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도마 위에서 누가 난도질을 당하는 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다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모두들 깜짝 놀라 하던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아는 시에는 상사에게 아부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그 어떤 일에도 이렇다 저렇다 뒷말이 없는 여리고 착한 여자였다. 누구 흉도 볼 줄 모르고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도 않았다. 누가 뭐라 하든 정직한 시간을 보낸 사람은 그 어떤 오해와 왜곡에도 두렵지 않은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여자가 시에였다. 정직한 시간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일에 대한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여길 때는 타협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그의 선택이 틀린 적이 없었다. 시에가 맡은 프로젝트는 늘 KS 마크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시에는 그런 여자였다.
시에가 맡은 일은 사보 편집이었다. 사진 찍기와 읽고 쓰는 일을 즐겨하며 조용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여자,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블로그나 인스타도 적극적이었다. 교회에서는 1년에 두 번 발행하는 매거진의 편집장도 맡고 있었다. 어떤 일을 맡겨놓아도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여자에게 몰아붙이듯 의심하는 뒷담은 너무나 가혹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우려하는 건 흉한 뒷담이 난무하다는 사실을 정작 알아야 할 본인만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쩜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십여 년 지켜본 평소 그의 무던한 성품 상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라던 나만 정직하면 그뿐이라고 툭툭 털어버리는 성품의 사람이 시에였다.
시에와 나는 입사 동기이다. 그녀의 MBTI는 INFP이고 나의 MBTI는 ISFJ이다. 우리는 취향이 달랐다. 나는 한 번 갔던 곳은 다시 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똑같은 장소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려 하는 것보다 낯선 곳을 향한 탐구와 직진을 선호했지만, 시에는 똑같은 장소에서 매번 새로움을 발견하기를 좋아했으며, 충분히 빈둥거릴 때 조금씩 스며드는 일상의 순환을 선호했다. 그라면 절대 풀지 않을 화학적 물리학적 원리를, 나라면 절대 읽지 않을 문학적 예술적 미학에 대하여 우린 서로에게 얘기해 주기를 좋아했다.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고,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누리는 시간의 궤적을 축적하는 그 과정이었다. 입사 초기 우연히 마주쳤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나눴던 게 계기가 되어 좋은 동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메마른 감성을 자극했고, 나는 그런 시간이 너무 좋았다. 시에와 나는 이성적이 아닌 감성적으로 공감하는 F가 같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손뼉을 치기도 했다.
시에의 최대 장점은 사람에 대한 무심함이었고, 최대 단점도 사람에 대한 무심함이었다. 그건 중요한 일에는 유심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의외로 완고했다. 그런 모습이 나는 맘에 들었다. 일을 할 때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러했다. 그건 매사 정확하고,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품이란 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시에를 믿었고, 그들이 시에에게 흉허물을 덮어 씌우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해도 그녀의 형형한 눈빛을 나는 끝까지 신뢰했다. 평상시 그녀의 행실과 삶의 패턴에서 흥뚱항뚱하는 법을 보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소리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들 뒷담 요지는 이랬다. 상사가 부하 여직원 SNS에 유난히 친한 척 댓글을 달았다는 것이었고, 시에는 그 상사와의 미팅에서 유난히 잘 웃는다는 게 문제의 시초였다. 여자들에겐 잘 웃지 않으면서 남자들 앞에서만 웃는다는 억지였다. 부하 여직원의 SNS 댓글도 그렇지만 대댓글의 문장 행간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도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평소 말이 없고 잘 웃는 시에는 내숭쟁이가 돼 있었고, 상사에게 꼬리 치는 이상한 여자가 돼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시에는 편집실에서 실력보다 과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다른 동기들에 비해 유난한 편애를 받고 있다는 요지였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그리 보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영혼의 파괴는 진실을 왜곡하는 성마른 위선에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요?”
<끝>
* 백수린 <시간의 궤적> 소설 속 문장 차용함
. 가끔 터무니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있지요. 상대에 대한 이해도 상식도 없으면서 그저 겉모습만 보고 상대의 내면까지 다 아는냥 함부로 단정짓고 의심하고 그게 기정사실인양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지요. 그럴 때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외쳐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 글은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면서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라고 외쳐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사회에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니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담고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