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비선형성의 세계>에서 이어집니다.
앞서 유해물질들이 초저농도에서 보이는 문제에 대한 현실적 대응책으로 (1) 해독과 (2) 호메시스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해독이란 체내에 들어온 유해물질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과정으로, 누구든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잘 알려진 <자연식, 운동, 수면, 마음>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별 거부감 없이 본인 삶에 접목할 수도 있고요.
그러나 호메시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호메시스를 둘러싸고 수많은 오해와 혼란, 그리고 광범위한 무지가 존재하죠.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마 많은 의사들이 호메시스를 유사과학정도로 이해한다는 점일 겁니다. 여기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제가 몸담고 있는 예방의학이라는 학문에 있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호메시스는 사기라고 한국의 환경운동가들을 교육시켜 왔던 모 의대 교수는 그 근거로 늘 <예방의학 교과서>를 인용하곤 했죠.
하지만 현시점 호메시스는 21세기 첨단 의학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 노화가 수많은 질병의 공통 기전으로 알려지면서 노화를 늦추거나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연구들이 전 세계적인 유행입니다. 그런데 노화 연구란 그 자체로 호메시스 연구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면 <저속 노화=호메시스가 제대로 작동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호메시스란 <세포의 스트레스 반응 (cellular stress response)>이라는 평범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보통 스트레스라고 하면 정신적 스트레스부터 떠올립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스트레스란 세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합니다. 화학적, 물리적, 생물학적, 심리적 자극 모두 <특정 범위에서> 생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스트레스 반응을 유도할 수 있죠.
앞서 올렸던 글에서는 현재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종류들이 보이는 호메시스 반응에 대하여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방사선, 중금속, 농약, 환경호르몬, 미세플라스틱.. 모두 특정 범위에서 호메시스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학이 도입되기 전, 수은, 비소, 납과 같은 중금속, 라듐과 같은 방사능 물질을 질병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호메시스 원리가 그 배경에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반응이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믿는 종류들에서도 똑같이 보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고용량으로 즐겨 복용하는 각종 비타민, 미네랄 보충제들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는 이와 유사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종류들이 무한대급으로 많습니다. 의사들의 처방약이나 시술 중에서도 호메시스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종류들이 많죠.
최근 유행은 각자의 생활습관을 이용하여 호메시스 반응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간헐적 단식, 저탄수화물식, 파이토케미컬, 운동, 냉수욕, 사우나, 햇빛.. 모두 비슷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탄고지 vs. 현미채식, 무엇이 더 건강한 식단일까?>에서 적었듯, 단탄지의 관점에서 보면 극과 극을 달리는 식단들도 호메시스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식단입니다.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이 역시 온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반대 상황이지만, 호메시스 관점에서 보면 동일하죠.
생명체는 모든 종류의 스트레스에 대하여 동일한 법칙으로 대응합니다. 인간의 인식 체계 내에서 선으로 분류되었든지, 악으로 분류되었든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너무 약한 스트레스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너무 강한 스트레스에는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죠. 하지만 적절한 강도의 스트레스가 주어지면 그때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온갖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 몸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가 새롭게 합성되고 손상된 유전자가 신속히 복구되는 것은 기본입니다. 망가진 세포 내 부속품들의 처리 속도가 증가하고 글루타치온 합성을 비롯하여 각종 항산화 시스템도 활성화되죠. 그리고 항염증반응이 시작되고 노폐물의 세포 배출이 촉진되는 등, 세포가 가진 각종 유지보수 기능들이 극대화되는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모든 생명체는 스트레스 반응을 이용하여 세포 수준에서 발생한 초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호메시스는 <우리 몸 안에 백 명의 명의가 살고 있다>는 속설이 과장이 아닌 명백한 진실임을 알려주는 과학적 증거죠. 현대 사회에 만연한 대부분 질병들은 이 문제해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생명체란 애초부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문제->해결->문제->해결.. 의 순환이 끝없이 이어지는 동적 평형상태.. 이것이 바로 건강한 생명체의 본질입니다. 동적 평형상태의 절묘한 균형은 (1) 이미 발생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깨어지지만, (2) 해결할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도 서서히 무너집니다. 호메시스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해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스트레스 반응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단순히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체는 이런 문제 해결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예전에는 견디지 못했던 스트레스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까지 장착하게 되죠. 점점 더 강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니체가 남겼던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는 경구는 스트레스 반응의 핵심을 꿰뚫은 명언입니다.
현실에서 스트레스 반응의 가장 큰 딜레마는 자신한테 유리하게 작용하는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을 어떻게 찾느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명체 건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적절한 스트레스란 우리 외부가 아닌, 이미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생명체로 작동하기 위하여 세포 내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그것’.. 모든 생명체는 일차적으로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이 가진 문제해결 시스템을 상시로 작동시키고 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또다시 생명체의 경이로움에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토콘드리아, 건강의 알파이지 오메가입니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