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한 달 살이

by 애기타

제주도 한 달살이, 해외 유명 휴양지에서 한 달살이도 아니었다. 브런치와 함께한 한 달살이였다.

등단을 계기로 내 책 한 권을 갖고 싶었다. 4개월 과정의 문예 대학 수료 후에도 글쓰기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 공부라 하지만 대학 문예창작과에 등록한 게 아니라 수료생 몇 명이 식당 별실에서 식사를 겸하며 각자 써온 글을 발표하고 선생님, 문우들과 함께하는 합평회가 그것이다.


'수필이란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배운 중학교 때의 기억이 왜 그리 또렷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는지 깜빡 증상 빈도가 잦아지는 요즘과 비교하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글쓰기 공부 전, 글의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냐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지역 신춘문예 공모전에 응모하였으니 결과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심사위원 한 분이 수백 편을 심사하기에 기본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내 글 따윈 가차 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으리라는 믿음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입선은 고사하고 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길 바라는 것조차 언감생심이었다. 제목과 첫 문장만 봐도 글과 글쓴이의 수준을 알아내는 심사위원의 예리한 촉각에 한 문단도 읽히지 못하고 탈락했을 것이다.


제목, 첫 문장, 첫 문단의 중요성과 글의 구성(기승전결), 적정 분량, 나름의 관점이 있어야 함은 글공부를 하고 나서야 알았다. 이런 기본 형식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수필이 아닌 잡필이었음에 부끄러웠다.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아니, 그간 써온 글을 배운 대로 제대로 형식과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다시 쓰고 싶었다. 수필이란 ‘자기의 기억을 자기 나름의 해석으로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철학으로 쓴 글’이어야 하기에 제 혼자 마음 가고 붓 가는 대로 쓴 글과는 결이 달라야 했다.


글쓰기를 시작한 동기는 단순하였다. 카페, 블로그 등에 올리고 저장해 둔 글을 묶어 내 이름의 수필집 한 권을 갖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동안 카페, 블로그에 올린 내 글을 읽고 공감의 댓글을 달아주는 이들이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었다.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연이은 신춘문예 탈락을 계기로 부족함을 느끼고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글쓰기 공부였다. 그로부터 1년 반의 세월이 흐른 지금 등단을 하고, 브런치 북도 발간했으니 명목상 수필가, 작가임은 틀림없다.


내 이름이 책 한 권을 가져보겠다는 꿈은 글 쓰는 사람이나,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겐 공통적인 욕망이다. 나 또한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었다. 카페와 블로그 글쓰기, 수필 공모전 응모, 문예 대학수료, 등단, 브런치 작가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내 이름의 책 한 권을 갖게 되었다.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이면 어떠랴. 오히려 올린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음은 종이책이 갖지 못하는 브런치만의 강점이요 장점이었다.


등단을 전후하여 문예지 몇 군데 글을 실었고, 연재하기로 예정된 작가의 급작스런 사정으로 떠안게 된 기행 에세이 연재도 3개월 분 중 2개월치 송고를 마쳤다. 부담이 컸으나 기회라 생각하고 한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글을 쓰는 작가에겐 발표할 기회와 공간이 필요하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실정이기에 비용도 들었으나 기회비용이라 생각했다. 소속 단체에서 발간하는 월간 문예지의 기고는 회원의 의무이자 특권이기도 하나, 연간 한두 차례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신인 작가에겐 기회와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다. 또 운 좋게 실렸다 해도 소수의 사람과 한정된 공간에서만 보일 뿐 일반 독자와 만나는 기회가 거의 없다. 종이책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세태와 내 글이 독자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준의 글이 아닌 점에서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결국 내 책을 갖는다고 함은 저서가 있는 작가라는 대열에 합류한다는 것과 '우리끼리' 알아주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인정받는 이상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또 저서가 있는 작가라 하더라도 독자와 소통하는 기회를 통한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느끼기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러다 브런치를 만났다. 한 달 전 브런치 작가인 문우로부터 브런치 얘기를 들었다. 종이책 수필집 한 권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경비가 다소 부담스러워 고민하던 중이었다. 내 이름의 수필집을 갖는 점에 큰 의미를 둔다면 감당하지 못할 것도 없으나 내 글에 대한 피드백 또는 반응이 있어 앞으로 글쓰기에 참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점에서 갈등하던 중이었다. 브런치의 작가 발굴 시스템과 출판지원프로젝트 등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가진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귀가 번쩍 뛰었다.

브런치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듣고 지나쳤을 뿐이다.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선 회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 도전해 보라는 문우로부터 개략적인 설명을 들은 후 아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설명해 주는 아들이 브런치 작가임을 그때 알았다. 이들의 권유와 격려에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세 편의 글과 함께 작가 신청을 했던 것이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는 것과 브런치 북을 만드는 법, 출판 프로젝트 지원에 관한 내용을 몇 차례 읽은 다음 브런치 북 발간과 출판 프로젝트에 한 번 응모해 보기로 했다. 브런치가 제공하는 공간에 내 글을 옮긴 다음 생애 최초의 내 책을 갖기 위한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몇 편의 글을 올릴 때마다 독자들의 조회, 라이킷, 댓글이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신기하기도 했고 책임감도 생겼다. 그동안 목말랐던 독자들을 찾았기에 내 글을 읽거나 격려하는 라이킷, 댓글에 짜릿함도 느꼈다. 그런 독자들이 있음에 내가 쓰고 올리는 글 또한 그에 합당하는 모양과 예우를 갖추려 했다.


적게는 100여 명, 많게는 20만이 넘는 반응에 희열마저 느껴졌다. '그래, 이 맛이야.' 그동안 내 글에 대한 반응이 큰 웅덩이에 작은 조약돌 하나를 던진 것이라면 브런치는 달랐다. 조회 수, 라이킷, 댓글이 많으면 더없이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정성을 기울인 만큼의 반응을 확인하는 경우, 그 희열은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소통의 부재가 일반화된 현실에 이보다 더한 쌍방향의 소통이 어디 있으며, 또 무엇이 있을까? 소통하는 한 명의 독자를 만나기 어려운 종이책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통의 천국이니 그야말로 작가들의 천국인 브런치 세상이었다.


나름의 생각으로 고민하며 쓴 글을 공개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트렌디하고 자극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글로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건 작가의 지향점이기에 내 기준만으로 호불호를 논할 것은 아니다. 다양하고 각기 다른 관점에서 현상이나 사물을 관찰하고 글로 옮기는 것을 그 작가만의 기준, 안목이며 재능이리라. 수필을 쓰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또 타인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표현함은 작가의 역량이며 작가의 철학이니, 호불호의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브런치 북도 만들고 출판 프로젝트에 도전해 보기로 한 지 한 달여, 드디어 내 이름의 브런치 북 두 권이 탄생하였다. 선정되지 못한들 어떠하며, 사각거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없는 전자책이면 또 어떠랴. 내가 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음은 브런치이기에 가능하고 또 그에 힘입어 브런치북 작가가 된 것이다. 내친김에 세 번째, 네 번째 브런치 북도 만들어 보자. 작가에겐 한밤의 고요함도 필요하나 한낮 재래시장의 시끌벅적한 활력도 필요한 것이다. 형식이나 격식도 중요하나 그보다 시간이나 방법에 구애됨이 없이 독자와 교감과 공감을 나눌 수 있는 브런치 환경이 더 매력적이다.


브런치와 함께 했던 한 달살이, 큰 보람이요 영광이었고 얻은 게 많은 한 달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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