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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Jul 02. 2024

국가의 거짓말: 코로나 사태 vs. 의대증원 사태

정치적으로 어느 쪽을 지지하든 최소한 대중들은 내가 지지하는 집단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부도덕한 집단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듯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제가 몸담고 있는 학문 분야에 심각한 오류가 있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던지라, 저 같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지향하는 쪽>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선거 때도 소위 진보라고 불리는 쪽에 늘 표를 주었죠.


그러나 2020년 2월 당시 정부가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신천지라는 한 종교단체를 상대로 벌이는 일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때 이미 코로나19는 무증상이 매우 많은 감염병임을 알 수 있었고 바이러스 전파 책임을 특정 국민에게 물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런 일을 벌인 이유는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질병청이 앞장서고 언론과 국민이 다 같이 참여하는 거국적인 마녀사냥이 휩쓸고 간 후, 정부는 이 방법이 국민들의 값싼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자신들의 지지율을 높이기에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듯했습니다.  동아시아권의 유행 양상은 서구권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도 그들이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방역의 단 맛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질문하는 법을 모르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세뇌작업을 벌이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었고, 그들은 정권을 내놓고 물러갈 때도 <K방역은 성공>이라는 백서를 남기고 떠나죠.


코로나 사태동안 제가 표를 주었던 그들의 끊임없는 거짓말을 지켜봐야 했던 것은 저한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귀한 자각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들 중에는 가히 괴벨스에 비견할만한 선동가들도 적지 않았으며, 그들이 하는 말 중에는 진실보다 거짓말이 더 많았습니다. 유행 내내 제가 했던 일이 그들의 거짓말을 찾아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만, 우리 사회는 아무도 그들의 거짓말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다른 정치권력 하에서 의대증원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2024년 2월 6일 정부는 2000명 의대증원을 발표하는데, 그 규모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저를 포함 의대교수 누구도 그 숫자가 실현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한 정부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하여 2000명은 의료계와 수십 차례 논의를 통하여 도출된 최소한의 규모라고 다시 한번 못을 박고 결국 확정해 버립니다.


일방적으로 의사들만 온갖 비난을 들으면서 4개월 이상 끌어오던 의대증원 사태는 지난주를 기점으로 뭔가 변화 조짐이 감지되는 듯싶습니다. 의료사태 관련 국회 청문회에서 정부의 거짓말이 들통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의료계와 37차례 논의해서 결정되었다는 정부 주장과는 달리 2000명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숫자라는 사실이 공개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복지부 장관은 <본인이 2000명을 결정했다>는 아무도 믿지 않을 주장까지 하죠. 13시간 동안 이어진 청문회 핵심은 단국의대 박형욱 교수님이 하신 증언이라서 유튜브 링크를 겁니다.



예전에 이국종교수가 복지부를 두고 <숨 쉬는 것 말고는 다 거짓말>이라고 했다는 소문을 듣고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본 적이 있습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비슷한 기사가 나오더군요. 코로나 사태 동안 노란 점퍼를 입고 나와 국민을 기만하던 그들이 이번에는 녹색 점퍼를 입고 나와 국민을 기만하고 있었는데, 인물과 점퍼 색깔만 바뀔 뿐 그들이 거짓말에 능한 집단이라는 사실은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인 듯싶습니다.


그런데 의대증원 사태를 지켜보면서 제가 가장 놀랐던 점은 정부의 대응방식이었습니다. 정부는 의대증원 발표 후 즉각 빅 5 병원에 경찰을 출동시키고 전국 50개 수련병원에 행정요원을 파견합니다. 그리고 사직서를 던지고 나간 전공의들을 상대로 "업무개시명령", "사직금지", “법정 최고형”, “면허취소”, “출국금지”, “구속수사”와 같은 믿기 어려운 폭력적인 단어를 사용해 가면서 매일 협박 수위를 높여갔죠.


저는 현 정부의 이런 대응을 보면서 코로나 사태 때의 지난 정부를 떠올렸습니다. 코로나 사태동안 한국인들은 공권력에 의하여 자신들의 기본권을 참담하게 유린당하고도 어떤 문제의식도 가지지 못했는데, 그 덕분에 이제 한국 정부는 자신들이 국민을 상대로 어떤 초헌법적인 일을 벌여도 괜찮다고 스스로 믿게 된 듯했습니다. 정직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이끄는 국가라 하더라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만, 정직하지도 유능하지도 않는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그런 권한을 허락하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입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가 너무나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 되었고 거짓말의 직접적인 피해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진실을 따지고 묻는 언론도 국민도 없다는 사실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와 함께 우리 편이 하는 거짓말과 상대편이 하는 거짓말에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대중들이 다수가 되면서 앞으로 그들은 더욱 뻔뻔한 거짓말들을 예사롭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실은 결국 거짓을 이긴다”라는 말을 위로삼아 살아가기에는 이미 세상은 너무 혼탁해진 듯합니다. 코로나 사태든 의대 증원사태든 거짓말을 했던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미래에 국가가 다른 집단들을 상대로 유사한 일을 벌이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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