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OO 본인 상 알림
「전 OO 씨께서 오늘 새벽 0시 00분 별세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생전에 고인의 뜻을 받들어 가족들께서 조위금은 사양하십니다.」
얼마 전 받은 부고 내용이다. 2년여 투병 끝에 팔순의 나이로 운명하신 고인은 전 직장에서 두 차례 상사로 모신 분이다. 크지 않은 체구에 자상한 성품으로 부하 직원에게 늘 따뜻하게 대해 주셨으나 원칙주의자로 회사 규정에 위반되는 일에는 양보함이 없는 강직한 성품이었다. 오랜 기간 재직했던 직장에서 이십 년을 함께했기에 코로나 시국임에도 문상을 다녀오기로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오랜 기간 직장에서 가까이 지냈고 퇴직 후에도 만남을 유지하고 있는 동갑내기 여덟 명의 모임이 있다. 재직 시에는 거의 매일 만났고, 때로는 가족 동반으로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지냈기에 형제처럼 지낸 동료들이다. 모임 명칭을 따로 두지 않았으나 퇴직 후에는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소중한 인연을 오래 이어가자는 의미로 '처처회’(소주 ‘처음처럼’의 줄임)로 정하고 격월로 모임을 했으나 코로나 이후로는 뜸한 상태였다.
두 달여 전이다. 회장이 '어디 곰칫국 잘하는 식당 아는 데가 없느냐'라며 전화했었다. 회장은 고인과 한동네에 살며 서로 왕래하며 부부 동반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여행도 함께 다녀올 만큼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투병 중인 고인이 곰칫국을 먹고 싶어 하는데 달리 아는 데가 없다고 했다.
“갑자기 곰칫국을 찾으신다고?” 동향 선배이기도 한 고인과 나는 소위 갯가 출신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시장에 갈 때면 늘 따라다녔다. 좌판에 널려있는 다양한 생선을 구경하며 또 즐겨 먹고 자랐기에 뜨겁고 시원한 곰칫국 맛을 잘 안다. 식구들의 입맛을 잘 아는 어머니의 정성이 더해진 곰칫국이야말로 어린 내게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어쩌면 고인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머니 손맛이 담겨있던 곰칫국이 생각난 건 아닐까.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곰칫국을 먹고 싶다는 욕구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곰칫국이라면 수년 전 강원도 여행을 갔을 때 속초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각나 ‘곰칫국이라면 속초 소방서 뒤쪽에 있는 식당 아니냐, 거기까지 모시고 갈 만한 사정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고인이 장거리를 이동할 만한 상태가 아니기에 우리 집 근처에 있을까 해서 전화한 것이라 했다. 수산물도매시장이 가까이 있으니 한 번 알아보고 연락하마 했다.
그 주말, 수산시장을 한 바퀴 돌아 곰칫국 하는 식당 두 곳을 찾았다. 전화번호가 기재된 식당 간판 사진을 보내며, 혹 주말에 오게 되면 내가 대접할 테니 꼭 연락하라고 했다. 그 후 아무런 연락이 없다가 부고를 받은 것이다. 결국, 곰칫국 한 그릇 대접도 못하고 고인을 여윈 것이다. 곰칫국 아니라도 와병 중일 때 한 번 찾아뵙지 못했음을 자책하였다.
영정사진 속에서 고인은 미소 띤 모습으로 문상객을 맞이하고 계셨다. 예전의 자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문상하러 온 지인, 동료, 후배들에게 '자네 왔는가, 와줘서 고맙네. 미안하지만 나 먼저 가네. 자넨 잘 지내다 천천히 오시게' 하는 듯했다. 잠시 고인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말없이 영정사진 속의 고인을 바라본 후, 영면을 기원하며 두 번의 절로 작별 인사를 드렸다. 좋은 상사였고 인생 선배인 한 분이 또 떠나가신다. 문상 온 고인과 동년배 직장 선배들의 마음은 더욱 헛헛할 것이다. 이제 내 차례도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고인의 뜻에 따라 부의금 접수처가 따로 없었다. 상주와 맞절 후 고인과의 인연을 잠시 언급하며 와병 중일 때 한 번 찾아뵙지 못했고, 또 좋아하신 곰칫국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며 미안함을 전했다. 준비해 간 봉투를 달리 생각 마시고 대접하지 못한 곰칫국 한 그릇 값으로 받아주시라 하며 상주의 주머니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 잘 모셔달라는 말로 상주와 작별하고 문상 온 동료, 선배들과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내게 허용된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동료는 자녀를 출가시킨 후 부부만의 노후 생활을 하거나 손주를 돌봐주는 일로 소일은 한다. 그들은 부모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한 셈이나, 내 경우는 아직이다. 그런 동년배들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드나 그들은 아직 일하고 있는 내가 부럽다 한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나와, 나오면 심심하고 일 년 365일 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라는 그들의 말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기 전 가장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결혼을 미루고 있는 아들도 가정을 이루게 해야 한다. 이웃의 장인, 장모님도 두 분 다 구순을 넘기셨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이 지천이다. 그 일을 추스르지 못한 채 그날을 맞이한다면..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운전석 창을 내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문다. 열린 창으로 밀려 들어오는 한겨울의 찬바람이 매섭다. 불현듯 고인이 드시고 싶다던 뜨거운 곰칫국이 생각난다. 그러자. 이번 주말, 고인과 하지 못한 곰칫국 한 그릇을 퇴직 동료들과 함께 하기로 하자. 오랜 직장생활에서 고인과의 크고 작은 인연은 다 있지 않은가. 곰칫국 한 그릇에 고인과의 추억을 소환하며 고인을 위한 송별식으로 갈음하자. 가운데 한 자리는 고인의 자리로 비워두기로 하고…. 비록 함께 하진 못해도 그 마음 알기에 내려다보며 빙긋 미소 지으실 것이다.
차장 너머 잿빛 하늘에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