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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Dec 08. 2021

뚜벅뚜벅, 제주롭다.

5박 6일, 혼자 아닌 혼자 여행


퇴사 후 한 달 살기가 어쩌다 보니 세 달이 됐다는 같은 방의 게스트,


몇 년 전부터 이곳에 눌러앉아 빵을 굽고 있다는 고등학교 친구,


산방산 근처, 입구와 출구 모두 찾기 힘든 인도식 카페의 사장님 그리고 최면에 걸릴듯한 음악까지,


모두 제주로왔다. 제주로 왔다.



이곳 사람들에겐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여유로움, 느즈막함 등으로 표현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긴장된 어깨를 부딪히던 이들이 티끌 모으듯 연차 모아 잠시 숨통 틔이려 향하는 목적지이기 때문일 수 있지만, 도시 전체가 뿜어내는 공기 자체가 마음을 서서히 물들이는지도 모른다. 제주살이가 어느덧 세 달 차에 접어들었다는 같은 방 게스트에게서도 현지인과 비슷한 분위기가 났으니까.





그다지 가깝다고 볼 순 없는 친구 하나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무리 지어 2번 정도 얼굴을 본 게 전부였고, 심지어 연락처도 몰랐으니, 왕래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혼자 제주로 떠나겠다고 결심했을 때, 몇 년 전부터 연고 없는 타지에 터를 잡았다는 그 친구가 떠올랐다. 본래 익숙지 않은 장소에서의 인연은 일상적인 공간에서보다 더 특별한 법. 애초의 의도는, 그녀가 일하는 빵집에 들러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추천하는 몇 가지를 서울로 가져올 참이었다.


잘 지내지?로 시작하는 어색한 문구 끝에 이 사실을 전하자, 그녀는 일정이 없다면 자신이 쉬는 날 동행할 것을, 본인의 집에서 머무를 것을 제안했다. 행여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지만, 이내 그러겠노라 했다. 뜬금없는 연락에도 살뜰히 베푸는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본래 계획적이고, 모든 일을 내 통제하에 두려는 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남들보다 더 많이 절망했고 더 크게 주저앉았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뜻하지 않은 퇴사를 맞닥뜨리곤, 한동안 종일 누워서 시곗바늘을 밀어냈던 것도 그러한 성향이 한몫했으리라. 그랬기에 이번엔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무엇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발길이 닿는 곳에 발을 딛으리라.


3박 동안 그녀의 호의로 침대를 차지하면서 게스트가 호스트를 밀어낸 주객전도의 상황이 민망할 때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어색하진 않았다. 모두 그녀 덕분이었다. 장롱면허인 나 대신 운전대를 잡은 그녀는 퍽 가까운 지인을 대하듯 자신의 이야길 익숙하게 풀어냈다. 영국 한인민박에서 5달간 스텝을 했던 경험, 연고가 없는 제주에 거처를 두게 된 사연, 베이커리의 사장님 부부와의 인연 등.


그러다 그녀는 최근 티브이에 나온 한 래퍼가 인상적이었단 얘길 했다. 얼마를 벌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300만 원.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의례 그 업계에서 부리는 호기를 생각해보면 다소 겸손하기까지 한 액수였다. 그리고 그녀 역시 300만 원을 벌고 싶다고, 그렇지만 차도 집도 없어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나는 잠시 말을 아꼈다. 퇴사 전 내 통장엔 매달 그 이상의 금액이 찍히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호캉스, 오마카세 등 부모님 세대에선 누리지 못한 다소 사치스러울 수 있는 일을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포장해도, 사이버머니 같은 숫자들이 내 명의의 집이 되어 실존한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가 마련이 국민 공동의 목표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드디어 내 소유의 공간이 생겼다는 뿌듯함, 남들에게 많이 뒤처지진 않았다는 안도감 정도. 그럼 내가 부를 금액은 얼마일까, 천만 원, 이천만 원 아니 그 이상. 내 기준은 서울 고층빌딩의 층수만큼, 매일 대하는 고객들의 명품가방의 브랜드들만큼 높아질 대로 높아져있었다.


좀 더 높은 세계를 살고 싶다.
얼마만큼을 가져야 내 삶이 변하게 될까.


날 이곳으로 향하게 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 그럼에도 발을 내디딜 방향을 몰라 멈춰 선 채 불안감을 호소하는 내게, 엄마는 더 가지면 네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 거냐 물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하진 못했고, 찾고 싶었다. 수십억 대 아파트에 사는 고객들을 대하고, 볕이 잘 들지 않는 원룸으로 복귀했던 서울에서의 삶은 나에게 끝없는 갈증을 심어다 주었다. 이미 가진 것들을 살펴보지 못하고 밑 빠진 독처럼 계속 퍼넣어도 모자라게 했다. 그럼 난 더 붓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아님 조각난 파편을 찾아 그릇을 정비해야 할까. 애써 채운들 그만큼 더 행복해지는 건 맞을까.




섬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떠나왔다해서 나를 오래 괴롭히던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대충 살아도 된다는 위안을 얻고자 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다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불안감에 무작정 내달리기보단 한 걸음 한 걸음 방향을 가늠하며 걷는 게 더 나은 길일 수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자 했다. 궁극적으론 내 팔다리의 동력이 조금 더 오르고자 하는 하는 갈망만이 아니기를, 더 느긋한, 따스한, 다정스러운 것들이 내게도 스며들기를 바랐다.





그녀에게 앞으로도 제주에서 살 것인지 물었다. 가족이, 친구가 없어 외롭진 않느냐고. 직업 특성상 새로운 인연을 만들 기회가 적어 소수의 지인들뿐이긴 해도, 한두 달에 한번 정도 육지에서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그때 같이 여행을 하기에 크게 외롭지 않다고. 그리고 언젠가 여기 동네에 작은 빵집을 내는 게 꿈이라고 덧붙였다. 괜히 안심이 됐다. 다음에 어딘가를 떠나온대도 그녀가 이 섬을 지키고 있으리라는 다행스러움. 소박하지만 넉넉한 마음을 담은, 자신만의 빵을 굽는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며,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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