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반장

by 애기타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기도 한다. 문예 대학 수필반의 반장이 된 경우가 그렇다. 초등학교 입학 후 대학 졸업 때까지 줄반장 한 번 해본 경력이 전부인 내가 이미 등단한 작가, 시인 및 학창시절 교내 백일장을 휩쓴 쟁쟁한 수강생이 많은 수필반의 반장이 되다니 그야말로 운수 대통한 게 아닌가 싶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수필’이라는 한 문장을 수필의 요체로 오인한 채 그동안 내 마음과 붓이 가는 대로 쓴 수필 아닌 잡필로 이곳저곳 공모전에 응모했던 일을 생각하면 낯이 뜨겁다. 수필의 기본적인 구성과 글쓰기 기본도 모른 채 느낌대로만 글을 썼고, 반듯한 글을 위한 글쓰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이 책 한 권 써보겠다며 덤벼든 지 10년이 되도록 마무리하지 못한 내가 아닌가. 이런 내가 17년이나 되는 이 전통 있는 수필반의 반장이 된 것은 대내외적 위상과 명성에 걸맞지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예정된 13주 동안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배우고 가리라는 생각했을 뿐이었다. 개강 첫날 선생님이 ‘앞으로 강의 진행과 원만한 운영을 위해 반장을 선임하고자 한다’며 몇몇 이름과 함께 내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수필 강좌 첫 번째 신청자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그냥 거론하신 것이거니 했다. 그러나 아직 현직에 있어 컴퓨터 활용이 익숙할 것임에 반장을 맡아 주시라는 말씀에 똑 부러지게 ‘못합니다’라고 대답할 입장도 아니었고 또 그럴만한 배짱도 없었다. 더구나 선생님은 내가 근무하는 단지의 이천여 입주민 중 내 기준으로 최고의 VIP 주민이기에 ‘No’라고 얘기할 수 없었다.


지난해 오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입주민과 이웃 단지에도 문호를 개방하여 개최한 ‘사랑과 감사의 편지쓰기 대회’를 선생님의 조언과 심사위원장으로 수고해 주신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런 행사 실적 등으로 관리 부문 우수단지로 선정되어 구청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었으니 선생님은 VIP 정도가 아닌 VVIP 주민이었다.


이름이 거명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참석한 분들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로라하는 분들이 참여한 수필 반의 반장으로 나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했듯이 이 나이에 수강생으로 받아주신 것 만해도 감사한 일이기에 반장 선임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늙다리인 나보다야 삼사십 대 아니면 오십 대 청장년(靑壯年)층이 반장을 맡는 것이 자연스럽고 수필 반에 활력이 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기에 추천할 분을 찾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자리가 중간쯤이라 뒤쪽에 계신 분들은 사람보는 눈썰미가 없는 탓에 내 나이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고 남자 수강생도 몇 분 되지 않았다.


앞쪽 자리의 여성분들 중 분명 용모단정하고 재기발랄한 적임자가 있어 보였으나 강의에 몰입하여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앞만 응시하고 있기에 뒤태만으로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앞에 가서 얼굴을 빤히 쳐다볼 수도 없기에 강의가 끝나기 전 기회를 봐서 적임자를 물색하여 선생님께 천거하리라 생각한 게 실책이었다. 그냥 사무실 사정도 있고 늙다리인 저보다 젊은 분을 반장으로 선임하여 향후 삼 개월 동안 수필 반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강력하게 어필하지 못한 채 첫날 수업이 끝나버렸다. 결국 ‘어쩌다 공무원’이 아닌 ‘어쩌다 반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책 한 권 써보겠다는 생각을 한 게 10여 년 전이었다. 또 나름의 동기도 있었다.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재취업 수기공모전에 잘하면 용돈벌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입선을 목표로 응모했다가 생각지도 않은 대상을 수상하였다. 대상도 받았으니 책을 한번 써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에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퇴직 전후 5년에 관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시작은 했으나 절실함이 부족했던 탓에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냈다. 이러다간 뜻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에 글의 구성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가입한 카페에 글을 올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역 문예 공모전에 응모해 보기도 하였으나 어림도 없었다. 그러던 중 편지쓰기 행사를 전후하여 선생님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글공부를 하던 중 선생님 권유에 따라 등록한 것이었다.


사실 반장이라 하여 막중한 임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리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목표를 위해 보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모세의 십 부장 격에 불과하다. 글공부하러 오신 도반들을 위해 간단한 음료를 준비하는 일, 두세 컷 수업 사진을 찍어 사무국으로 전송하는 일이 주된 일이며 선생님과 수강생 간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단톡방을 개설한 게 지금까지 반장으로 한 일의 전부다. 출석과 과제수행은 수강생과 똑같고 어떤 더하고 덜함의 특혜도 없다. 반장 전용 주차구역도 없고 국가대표축구팀 주장 손흥민 선수나 소설 ‘완장’의 주인공이 팔뚝에 두른 완장 같은 것도 없으며 강의실 문만 나서면 내가 반장인지 아는 사람은 사무국 직원 말곤 없다. 내 사주에 ‘늘그막에 귀한 분들과 글공부를 하는 기회가 있으며, 그때 큰 감투를 쓰게 된다’라는 팔자가 정해져 있어 반장이 된 것이라고 내 마음 가는 대로 생각해 본다.

‘귀한 인연으로 선생님과 문우들을 만나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어찌 귀한 기회가 아니겠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훌륭한 선생님과 문단의 좋은 선배, 그리고 내 삶의 남은 시간을 수필문학의 길로 함께 걸어갈 문우들과 정을 나누고 글을 교류하며 보낼 수 있다면 반장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소임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하리라. 어느새 수업의 반 이상이 지난 지금 ‘어쩌다 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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