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의대증원 사태가 전개되는 양상은 여러모로 한국의 코로나 사태와 흡사한 듯싶습니다. 온갖 비상식적, 반인권적 정책으로 3년 이상 보낸 후, 결국 집단면역의 스웨덴보다 더 높은 초과 사망으로 마무리했던 한국의 코로나 사태처럼 의대증원 사태도 갈 때까지 가야만 끝이 날 것 같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아직 대다수 한국인들이 무지의 늪에 빠져 있는지라, 국민들이 체감하는 후유증은 의대증원 사태가 더 심각할 듯하고요.
며칠 전 열렸던 여당 연찬회에서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의대 증원사태를 두고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더군요. 지금부터 6개월이면 내년 2월입니다. 현 정부는 2025년 입시만 마무리되면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의대증원이 과거 어떤 정권에서도 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치적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그들에게 <의대증원 2천 명>이란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절체절명의 가치입니다.
이 기상천외한 숫자가 처음 세상에 던져졌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이 숫자가 비과학적인 것은 물론이고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인지한 국민들도 꽤 늘어난 것 같습니다. 더불어 한국의 필수의료를 왜곡시킨 주범은 OECD 평균보다 적다는 의사수가 아니라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가와 무지막지한 사법리스크라는 사실도요.
필수의료 분야는 경험해보지 않은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마력이 존재하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예전부터 의사들 중에는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진짜 생명 구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던 그런 사람들이 있었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연봉, 근무시간 따위가 아니라 그런 일을 소신껏 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태는 전공의와 학생들에게 한국에서는 절대 필수의료를 선택하면 안 된다는 정부發 경고장을 날린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지금쯤은 청와대, 복지부, 교육부 내부에서도 2천 명이 애초부터 말도 되지 않는 무리수였으며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한 번도 아닌 수차례 <의료개혁=의대증원 2천 명>을 공언한 마당에, 각 정부부처가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밖에 다른 선택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편 2021년 여름은 이미 코로나19 백신이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다는 보고들이 나오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때는 고위험군 백신접종을 끝낸 후로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는 백신, 장기부작용에 대한 정보가 없는 백신을 건강한 사람들에게 맞출 그 어떤 이유도 없었습니다. 특히 자연감염이 백신보다 더 견고한 면역을 제공한다는 연구결과들까지 줄지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즉각 방역을 풀고 사회를 정상화시키는데 집중해야 할 시기였습니다만 그들은 확진자 천명이 넘는다고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하고 백신 반강제 접종을 강행하죠.
그 이유는? 당시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부 측 고위 인사들이 <11월까지 백신접종률 70% >에 도달하겠다고 수도 없이 공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백신접종률 70% = 집단면역>으로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도달해야만 하는 마의 숫자였습니다. 국민들이 백신 접종 후 경험하는 각종 부작용들은 모두 가짜 뉴스로 검열, 삭제하고 백신접종율을 올리는 것에만 광적인 집착을 하죠. 하지만 70%는 물론이고, 80%, 90%를 넘어가도 약속했던 집단면역은 오지 않고, 오히려 오미크론 유행시 전 세계 최고의 초과사망을 보이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6개월만 기다리면.. 의대증원 2000명>과 <11월까지.. 백신접종률 70% >, 다른 정치권력하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둘 다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이 꽤나 흡사해 보입니다. 이 숫자들은 그들이 애초에 목표로 했던 그 무엇을 이루는 수단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심각한 방해요인입니다만, 이번에도 그들은 벽을 문이라 우기면서 눈가리개를 한 채 질주하는 말처럼 돌진하고 있군요.
무엇보다 우려할만한 사실은 그들은 자신들이 공언했던 그 숫자를 위해서라면 국민들이 치러야 할 피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무지함과 무모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형적인 전체주의 사회가 보여주는 특징이죠. 또한 두 사건 모두 그 배경에는 복지부라는 관료집단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작금의 왜곡된 의료시스템을 만들어낸 주역이 복지부라는 점에서, 의료개혁은 다름 아닌 복지부와 같은 공공보건의료 관료조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고요.
반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군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들 중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한국은 진작부터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자 했던 의사들, 특히 자유의지의 힘과 가치를 믿고 살아온 사람들이 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장소였다는 사실.. 앞으로 온갖 부당한 법과 행정명령으로 당신들의 목줄을 죄는 자들이 더욱 많아지는 국가가 될 거라는 사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