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과의 싸움에서 그녀는 이길 수 있었을까?
9월의 테마 : 도파민 디톡스
9월의 메인 테마는 도파민 디톡스예요.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카세트 테이프였다면 이미 늘어졌을 정도로 여기저기 등장했을 것 같은데요. 아마 9월처럼 가장 필요성이 절실했고 때문에 끊기 위해 노력했으며 결국 줄이고야 말았던 시기는 없었을 거라 자부합니다. 도파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기 때문에 다음에 다른 글을 또 작성할게요. 중요한 것은 제가 결국 해냈다는 것 아니겠어요? 이틀 전 트위터를 쓸 일이 있어서 어플을 깔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수시로 들락날각거리지 않으며, 타임라인을 새로고침하지도 않고, 솜노트에 할 말만 하고 바로 끌 수 있게 되었거든요. 아침에는 폰을 안 보는 게 당연해졌고 집에서 다른 일을 할 때도 폰을 꺼 두고 있는답니다.
사실 저는 방해되는 것이 있으면 아쉽고 망설여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유독 그게 안 됐어요. 어플을 삭제하려고 꾸욱 눌렀다가도 좌우로 흔들리는 아이콘이 꼭 나를 붙잡는 것 같아서 망설이다 '에이, 이제 좀 덜 쓰면 되지.' 라며 먹히지도 않을 다짐을 하며 그대로 두기도 했죠. 왜 그렇게 아쉬웠고 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는 말하지 못할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중요하지 않기도 해요. 누구나 나름대로 끊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저 역시 예전에는 원인이 각각 달랐거든요.
어쨌든, 어플 삭제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심각성을 깨달은 저는 최후의 조치를 취하는데요. 바로 '폴더폰'을 구매한 것입니다.
폴더폰을 계속 사용하지는 못해요. 저는 카톡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도 거의 안 보고, 커뮤니티 같은 것도 안 하기 때문에 sns나 노래 듣기가 아니라면 폰을 잘 안 쓰거든요. 그럼에도 폴더폰으로 온전히 갈아타지 못하는 이유는 순전히 사진 때문입니다. 사진 찍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업무적으로도 찍을 일이 계속 생기거든요. 그렇다면 왜 폴더폰을 데려온 것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다짐을 확고히하기 위해서. 둘째, 급한 연락을 받기 위해서.
첫번째 이유는 상징적인 게 커요. 말로만 도파민 디톡스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진짜 마음먹고 줄이겠다는 거죠. 폴더폰은 하나의 상징이자 수단이 되는 거고요. 저는 이런 방법이 꽤 효과가 있더라고요. 두 번째는 급한 연락인데요. 제 본가가 부산인데 부모님이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이셔서(...) 만약 전화를 했을 때 제 폰이 계속 꺼져 있다면 일이 커질 가능성이 99%쯤 된답니다. 이 외에도 업무 연락을 주고받는 메신저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 어플 역시 폴더폰에 깔아 두었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공적이었어요. 급한 연락은 받을 수 있어졌잖아요? 이는 곧 변명의 마지노선이 사라졌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스마트폰을 끌까, 싶다가도 나를 붙잡았던 생각들. 이를테면 이것 좀 더 보자-> 그동안 재미있는 일 생기면 어떡해?->(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았으면서) 친구랑 연락해야 하는데... ->아니, 근데 가족이나 회사에서 급한 연락 올 수도 있는 거 아냐? 역시 안 끄는 게 낫겠어, 로 이루어진, 점점 구차해지는 변명들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비교적 단호하게 스마트폰을 끌 수 있게 되었고 폴더폰 하나 덩그라니 남은 저는 며칠이 지나도 급한 전화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스마트폰에 얽매여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폴더폰이 없어도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조절할 수 있거든요. 만약 사용량이 늘어난 것 같으면, 서랍에 넣어 두었던 폴더폰을 다시 꺼내서 유심을 갈아끼우고는 합니다. 도파민을 줄인 장점이요? 꼽자면 수도없이 많겠지만 가장 큰 수확은 역시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새로운 장소에 갔더라도 기다리는동안 심심하면 괜히 폰을 스크롤하고 중간중간 연락을 확인하고 기다리는 알림이 있으면 은근히 신경이 그쪽에 가 있고. 이런 현상들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집중력을 많이 떨어뜨리고 있었더라고요. 특히 평일에는 일어나서 폰을 확인하지 않은 채로 출근해 일할 때, 주말에는 빈손으로 밖에 나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산책을 할 때 그렇게 머리가 맑고 홀가분할 수 없어요. 이런 경험은 여러분들도 꼭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제 이야기를 듣고 폴더폰 구매를 고려하시는 분들이 꽤 되셨는데요. 폴더폰이지만 이 역시 스마트폰이기 때문에 인터넷과 어플 사용이 돼요. 다만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는 거죠. 만약 내가 다음 카페 사용을 줄이고 싶어서 폴더폰을 구매했다면 카페 어플을 깔거나 인터넷에서 들어가는 행위는 절대, 절대, 절대 하지 마세요. '이번에 딱 한 번만 확인해야지.' 라고 들어가는 행위요. 유혹에 넘어가는 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두 번, 세 번은 더 쉬워집니다. 하지만 이는 참는 것에도 적용돼요. 확인하고 싶은 것을 한 번 참을 땐 어렵지만 두 번, 세 번부터는 쉬워지죠. 이건 뇌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하는데요, 마침 9월의 영상으로 소개해 드리고 싶었던 내용이라 바로 이을게요.
9월의 영상 : aMcc란?
저는 충동이 강하고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예전부터 그랬죠. 여태까지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라며 살아왔지만 나이가 들며 뭔가를 깨닫게 되죠. 인생에서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은 뭔가를 참고 꾸준하게 노력했을 때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요. 어찌 보면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 같죠? 하지만 저는 짧은 기간도 아니고 무려 몇 년동안 일확천금을 꿈꾸며 각종 부업에 이리저리 기웃대고 조금만 시도를 해 보다가 '뭐야, 한 달만에 얼마 벌 수 있는 부업이라더니 아니네.' 하고 그만두고는 했었어요. 흥미가 생겨 시작한 분야여도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겪는 구간, 그러니까 "존버"해야만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는 구간에 다다르면 각종 핑계를 대며 포기했죠. 그러다 이제야 깨달은 겁니다. 무엇이든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버티는 힘과 참을성 등에 관심이 생겼어요.
아, 그런데 자료를 조금 찾아보니 이 '참을성' 이라는 것에 생각보다 많은 게 연관되어 있더라고요. 일단 저같은 사람(새로운 것, 자극을 좋아하는 사람)은 뇌에서 발달된 부분도 달랐고요, 어린 시절 양육 환경과 교육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요컨대 자극 추구형 뇌를 갖고 태어났어도, 어렸을 때 '숙제를 다 하면 용돈을 받는다.' 같은 일종의 '달성-보상' 환경에 계속 노출된다면 점점 참을성이 길러지는 거죠. 물론 부모님 탓을 할 건 아닙니다. 고등학생 때 놀고 싶은 것 참고 열심히 공부해서 어떤 보상을 맛보았다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인내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고 보상을 얻고. 이런 기회는 인생에서 수도없이 많았을 테죠. 문제는, 저는 아무것도 참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는 겁니다.
각설하고, 저는 지금이라도 이 시스템을 발달시켜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래서 참기 시작했어요. 스마트폰을 줄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고요. 평일에 매일같이 마셨던 술을 참고 야식을 참고 하기 싫은 걸 참고 하고... 네, 역시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무작정 참기만 했던 제게 한줄기 단비같은 소식이 들렸으니 바로 이 '인내'라는 것이 반복하면 할수록 쉬워진다는 것 아니겠어요? 심지어 과학적 근거까지 있다고 합니다.
제가 즐겨 보는 <장동선의 뇌과학> 이라는 채널인데요. 이 영상에서는 aMcc(전측대상회피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요. aMcc가 발달한 사람들은 정신력과 의지력이 강하다는 겁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aMcc는 '어떤 것에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가?' 를 결정하는, 뇌의 예산 부서 같은 것인데요. 이게 발달해야 내가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것, 즉 새로운 학습이나 목표 집중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해요. 말만 들어도 중요해 보이죠?
주목할만한 것은 aMcc 발달 과정에서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건데요. 하기 싫은 것을 참고 견디고 해냈을 때 aMcc가 발달하는데, 그러면 중요한 곳에 집중하고, 인내할 수 있게 되어요. 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다 됐고, 한 번 참고 해내면 그다음은 더 쉬워진다는 게 핵심입니다.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요. 만약 내가 뭔가 작은 일을 해냈거나 하면 안 되는 일을 참았을 때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 역시 많이 들어본 말이죠? 어떤 자기계발서에서 그러더라고요. 보상으로 제게 초콜릿을 주래요. 저는 단 한 번도, 이런 보상을 시도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면 초콜릿은 내가 먹고 싶을 때 까서 먹으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속는 셈 치고 시키는 대로 해 봤거든요. 평소였으면 그냥 먹었을 초콜릿을, 일을 끝내고 '일 다 했으니 나한테 주는 보상(^^)' 하면서 먹은 거죠. 그러니까 진짜 보상 같더라고요. 신기하지 않나요? 이때 깨달았어요.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내 뇌를 속이는 방법이 효과가 있구나. 그리고 진짜 필요하구나. 어쩌면 뻔한 말처럼 보이더라도,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고 한번 따라해 보는 건 어떨까요.
9월의 영화
9월에는 갑작스럽게 영화를 많이 봤어요. 그동안 영화는 제게 킬링타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거든요. 어떤 영화가 특별히 보고 싶었던 적도 딱히 없었죠. 그렇게 영화를 본다고 해도 집중을 잘 못 해서 중간에 끄기 일수였고요. 그러던 제가 갑자기, 왜,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발굴하고 싶다는 욕망이 앞섰을 수도 있고 관심도와 별개로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면 느리지만 꾸준하게, 하나씩 야금야금 해치워왔던 경험이 쌓여 무언가를 건드렸을 수도 있겠죠.
어쨌든 어느날 갑자기, 저는 <작은 아씨들>이라는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보게 됩니다. 아, 그런데 예쁘더라고요. 이때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아요. 내 취향은 예쁜 영화구나. 기억을 되짚어 보면 마음에 들었던 영화는 죄다 미학적 측면이 뛰어났어요.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토탈 이클립스, 이브 생 로랑, 위대한 개츠비. 작은 아씨들 역시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보고 있자면 예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그런 영화였고 시대적 배경 역시 (이 또한 미학적 이유로) 제가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부산으로 가며 ktx에서 심심하지 않게 <인턴>을 다시 봤어요. 재미있던데요? 대학생 때 친한 친구랑 같이 영화관에 가서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손 세정제를 계속 쓰는 주인공이 왠지 멋져 보여서 저도 손 세정제를 잔뜩 구매해 갖고 다니던 흑역사도 스쳐 지나가고요. 부산 집에 가서는 <본투비블루>를 봤어요. 재즈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었거든요. 재즈 모임에 갔을 때 쳇 베이커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인간인지 들었던 탓일까, 보는 내내 찝찝함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런 거슬림을 안고서라도 끝까지 볼 정도로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집에 오니까 재즈 영화가 또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레이니데이 인 뉴욕>을 봤죠. 예쁜 영화 하면 <위대한 개츠비>가 빠질 수 없으니 이걸 또 봤죠? 이번 달에 봤던 영화랑은 결이 확실히 다른 <블랙 머니>도요. 최근에 봤던 영화 중 가장 재미있고 취향이었던 건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집의 아이들>인데요. 10월 초 시청작이라 아쉽게도 9월 지면에서는 빠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언급할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답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예쁘다' 뿐인 걸 보면 제게 있어 영화라는 카테고리는 아직 그 정도인가 봐요. 이대로 머물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혹은 파이를 키워갈 수도 있겠죠?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9월의 노래 : 각주
최근에 노래를 많이 듣고 있어요. 여태까지 제게 있어 음악은, 이동하는 길에서 심심하지 않게 귀를 채워 주는 수단 정도였거든요. 혹은 집에 있을 때 분위기를 위해 틀어 두거나. 그랬던 제가 왜 9월부터 갑자기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집중해서 듣고, 좋으면 한 곡 반복까지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그런 변화를 가져다 준 곡 딱 하나를 꼽으라면 데카당의 각주입니다.
지금은 해체한 밴드의 곡이고 우연하게 듣게 되었는데 너무 이상하고 독특하고 신기했어요. 주로 옛날 케이팝만 들었던 저는 음악의 정형화된 패턴에 익숙했거든요. 도입부 멜로디를 들으면 곡의 진행이 대충 예상이 가는 것 있잖아요, 하이라이트도 그렇고. 그런데 각주는 그 평범함을 완전히 깨더라고요. 처음에는 대체 뭐지? 싶었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계속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며 한 곡을 반복하고 있고 나중에는 앨범 수록곡을 다 듣기도 했으며 정신을 차린 지금은, 짧은 기간 안에 한 곡을 너무 들어 살짝 질리는 지경에 이르렀답니다. 앨범 커버부터 멜로디와 가사, 귀를 찌르는 일렉 기타 소리까지 각각 개성이 특이하면서도 조화롭게 어울리는 곡이에요. 듣다 보면 "보충의 보충의 보충의..." 가 반복되는 구간이 나오는데요, 제 최애 파트랍니다. 호기심이 생겼다면 꼭 들어 보시길.
9월의 장소 : 북한산
저는 9월의 장소로 당연히 첫 재즈바인 <천년동안도>를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8월 말에 방문했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으로 좋았던, 하지만 재즈바에 뒤쳐지지 않았던 북한산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정확히는 북한산의 스타벅스에 갔었는데요. 그 전에 식사를 하러 들렀던 평양냉면 가게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북한산으로 퉁치려고요.
모든 장소에는 기억이 얽히잖아요? 단지 그 장소에서 했던 경험뿐만 아니라 전후 사정이 포함되기도 하고요. 북한산 스타벅스는 '전' 사정이 포함되며 기억에 보다 선명하게 각인된 것 같아요. 주말 오전에 언니와 함께 갔었는데, 가기 전에 정말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한 번 가 보고 싶기는 한데 나가기는 귀찮아서요.
여러분은 '할까 말까 할 땐 해라, 갈까 말까 할 땐 가라' 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부터 말씀드리자면, 해 봐야 안다고 생각해요. 너무 당연한 말이죠? 하지만 당연하다는 건 진리 혹은 진실이라는 거고 진실이 되려면 동일한 사실이 반복 축적되어야 하니까 그만큼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요? 대체 이게 무슨 댕소리인지. 여튼 저런 말을 신념으로 삼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저도 따라해 봤다가 아 오기를 잘했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적도 있고 아 역시 오지 말았어야 했어 라며 후회를 거듭했던 적도 있기 때문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저 갈림길에서는 항상 고민에 빠지며 선택을 망설이게 됩니다. 결론은 그날 역시 몇 번을 고민하다가 집밖으로 나섰다는 거고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아 오기를 잘했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는 거예요.
넓게 펼쳐진 마운틴 뷰도 좋았지만 주말 아침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듣는 시간이 참 힐링이었거든요. 기분 전환도 제대로 됐고요. 오랜만에 잡생각을 털어버릴 수도 있었던 시간이었답니다. 이때의 기억을 안고 다시 방문한다면 분명 같은 느낌이 아니겠죠. 장소는 같더라도 어떤 특정한 상황과 시간이 주는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공간뿐만이 아니라 책이나 영화도 그렇잖아요. 길게 늘어진 연속선 중 딱 어떤 점 하나, 그 점과 외부의 개체가 맞물렸을 때만 일어나는 감정 겪게되는 경험. 어쩌면 이런 게 좋아서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고 계속해서 책을 읽는 게 아닐까요?
9월의 소비 : 소파
마지막으로 9월의 소비는 소파가 차지했습니다. 작은 8평 원룸 공간을 꽤 많이 내어줬으니, 딱 그만큼의 지면도 역시 할당해 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실은 소파 하나 구매한 것으로 제 하루가 이렇게 바뀔 줄 모르기도 했고요. 요즈음 침대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느꼈는데요 저는 주로 집에 있는데 원룸에서 침대가 아니면 갈 곳이 마땅히 없더라고요. 영상물을 자주 보지도 않았고 집에 손님이 오는 경우도 잘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소파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자취 인생 5년만에 소파를 들였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거 있죠?
일단 침대에는 잘 때만 눕게 되었어요. 침대를 완전히 수면 공간으로 분리하게 된 거죠. 이것도 수면의 질을 평가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고 들었거든요. 그렇다면 소파에서 대체 뭘 하냐. 테이블을 두고 밥도 먹고,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영화도 보고... 온갖 걸 다 할 수 있던데요? 특히 무언가를 읽고 쓰는 행위요. 예전에는 스탠드를 켜고 책상에 앉아야만 했거든요. 침대에 누워서 맞은편 책상을 바라보며 '아, 해야 하는데...' 라고 생각만 하고 몸을 일으키기조차 귀찮아서 누운 상태 그대로 스마트폰 스크롤이나 내리며 시간을 때웠었죠. 그런데 지금은 소파 테이블에 책과 노트, 펜을 갖다 두니 자연스럽게 집어들게 되었어요. 왜냐면 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소파에 가서 눕거든요. 폰은 꺼 둔 상태니까 볼 일이 없죠. 누워서 가만히 멍을 때리다 보면 심심해져요.
그럼 눈 앞에 있는 것들에 시선이 갑니다. 네, 책과 필기구요. 그렇게 무언가를 읽고 쓰게 되는 거죠. 식사를 하는 건 사실 테이블이 더 편하기는 한데요. 제가 테이블에는 모니터 암을 달아 두어서, 아주 커다란 모니터를 앞에 두고 밥을 먹었었거든요. 뭔가 꽉 막힌 느낌도 나고 책상에서 대충 먹는 느낌이라 은근히 별로였는데 그런 게 사라져서 좋아요. 단 하나만 주의하면 되죠. 음식을 흘리지 않기. 사실 이미 많이 흘렸답니다, 하하하하....
길게 쓸 각오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더 길어져 업로드가 늦게 됐어요. 집중력이 필요한 글을 쓸 때는 머리가 맑은 아침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규칙(그런데 이제 강박에 가까운)에 따른다고 더욱 늦어지기도 했죠. 그래도 수많은 경험을 분야별로 나누고 우선순위를 꼽아 기억을 하나씩 되짚으며 글을 쓰니 뿌듯하기도 하고 좋아요. 머릿속에 뒤엉켜 떠다니던 것을 이렇게 언어로 정제해 담아냈으니, 선정된 것들은 제 안에서 더욱 선명해졌겠죠. 좀더 의미를 갖게 되었고요. 김영하 작가는 이런 말을 했어요.
기록한다는 것은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훗날 이 글을 다시 보았을 때 무의미에 맞서는 무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9월을 마칠게요, 뒤늦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