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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프라이데이 Nov 18. 2018

한식대첩-고수외전 준우승 아말 산타나에 대해 몰랐던사실

한식대첩-고수외전의 우승자가 정해졌습니다. 우승자는 바로 벨기에 출신의 셰프 '마셀로 발라딘'입니다.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셰프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아말 산타나' 셰프입니다. 결승까지의 긴 여정에서한국적인 요리를 가장 많이 만들어 냈던 셰프를 꼽자면 단연 아말 산타나 셰프였습니다. 그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랑하는 셰프로 잘 알려져 있으며 많은 할리우드의 유명인들과의 화려한 인맥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렇게 화려하게 보이는 아말 산타나 셰프도 처음부터 그런 삶을 살아왔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아말 산타나 셰프가 걸어온 길과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을 RedFriday에서 소개합니다.


1. 이민자 출신 흙수저


아말 산타나 셰프는 13살 때 뉴욕의 퀸즈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전에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그의 남동생과 함께 재활용 병을 주워서 판 돈으로 파스타, 토마토소스, 마늘 등을 사서 요리를 해서 먹을 만큼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아말의 아버지는 아말에게 "길바닥에서 마약을 팔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나 직업을 가지고 싶다면 학교도 무료로 다닐 수 있단다."라고 자주 말했고 이 말은 아말이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요리학교에 등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실수"로 들어선 셰프의 길 


어린 아말은 미국에 와서 "Careers Through Culinary Arts Program"이라는 요리학교에 등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말이 요리를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Culinary(요리의, 음식의)"라는 단어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말은 단지 좀 더 나은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었을 뿐이었습니다. 아말은 수업 첫날 영어를 몰랐기 때문에 매우 당황했다고 그 당시를 회상합니다. 선생님께서 "어제저녁에 뭘 먹었니?"라고 물었을 때 아주 수줍게 "닭고기, 밥, 그리고 콩"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곧 그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학생들이 닭고기, 초콜릿 무스, 쿠키 등을 들고 하교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돌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3. 치열했던 10대 생활


다른 미국의 10대들이 운전을 배우고 친구들과 몰려다닐 때 아말 셰프는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인 Chanterelle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결국 10대의 아말은 장학금을 받고 런던의 르 꼬르동 블루에서 2주 동안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이때 요리에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어떤 누구도 아말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뉴욕의 유명 요리 학원인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입성하게 됩니다. CIA라고도 불리는 이 기관은 수많은 뛰어난 셰프들을 배출시켰으며, 아말도 최고의 셰프가 되겠다는 야망을 다짐했습니다.  


 4. 누구보다 성실하게! 


아말은 CIA의 학생으로서 찰리 파머(Charlie Palmer) 셰프의 레스토랑인 Aureole에서 인턴십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파머 셰프가 아말을 봤을 때 후줄근한 학생이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레스토랑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으며 파머 셰프는 그것을 잊지 않고 아말이 CIA를 졸업했을 때 '생선 요리사'의 직함을 제안했습니다. 아말이 Aureole의 생선 전문 요리사가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20세였습니다.

5. 초고속 승진


Aureole의 생선 전문 요리사가 된 아말은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늦게까지 레스토랑에 남아 디저트를 만들었고, 가능한 한 많은 일들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동료들이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라고 말하자 아말은 "이것이 내 인생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곧 부 총 주방장이 되었으며, 그는 그 유서 깊은 레스토랑의 역사상 최연소로 그 타이틀을 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6.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찰리 파머 셰프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아말은 찰리 파머 셰프의 새로운 레스토랑으로 가게 됩니다. 이 기회는 아말 산타나 셰프의 인생을 바꿔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말의 나이는 23세였으며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가게 된 것에 당혹감을 느꼈다고 회상합니다.  


7. 야망을 가진 사업가


찰리 파머의 새 레스토랑은 수십 년 만에 미국을 강타한 최악의 경제 침체가 시작되었을 때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식당이 위치한 곳은 부유층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경제 침체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말 산타나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사업적인 것들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야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1년 아말은 파머의 그늘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하며 그의 레스토랑을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음식을 제공하여 레스토랑에 사람은 북적였지만 테이블당 평균 가격이 높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레스토랑의 컨셉을 조금 더 고급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수는 줄었지만 그의 수입은 이전에 비해 3배나 올라있었습니다. 곧 그의 두번째 레스토랑을 개업하며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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