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번째 이야기
<방안의 코끼리, 해독과 호메시스를 만나다>에서 이어집니다.
최근 들어 호메시스가 재조명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독성학이 아닌 생명과학 분야 연구자들에 의하여 <호메시스와 노화> 간의 밀접한 관련성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호메시스는 요즘 유행어인 저속노화의 핵심 기전으로 이 내용은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고, 이번 글에서는 먼저 독성학 영역의 호메시스 연구자들이 놓치고 있었던 주요 지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렸듯 호메시스란 <고농도에서 독성을 보이는 요인들이 저농도에서는 오히려 생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생물학적 현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방안의 보이지 않는 코끼리 문제와 호메시스와 일견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표현을 우리가 안전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노출허용기준 이하의 저농도 합성화학물질들이 위험하다>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갑자기 <저농도 노출은 오히려 생명체에 유리하다>는 호메시스 이론이 등장하다뇨?
이 모든 것은 저농도라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단어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입니다. 방안의 코끼리 문제는 호메시스 반응을 보이는 농도보다 훨씬 더 낮은 농도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죠. 즉, 농도를 <초저농도, 저농도, 고농도>의 3단계로 표현하면 초저농도에서는 방안의 코끼리로 작용하지만, 저농도에서는 호메시스를 보이고, 고농도에서는 다시 독성을 나타내게 됩니다. 따라서 전체 농도 범위를 하나의 그래프에 그리면 아래와 같은 3차 곡선으로 드러납니다.
여기서 방안의 코끼리로 작용하는 초저농도 영역의 유해성은 우리가 진화적 적응을 거치지 않은 요인에 국한되며, 진화적 적응을 거친 요인들은 <호메시스를 보이는 저농도 영역>과 <독성을 보이는 고농도 영역>만 고려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방사선은 진화적 적응을 거친 대표적 요인으로, 현재 자연방사선이란 형태로 생명체와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자연방사선을 인위적으로 없애버리면 오히려 생명체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만, 패러다임의 오류에 갇힌 연구자들이 0만이 안전하다는 LNT모델로 진실을 완벽하게 왜곡시켜 버렸죠.
어쨌든 20세기 내내 대부분 독성학자들은 유해물질들이 <고농도>에서 보이는 독성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고농도에서 관찰된 선형성 패턴이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가정을 해버립니다. 반면 소수 연구자들은 다양한 농도에 대한 비교 실험을 통하여 고농도에서 독성을 보였던 요인들이 저농도에서 오히려 생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생물학적인 반응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고요.
아래와 같은 2차 곡선은 Hormesis를 검색하면 흔히 나오는 용량-반응 곡선입니다. 당연히 선형성에 기반한 기존 패러다임보다는 훨씬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만, 이 분야 연구자들은 호메시스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는 더 낮은 농도에서 또 다른 유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최근 환경호르몬 분야를 비롯하여 <초저농도>에서 보이는 각종 유해성들이 줄지어 보고되면서, 문제의 복잡성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실험 연구결과들이 사람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먼저 실험실 밖을 벗어난 현실에서 <초저농도 혹은 저농도> 영역은 항상 수많은 요인들이 혼합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선형성>만 해도 복잡한데, 여기에 <혼합체>라는 특성까지 더해지면 상상초월의 복잡성을 보이게 되죠. 즉, 현실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이 영역의 유해성을 실증적 연구로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하게 개인 차원에서도 누구에게 그 혼합체의 유해성이 드러날지 미리 아는 것도 불가능하며, 단지 질병이 생기고 난 다음에서야 방안의 코끼리가 관여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죠.
물론 예외적으로 혼합체의 유해성을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노출량 0을 포함하여 <초저농도, 저농도, 고농도 범위>를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실험 연구와 달리,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초저농도 혹은 저농도>만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역학연구에서는 항상 전체 용량-반응 곡선 중 일부만을 관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래는 미세먼지에 대한 역학연구 결과 중 일부입니다. 미세먼지란 그 자체로 수많은 유해물질들이 혼합체로 존재하는, 방안의 보이지 않는 코끼리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림에서 보듯, 미세먼지는 현재 사람들이 아주 깨끗한 공기라고 느끼는 엄청나게 낮은 노출 수준에서부터 질병과 사망 위험을 증가시키게 됩니다만 노출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더 이상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 패턴으로 바뀌는 비선형성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예외적인 상황일 뿐,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역학 연구에서 이 정도의 패턴이라도 실증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수많은 유해물질들이 혼합체로 존재하는 <초저농도, 저농도> 영역의 역학 연구 대부분은 극복불가능한 방법론적인 한계로 인하여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의미 없는 노이즈들만을 양산할 뿐이죠. 미세먼지조차 노출 범위가 어디에 걸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속히 역학자들이 자신들의 학문이 가진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해야만 그나마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만, 코로나 사태동안 목격했듯 그들은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결국 <고농도>와 <초저농도>에서 보이는 유해성은 근본적인 대처 방법이 달라야만 하는 당위성으로 이어집니다. 개별요인들이 고농도에서 보이는 유해성은 예측가능하고 적절한 사전관리로 예방할 수 있지만, 초저농도 노출로 인한 유해성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더 이상 외부에서 개입하여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방안의 코끼리, 해독과 호메시스를 만나다”에서 적었듯,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관련 학계에서는 <혼합체에 적용되는 노출허용기준>을 만들어서 초저농도 노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출사표를 던져놓은 상태입니다. 천문학적인 연구비가 쏟아부어지고 최첨단 과학기술들이 동원되고 있죠. 조만간 그들은 뭔가를 발표할 겁니다. 하지만 굳이 그들이 만들고 있는 그 무엇을 기다릴 필요조차 없습니다. 고농도 독성을 막기 위하여 사용했던 고전적 패러다임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그들이 무엇을 만들어내든, 실패는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패러다임 하에서 해결해 보려고 애를 쓸수록, 문제는 계속 악화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됩니다만, 현시대 연구자들은 더 이상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기존 학계에 대한 극심한 회의감으로 지쳐갈 무렵, 우연히 <학계는 가장 성공한 사기 시스템> 일뿐이라고 주장하는 스위스 로젠공과대학 대학원생의 글을 읽게 되죠. 당시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읽은 바 있는데, 최근 기존 과학계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Sabin Hossenfelder라는 독일의 물리학자 유튜브를 보면서 다시 한번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됩니다.
그녀 표현대로 요즘 발표되는 많은 논문들은 그냥 “Bullshit research”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아직도 대다수 의사와 환자들은 왜 병에 걸리는지 이해조차 못한 채 토끼굴 속을 헤매고 있고요.
<선과 악, 호메시스에서 만나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