원래 생각했던 덕소 방향의 길이 평상시 보다 많이 막힌다는 문자에 강 건너 강변도로나 춘천 고속도로를 이용하려 남양주 IC로 들어선 게 이 엄청난 고난의 시작이었다. 10분도 안 걸렸던 한강 다리 통과에 무려 40여 분이나 걸렸고 강변도로와 우회도로 사정도 다를 바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렸으나 이곳의 사정은 거의 주차장이나 다름없는 형국이다. 지난 3년간 외출 자제와 마스크 착용 등으로 억눌린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된 탓일까. 방역 정책 완화 후 처음 맞이하는 3일 연휴에 서울을 벗어나려는 차량의 홍수 속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생각보다 빠른 등단을 했다. 등단을 계기삼아 더 정진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마련된 나를 위한 축하연에 가는 길이다. 이 시간이면 예비모임이 끝나고 본 행사가 시작될 시간이다. 도로가 뻥 뚫려 날아가야 행사 중반에나 얼굴을 내밀 수 있겠으나 도무지 차량 정체가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차량의 흐름과는 반대로 왜 그리 시간은 잘 가는지…. 행사 일정표의 시간을 몇 차례 확인하는 동안 이마엔 진땀이 등어리엔 식은땀이 났다. 차량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오토바이가 그리 부러울 수 없다.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하늘에 빌어본다. '하늘이시여, 왜 하필 오늘 이러십니까? 오늘은 결코 늦어서는 안 되는 날임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발 무슨 방도를 찾아 주소서.'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빌고 또 빌며 내 간절함이 하늘에 닿길 바랄 뿐이었다. 애절한 심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나 무심한 하늘엔 구름만 유유히 흐를 뿐 내 기도가 전달될 기미가 안 보인다.
'정말 이건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단지 저와 글공부를 함께 했다는 그 인연 하나로 이 황금 같은 연휴에 나들이를 마다하고 오는 분들과의 만남인데 어찌 이런 곤경에 처하게 하시는지요. 저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분들의 얼굴을 대체 무슨 낯으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 난감한 국면에서 헤어나도록 한 번만 도와주신다면 뭐든 다 할 것이니 부디 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소서.’
끊임없는 나의 보챔이 성가셨거나 내 기도에 답하실 차례가 되어서인지 차량 대열이 서서히 움직이며 마침내 다리 위에 올라섰다. 반대편 강변도로에 내려서자마자 냅다 밟기 시작했다. 양평까지 심한 교통체증도 없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하는 생각으로 내쳐 달리기를 얼마 후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집에서 출발한 지 다섯 시간여…. 본 행사 기준으로도 두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으니 기다린 분들의 얼굴을 대체 무슨 낯으로 뵐까. 안으로 들어서며 기다리고 계신 분들의 눈을 차마 마주치지 못하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며 허리를 한껏 숙였다. 기다려주신 문우들과 문학회 선배님 모두가 "오시느라 고생하셨다, 얼마나 속이 타셨냐, 차 속에서 마음이 조급해서 어떡하셨냐" 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신다. 냉랭한 눈빛과 냉소를 염려했던 것은 기우였다. 본의 아닌 나의 무례를 따스한 미소와 넉넉한 마음으로 품어주셨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지정 좌석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힌 후 먼저 오신 여덟 분들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다. 절반이 넘게 초면인 분들이다. 세 시간이 넘는 기다림에 짜증 난 얼굴이나 지친 기색 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 예정대로라면 행사를 마치고 귀가할 시간에 주인공이 나타났기에 앞으로도 한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나와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내가 무슨 유명인사도 아니지 않은가. 꼭 와야 하는 것도 아니었건만 앞으로 한두 시간을 더 있어야 하니 짜증과 책망하고 싶은 마음이 왜 아니 없을까? 그런데도 표정은 더없이 온화하고 눈빛과 표정에도 그런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잠깐 눈이라도 마주치면 차 속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한 그 상황 속에서 얼마나 조바심을 내었냐며 위로의 눈빛과 잔잔한 미소를 보일 뿐 책망하는 기색은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다. 그런 눈빛과 표정을 확인한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이런 천사 같은 분들이 있나?'
그랬다. 비록 어깨 뒤 날개는 없지만 그 눈빛과 표정은 천사의 그것이었다. 이 여덟 천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하늘도 내 간절한 기도에 느긋하셨던 모양이다.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니 그리 조바심 내거나 안달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그랬다. 그 엄청난 곤경에 빠져있는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은 이유가 이 여덟 천사가 기다리고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원망스러웠던 마음은 봄눈 녹듯 사라졌다. 평생의 허물이 되고도 남을 일에 이 여덟 천사를 만나게 하신 그 뜻을 마음 깊이 새기리라.
그날 자리를 마련해 주신 선생님과 기다려주신 여덟 분의 문단 선배, 문우님은 분명 수필을 사랑하는 천사였다. 훗날 내가 주인공인 두 번째 축하연을 갖는다면 이 여덟 천사를 꼭 다시 모셔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때 양평에서 보여주신 그 훈훈한 마음과 따스한 미소 덕분으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고.. 그날 보여주신 그 마음과 미소 같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