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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Aug 30. 2022

파리는 왜 매미가 없을까

7/30-8/8



1

 새벽 산비둘기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8월에 매미소리가 아닌 비둘기 울음소리라니!

 아침이 되면 사각 격자무늬 창에 햇살이 든다. 밤새도록 방충망도 없는 창문을 열어두고 잠을 잔 아침, 벽에 걸린 유화 그림 위로 빛은 또 다른 그림을 그려 넣는다. 햇살이 만들어가는 영상을 누워서 감상한다. 오래 뒹구는 시간이 좋은 이유는 반짝이는 강한 햇살과 그 틈으로 밀려드는 지중해성 기후가 만들어내는 바람 때문이다. 바깥은 36도를 치솟는다 하지만 그늘은 시원하다는 말을 몸으로 실감한다. 쾌청 쾌적한 날씨가 가장 맘에 든다. 파리의 여름은 9월 햇살이고 바람이라고. 한국의 9월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숙소 창문 그림
에어비엔비, 4층. 주인이 화가라고 했다. 유화 그림이 몇 점 걸려 있었다. 갈색 커튼 값비싼 린넨이었다. 그것조차 맘에 들었다.

 

어느 시인 부부가 쓴, 폭염을 피해 떠났다는 헬싱키에서의 여행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종일 집안에서 뒹굴거나 책을 보다가 마을길을 걷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고. 낯선 길을 걷다 들어오는 길 마트에서 장을 봐오기도, 더러 마을 카페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는 글을 읽고선 나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어떻게 거금의 돈을 투자한 외국에 가서 태평스럽게 뒹굴 수 있는 건지, 나는 과연 그리할 수 있을까.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고 그런 시간을 나도 보내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솟구쳤다. 내게 그런 시간이 오기나 할까 좌절하기도 하면서. 나도 그러한 시간을 보냈다. 막상 닥치니 그렇게 됐다.


 2

 숙소 문 앞에 1인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캐리어를 싣고 탄다면 1인만 탈 수 있지만 사람만 탄다면 우리 네 식구 꼭 끼어서 탈 수 있는 공간이다. 1층 엘베 문이 열리면 천장이 높은 공간이 있고, 큰 철문을 밀고 나가면 또 작은 대문이 있다. 이것 또한 철문이다. 유럽식 검은색 철문.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철문이 아닌 까맣고 단단하고 묵중 하다. 철문을 열고 나가 왼쪽으로 돌아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전철역과 버스정류장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빵집과 큰 마트가 바로 인접해 있다. 마르스 광장을 향한 길은 오른쪽으로 가나 왼쪽으로 가나 다 길이 연결되지만 느낌이 다르다. 흐름도 다르다. 다른 길을 가지만 목적지가 같은 그런 날들을 돌아보게도 된다. 그곳의 골목길은 모두 처음 걷는 길이었기에. 구글 지도를 보면서 더듬더듬 걷는. 그렇구나! 낯선 이 길에서 가파르고 힘겨웠던 인생길을 되돌아볼 수도 있구나.


파리의 골목길은 중후하다. 묵중 하고도 감각적이다. 오래된 것들, 낡은 것들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있다. 스며드는 또는 스며나는 자연미는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공들여지었으면 이런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손으로 매만져 보기도 한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손때 위에 나의 손때를 묻혀본다. 의도적일 수도 있다. 나 여기 흔적을 남기고 간다는 의미. 나의 더께도 한 꺼풀 입혀놓고 간다는 의미. 그 길, 그 골목에 일주일을 남겨두고 왔다. 익숙해지려 하는 순간 떠나왔다.


3

 아침 일찍 집 앞 빵집에서 빵을 사 온다. 커피를 내린다. 전날 마트에서 사 온 과일과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기도 한다. 종일 책을 읽거나 뒹굴다가 오후가 되면 버스를 타고 또는 전철을 타고 느긋하게 미술관을 돌다 온다, 해 질 녘 개선문 광장을 걷기도 한다. 개선문 전망대는 아이들만 보냈다가 뒷날 다시 갔다. 먼저 보고 온 아이들이 꼭 봐야 한다고 성화다. 적당히 넘어가려다가 붙들린다. 올라가 본 사람과 사진만 본 사람의 차이를 알아야 한단다. 반드시라는 유의어를 붙인 이유다. 진짜 오르고 보니 사진만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느낌부터 다르다. 보지 않고 말하는 것과 체험하고 말하는 것의 차이는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걸 아이들을 통해 깨닫는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끝 12개의 방사상대로의 중심부인 샤를 드골 광장. 글로 읽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바라보는 느낌이 가장 눈에 띄게 달랐던 장소가 개선문 전망대다. 길의 중심부. 인생의 중심부. 그 명확한 위치가 갖는 묵중함.

 개선문 전망대에서 파리 전역 360도를 눈여겨본다. 그 360도의 현장감. 개선문을 중심으로 도는 파리 전역의 흐름을 짐작한다. 한눈에 바라보이는 파리 전역을 12개 방사상대로로 확인할 수 있다. 나를 중심으로 도는 인생 그를 중심으로 도는 인생.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같아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저 오래도록 원을 그리며 전망대에서 서성일뿐이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내 안을 술렁이며 도는 생각들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거기 그 장소 그 느낌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시간이 더 지나도 그때 그 순간을 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4년이었다. 남편이 돌연 사직서를 냈다. 이직을 위한 사직이었지만 그 회사에서 뼈를 묻을 줄 알았는데 그 나이에 이직이라, 적잖이 염려가 됐다. 남편에겐 2주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때 파리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2022년 8월 초, 그때처럼 계획에도 없던 파리행 여행이 결정됐다. 둘째가 헝가리 출장 중이었던 까닭에 급 계획된 여행이었지만 아이들이 준비해 놓은 여행 일정표로 파리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버스와 전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것 또한 아이들 덕분이다. 뮤지엄 패스며 나비고(버스 전철 이용 카드)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대중교통은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아닌가 싶다. 그들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4

 어디를 가든 한국사람 서너 명은 만난다. 파리 사람들의 반응도 놀랍다. 단체 여행과 개인 여행의 차이가 주는 성취감에 흐뭇했다. 중요 지역 수박 겉핥기식의 패키지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차이를 발견한다. 구석구석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이점이 그것이다.


 “안녕하세요? 한국사람? ... 이지요?”


 첫날 5시쯤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마르스 광장 옆 도로를 한 바퀴 걷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런 후 마르스 광장으로 다시 갔다. 에펠탑 레이저쇼를 구경하기 위한 것. 작은 분수대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을 찍고 풀밭 옆 도로 난간에 앉아 에펠탑레이저쇼를 구경하던 중이었다. 초등 3.4학년 또래 정도 보이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발음도 정확한 한국어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돌아보니 프랑스인이다. 급작스런 인사를 받고 당황했다. 하필 첫날, 파리에 미처 적응도 하기 전 받은 한국 인사에 대한 충분한 예를 갖춰 대답하지 못했음을 한참 후에야 깨닫는다. 그들은 계속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는 것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후회가 된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고마운 그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서. 소심하고 무심하게 화답을 한 것 같아서. 다음날이나 그다음 날쯤 그런 인사를 받았다면 좀 더 정확하고 친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아, 한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구나, 생각한다.






파리의 건축물의 견고함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허술하고 조잡하지 않다. 단단하고 말끔하다. 정확하고 분명하다. 오래된 것들과 낡은 것의 묘미와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늦도록 뒹굴고도 오래오래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고도 미술관 한 군데 정도는 충분히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백야의 계절이어서 가능했다. 밤 10시에 해가지는 계절 8월이어서. 또는 비교적 저렴한 에어비엔비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면 숙소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강렬하게 들어왔다. 피부가 탈 듯한 햇살임에도 바람은 시원한 파리의 기후, 지중해성 기후, 서안해양성 기후의 특징이 그런 건지, 그럴 것이다.  바람은 얼마나 시원한지. 며칠 그 집을 오간 시간. 골목과 집들 상점과 나무, 거리거리가 눈에 익을만할 때쯤 떠나오게 되었다. 그곳의 일주일이 그리워질 것 같다. 13평 정도의 작은 아파트. 1개의 방과 거실. 거실 소파는 펼치면 침대가 되는, 그리고 주방. 모든 조리기구는 서양식 뿐. 뚜껑있는 냄비가 보이지 않아 낭패라 여겼지만 궁하면 통한다는 것. 홈이 파인 뚜껑있는 후라이팬이 하나 보여 쾌재를 불렀다. 그러니까 우리는 후라이팬에다 밥을 했다. 그곳에서 한식이 그립지 않을 만큼 밥을 해 먹은 거다. 야채도 싸고 과일도 싸고 고기도 싸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한인마트에서 김치도 사 와 김치찌개도 한번 해 먹었다. 집에서 갖고 간 쌈장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끼니때마다 사 먹었으면 식비로 꽤 많은 소비가 됐을 테지만 절반 이상 해 먹는 바람에 식비 절약이 많이 되었다.(네 식구 한끼 외식비 보통 15만 원)


5

 나흘 째 되는 날 오후 3시쯤 마트에 갔다가 한인을 만났다. 멀리서 들리는 작은 소리임에도 한국말은 귀에 쏙 들어온다. 5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자매와 남자(남편?). 남편이 면도기를 찾으러 간 사이 나는 과일을 고르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유심히 보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행 오신 건가요?"

 "아니오, 여기 살아요."


 그녀나도 여행 왔냐고 물었다. 여행을 왔는데 오늘은 숙소에서 쉬노라, 대답했다. 우리 장바구니에는 로메인 상추 2종류와 깔별방울토마토 체리 납작복숭아 그리고 삼겹살이 담겨 있었다. 아, 물도 5리터짜리 2개. 일찍 삼겹살을 구워 먹고 7시쯤 나가보자 했던 날이었다. 방울토마토를 고르고 있는 나를 향해 그녀는 납작복숭아가 맛있노라 말해주었다. 이미 장바구니에는 납작복숭아가 가득 담겨있었다. 파리에서의 기억은 납작복숭아의 단내라고 말할 정도로 그 단맛에 빠졌다. 둘째는 체리라고 한다. 하하


 계산대로 왔을 때 그들도 옆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야구모자 눌러쓰고 민소매 옷에 후줄근하게 나갔는데 그들을 만난 것이다.

 계산을 마치고 마트를 나와 숙소로 향해 걷는데 아직 계산대에 있는 그녀가 (셋 중 1명) 나를 아니 우리 부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때 정차 중인 차량이 앞을 가렸다. 자동차를 벗어나 다시 마트 쪽을 보는데 그때까지 그녀는 우릴 바라보고 있다. 나는 환히 웃으며 목례를 한다. (양손에 짐이 있었으므로)그들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이게 뭔 맘이지? 야릇하다. 뭉클하다 해야 하나. 숙소에 돌아왔는데 자꾸만 그들이 생각난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서 있던 그들. 모퉁이를 돌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생각하니 알싸하다. 뭔지 모를 통증 같은 그 무엇이 아쉬움처럼 여운처럼 흥건하게 젖어드는 것이다. 그들도 아쉬움이 가득한 것처럼 우릴 향해 손을 흔들었고, 나도 미련이 남은 것처럼 마음이 알싸해져 왔다는 것. 그래서 아직도 내 마음은 아쉬워오는 것. 차 한 잔이라도 했음 어땠을까 싶은, 그들의 표정과 손짓과 뒷모습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는 것. 왜 그토록 오래도록 서서 우릴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는지, 우릴 바라보고 서 계신 것인지….

 파리는 언제 왔는지, 여기서 무얼 하며 사는지, 여쭙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국에서 들고 간 라면이라도 드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자꾸만 그들이 생각난다. 이상한 일이다.


6

 밤낮을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듣다가 간 파리, 파리에선 매미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때때로 들리는 비둘기 울음소리, 새벽이면 갈매기 울음소리(처음 들었을 땐 갈매기? 의아했었는데 아침산책 길 마르스 광장에는 실제 갈매기가 수없이 많았다.)가 들려왔다. 우리가 머무는 기간 파리 날씨는 이틀 비예보가 있었지만 일주일 내내 화했다. 이틀 비가 왔는데 저녁과 새벽에 내리다 그쳤다.

 파리는 왜 매미가 없을까. 36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에도 매미가 없다는 건, 청량하고 시원하다는 증거다. 한국도 9월이면 매미소리 들리지 않는다. 매미는 습한 여름, 습한 기후가 생태기가 아닐까. 파리는 여름이어도 한국 9월과 닮아 있었으니, 매미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1.개선문 아치 자세히 보면 달이 보인다. 2.개선문 전망대 사람들. 에펠탑 레이져쇼를 보기위해 서 있는 사람들.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오랑주리미술관
1 모네의 정원. 2 오랑주리미술관,튈르리 정원
1. 모네의 집에서 본 모네정원.
몽마르뜨 언덕에도 안전하다는. 배치된 경찰들
납작복숭아 체리...
<집>표기는 머물렀던 숙소임.

* 여행은, 기록용으로 발행합니다.

사진은 모두 폰사진, 질서 없이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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