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이가 먹어도 인간관계가 힘들어. 아니,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힘들어지는 것 같아 ― 친한 동료 언니가 고민을 전해왔다. 나보다 열 살은 많은 언니가 이런 고민을 하다니, 역시 나만 인간관계에 지치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도, 어떤 일이길래 하는 걱정도 스쳤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 이제는 관계가 틀어진 사람에 관한 얘기였다. 그런데 부서를 이동하게 되면서 가끔 같은 건물에서 마주치는데,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언니의 얘기를 들어보자니, 같은 팀에서 알고 지낸 지 한참이 된 사람이었다. 서로 도와가며 일을 했고 꽤나 친하게 지냈던 사이라고 했다. 그러나 친해질수록 문제가 생겼다. 그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언니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말해줬는데, 듣자 하니 이런 식이었다.
하루는 그 사람이 며칠 여행을 다녀왔다. 이삼일정도 출근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라고 생기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걱정을 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자기가 처리할테니, 그동안 생긴 일은 그냥 쌓아두라고 했다. 사실 한 팀이 비슷한 일을 하다보니 그렇게 일을 내버려두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당장 급히 처리해야하는 일도 있고 하니 어느정도 언니가 손을 보탰다. 그 사람이 여행을 끝마친 후 출근했을 때, 언니가 그 일들을 처리해줬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그랬냐고 언니에게 물어봤고, 언니는 그저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울먹거리며 자리를 떴다. 어리둥절한 언니가 쫓아 나가 왜 우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내가 한다고 했는데도 너에게 일을 시킨 꼴이 되어서, 피해를 줘서 미안해서 그렇다”고 했단다.
언니는 어리둥절했단다. 그 사람이 자기에게 왜 미안해하는지도, 그렇다고 왜 우는지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이런 식으로 언니의 이해 범위를 벗어났다. A라고 말하면 B라고 받아들였다. 보통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곡해된다고 했다. 어느새 그 사람은 언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그 말이 사실인 양 주변 사람들에게 언니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말을 종종 하고 다녔다. 언니는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도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서로 상처를 입고 입히느니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둘의 사이는 멀어졌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 익숙한 패턴이네,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과거의 내 모습을 띄고 있었다. 어떤 말도 자신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어두운 날의 나와 같았다.
잘못된 생각의 원인은 다양해서 특정할 수 없었으나, 생각의 밑바닥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그때 사회공포증과 우울증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둘 중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아마 둘이 서로에게 영향을 준 것도 같다. 이 곡해의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부터다. 이 전제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를 향한 모든 말과 행동들이 나를 싫어하고 공격하려는 태도로만 느껴진다. 나는 이것을 ‘병적인 상태’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아예 버리진 못했다. 그래도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할 수는 있는 정도다. 운 좋게도 남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담백하게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상대방의 태도에 비약이 심했다. 나는 나 좋을 대도 사람들의 속마음을 해석하고는 했고, 그 마음들은 보통 부정적이었다. 저 사람은 날 싫어해. 날 공격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야. 세상을 이런 시각으로 보기 시작하면 정말로 그렇게 보인다. 그것이 진짜 세계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제삼자에게 자신의 왜곡된 해석을 그대로 전달하기도 하는 것이고, 점점 더 그 세계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을’을 자처한다. 특히 친한 사람들에게 더 약자가 된다. 친한 친구마저 자기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아마 언니와 그 사람의 에피소드에서 그 사람이 일을 시키게 돼 미안하다고 울었던 것도, 그 일로 인해 언니마저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일로 피해를 주지 않았어야 날 여전히 좋아해 줄 텐데, 그것 때문에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이런 생각 때문에 세상의 모든 관계가 힘든 짐이 된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을 때, 그런 날 굉장히 안타까워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나 좋을대로 비틀어 생각하고 있을 때, 너에게 잘해주려고 하는 사람들 같은데 왜 그 사람들의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냐고 정정도 해주었다. 너를 좋아해서 하는 말이고, 너를 도와주려고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때의 왜곡된 나는 그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나를 혼내려는 말 같았고, 그 사람들이 날 좋아한다는 말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결국 그 친구도 나와 멀어졌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도 나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았으니 답답했을 것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자신의 마음도 부정적으로 곡해하니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서로 상처받느니, 멀어지는 것이 나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서로 괴로울 테니까. 상처 준 사람은 없는데 상처받은 사람만 있는 그 상황은 언제나 괴롭기 마련이니까. 그렇다고 서로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은 평평한 땅에 서있었고, 한 사람은 조금 삐뚤어진 세상에 서 있었을 뿐이다. 아마도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좋지 않은 타이밍에 만나게 되어 오래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언니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 사람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고 했다. 나이가 먹어도 인간관계가 어렵지만, 아마 그것은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너무 많은 사람들과, 사람들만큼의 마음이 있다. 그것이 병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조금씩 기울어진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해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시간을 넘어 과거의 그 사람이 어땠는지, 왜 그런 마음이었는지 이해하게 된다면 세상이 아주 조금 넓어진 것 같다. 아마 이 대화를 통해 나도 언니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언니는 나와 같은 사람의 입장을, 나는 언니와 같은 사람의 입장을 서로를 통해 이해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