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이야기
<선과 악, 호메시스에서 만나다>에서 이어집니다.
앞서 생명체는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되는 동적평형상태에 있어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결 가능한 적절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까요? 생명체의 경이로운 점은 문제 해결 시스템뿐만 아니라 문제 발생 시스템조차 세포 내에 이미 장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포마다 수백, 수천 개씩 빼곡히 들어차 있는 소기관, 융합과 분열을 반복하면서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장소, 경쟁이 아닌 공생이 생명체 진화의 동력임을 보여주는 산 증거, 생명 현상에 양자역학적 원리가 작용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생체광자(biophoton)가 생성되는 곳..
바로 박테리아로부터 유래한 미토콘드리아가 호메시스 작동에 최적화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장소입니다. 미토콘드리아 전자전달계에서 영양소를 태워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부산물로 활성산소라는 것이 있죠. 생명체는 이 활성산소를 이용하여 기본적인 호메시스 반응을 유도하는 지극히 효율적인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만약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만 합성하고 활성산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재앙입니다. 활성산소가 보내는 신호없이는 세포 분열 동안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유전자 돌연변이, 단백질 합성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소위 불량 단백질들을 실시간으로 처리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평소 해결 가능한 적절한 문제를 경험하면서 문제해결 시스템을 훈련시키지 못한 생명체는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쉽게 무너져버리죠.
오랫동안 활성산소는 노화의 주범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습니다. 활성산소 때문에 노화가 진행되고 온갖 질병이 발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없애는 항산화제들이 유행하기도 했었고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항산화제라 믿고 복용하는 보충제 상당수가 사실은 활성산소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증가된 활성산소가 호메시스 반응을 유도하여 결과적으로 항산화효과를 보인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죠.
활성산소는 스트레스 반응의 보편적 규칙을 고스란히 따릅니다. 너무 약한 활성산소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너무 강한 활성산소에는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죠. 하지만 적절한 강도의 활성산소가 주어지면 그때부터 생명체가 가진 기본적인 유지보수기능이 작동되기 시작합니다. 미토콘드리아 전자전달계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는 그 자체로 최적화된 스트레스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생명체의 활성산소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무한 진동 (oscillation) 상태에 있습니다. 불교에서 고정된 실체 없음, 즉 무상을 이야기할 때 찰나생 찰나멸 (刹那生 刹那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더군요. 찰나는 고대 인도에서 사용하는 가장 짧은 시간 단위로, 현재 시간으로 바꾸면 1초의 75분의 1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제 머릿속에서는 미토콘드리아 활성산소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끊임없이 미시적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내 몸이 연상되곤 하더군요.
앞서 <문제 발생과 해결의 동적 평형상태>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이 미묘한 균형이 깨어지는 상황으로 (1)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와 (2) 애초부터 문제가 없는 상태 모두에서 다 가능함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활성산소도 이와 동일합니다. 활성산소 역시 (1) 생성 후 소멸되지 않아도 문제고, (2) 처음부터 생성되지 않아도 문제죠.
현재 수많은 질병의 발생 기전으로 알려진 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라는 것은 이 두 가지 상황을 다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하여 노출되는 수많은 환경오염물질들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데, 사실 이 기전이 방안의 코끼리가 인체에 해로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들이 온갖 문제를 다 일으킨다 하더라도 미토콘드리아 기능만 정상적이라면 기본적인 유지보수기능을 작동시켜 초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만, 문제 해결시스템 자체를 망가트리면 답이 없죠.
공기, 물, 토양, 식품 등 모든 것이 오염되어 버린 현대사회에서 방안의 코끼리를 피하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우리 지방조직에 이미 이 방안의 코끼리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까지 인지하게 되면, 좋든 싫든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죠. 따라서 현대인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은 나날이 저하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만성염증으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암, 치매, 당뇨병, 심장병, 뇌졸중, 자가면역질환, 자폐, 발달장애.. 이 모든 질병들이 그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왜 모든 사람들이 노출되면서 사는데, 모두 다 환자가 아닌 걸까요? 첫 번째 이유는 혼합체와 비선형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하여 일부에서만 문제가 드러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방안의 코끼리에 대한 대처 능력에 개인차가 크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점은 이 능력을 자신의 노력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에서 지혜롭게 이 문제에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별문제 없이 사는 사람은 그 자체로 자신이 경험했던 방안의 코끼리가 미토콘드리아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증거로 생각하면 됩니다. 반면 건강상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어떤 병이든 방안의 코끼리가 자신의 미토콘드리아에 악영향을 주었다고 전제하고 대책을 세워야만 하죠.
<나만의 호메시스 작동법 찾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