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엔 5월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이는 면접장으로 갔다. 평소 입지 않는 흰 블라우스에 상하 블랙 정장을 입었다. 몸에 맞지 않는 남의 옷을 걸친 듯 어색한 몸짓으로 면접장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을 아이를 생각한다. 합격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차마 하지 못한다. 면접관 앞에서 떨지 않기. 어떠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기. 차근차근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잘할 수 있기. 면접관이 원하는 답변을 설득력 있게.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눈빛은 반짝일 것. 얼굴에 웃음기를 뛸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애써 살아온 25년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도록 그대로 보여줄 수 있기. 그런 생각을 했던듯하다.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기도처럼 되뇌었다. 빗줄기 사이로 얼비치는 아이의 모습, 자라 온 시간이 속도감 있게 지나갔다.
아이는 2.5KG의 저체중으로 태어났다. 14개월이 되도록 걷지 못했다. 걷지 못할 뿐이지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다. 느닷없이 친구가 그랬다. 왜 그렇게 무심하냐고. 14개월이 돼도 걷지 못하는 아기가 어디 있느냐며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순간 겁이 났다. 진짜 문제가 있는 건가? 갑자기 불길한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병원 예약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한 발자국 걸음을 떼더니 곧바로 걸음걸이가 단단해졌다. 진짜 달리기 시작했다.
네 살 때였다. 그때 나는 매주 토요일 j도서관 어린이 독서교실 수업을 했다. 큰애는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이들을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 두 아이를 도서관에 데리고 다녔다. 1층 어린이열람실에 아이들을 넣어 놓고 나는 2층 강의실에서 수업을 했다. 그때 남편은 해외파견 중이었다.(14개월 두바이 파견 중) 아빠의 부재로 아이들은 결핍이 자랐다. 엄마가 대신해줄 수 없는 아빠의 빈자리였다. 물론 그 원인은 내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의 빈자리를 감당하는 부담도 그러려니와 내가 느끼는 빈자리가 더 컸으니 그걸 이미 아이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엄마를 고파하는 이유도 아빠의 빈자리 탓이었을 게다. 아이러니하게도 빈자리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나는 더 바쁘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해야만 했던 것은 욕심이었던 것 같다. 눈높이에 맞는 독서교육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에 맞는 독서지도 공부를 했고 자격증을 땄다. 어딘가 소속이 필요했고 나름 수업을 하므로 경험치를 높여야 할 것 같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없는 토요일을 아이들과 잘 보내려 애썼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수업 의뢰가 들어온 걸 놓치기는 아까웠다. 기회가 주어졌는데 힘들다고 놓친다는 건 내게 주어진 사명을 져버리는 일이라 여겼다.
수업이 클라이맥스에 오를 즈음 뒷문이 딸가닥거렸다. 수업 중인데 누구지? 시선을 문 쪽에 꽂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아이였다. 순간 떼라도 쓰면 어쩌나, 얼른 시선을 피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키워 수업을 했다. 엄마를 확인한 표정이 밝았다. 다행이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 행여 수업에 피해를 주면 어쩌지? 걱정이 무색했다. 잠시 후 아이의 상황이 궁금해 뒷문을 슬며시 열어보았다. 무연한 눈빛과 행동들. 도대체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엉덩이를 들이밀며 뒷걸음질로 천천히 내려가는 아이의 눈빛이 쓸쓸했다. 저 어린것의 표정이라니! 엄마가 수업을 할 땐 아무리 떼를 써도 안 된다는 걸 알았던 걸까. 아님 아무리 떼를 써도 들어줄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걸까. 평소 떼쟁이인 아이가 이성적 감성적 자신을 절제하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건 가슴 아픈 감동이었다. 무연한 표정 속에 담겨있을 아이의 생각을 가늠해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까. 잘 키워야지 다짐을 했다. 아니 잘 자랄 거라 믿었다.
아이였을 때도 지금도 여전히 내겐 ‘아이’ 일뿐인 아이가 면접을 맞이한 순간까지 살아왔던 살아냈던 날을 되짚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다. 동구에 서 있는 몇 백 년 된 나무의 시간을 돌아보듯, 나무가 맞이한 수 백 번의 겨울과 여름이 어떠했을지 되짚어 보듯, 지금 여기까지 온 아이의 하루하루를 돌이켜보는 일은 숭고한 일이다. 놀이터 한 켠 수없이 밟히면서도 끄떡없이 영역을 넓힌 씀바귀꽃의 일가처럼 스물네 번의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을 고스란히 견뎌온 날들이 터전을 이루어야 한다. 사소하고도 결곡한 날들 기쁘고 슬펐던 날들이 모여 여기까지 이른 숭고하고도 벅찬 날들이 넓고 깊게 펼쳐지기를 바란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시절에 맞는 과정을 딛고 온 날들이 합격과 불합격의 이분법으로 나눠져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아이는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