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고도 3만 6천 킬로미터에 이르렀다. 단은 그곳이 바로 가장 멋진 지구를 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여겼다. 그가 버튼을 눌러 후면 유리 덮개를 열었다. 그리곤 곧바로 리를 불러 추진기 쪽 유리창 너머로 지구를 보라고 일렀다. 잠시 후 그는 조종석에서 빠져나와 리의 옆으로 갔다. 그녀의 눈길이 우주공간을 떠돌다가 다시 지구로 이어졌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흐린 바다와 회색 육지뿐이어도 지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2039년, 지구는 비켜 갈 거라고 예상했던 외행성과 충돌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은 성난 바다 한쪽에 잿빛 육지가 묻힐 듯 가까스로 남아 보였다. 그 사이에 지구 안에서부터 끓어오른 열기로 대륙 가장자리가 물에 잠기고 곳곳에서 시작된 불이 숲을 모조리 태웠다. 어떤 산불은 수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해안과 산간 지역 사람들 모두 좁아진 내륙 평지로 이주해야만 했다. 밀집된 도시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지구 어디에도 더 이상 그들이 이동해 갈 수 있는 척박한 땅이 없었다.
다급해진 인류의 노력으로 달에 작은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재해가 닥쳐오기 훨씬 전에 단지 호기심으로 달 여행 티켓을 예매해 두었던 사람들이 최초의 달 개척자들이 되었다. 지구에 잔재한 사람들은 하루빨리 달에 가는 꿈을 꾸었다. 리도 마찬가지로,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같은 것을 염원했다.
우주 비행사 단은 지구에 쓸만한 물건들을 수거해서 달로 가져가는 일을 했다. 단과 리는 곧 달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침내 그곳에 정착할 계획이었다.
“달에 가면 모든 게 좋아질 거야. 물수건으로 입을 가려야 하는 일도 없을 테니까. 그건 네가 늘 불평하던 거잖아.”
단이 무중력 완화제를 리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하지만 우주 방사선을 피하려면 우주복을 입어야 할 거야.”
“지하 도시는 모든 게 안전해.”
“그래 네 말이 맞아, 지하 도시라면 태양풍도 없을 테니까.”
그녀가 그에게 받은 알약을 손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리면서 건조하게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리?”
“아무런 문제도 없어. 네 말이 전부 맞아, 그렇다고.”
“아니, 그렇지 않아. 뭐가 문제인지 말해봐.”
“그런 거 없어. 넌 뭐든지 다 알고 뭐든 잘해 낼 거잖아. 지금까지도 그래 왔으니까.”
“그래, 난 그럴 거야.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야.”
“넌 언제나 너일 거니까. 나 없이도 그럴 거잖아. 모르겠어, 난 그냥….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어져 버린 기분이 들어.”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나를 떠나려는 거구나.”
그의 말에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런 거야.”
얼마 후 단은 일어나서 조종석으로 갔다. 조종석 옆자리에 있던 동료 비행사 장고가 그를 보고는 어떤 말을 건네려다가 관두었다. 달에 반사된 태양 빛이 눈을 시리게 했다. 그는 리를 달에 내려주고 그녀의 짐도 꺼내서 내려주었다. 그런 뒤 그는 우주선으로 돌아왔다. 장고는 그가 다시 조종석에 앉는 걸 보고는 어쩔 셈이냐고 물었다. 그가 지구로 돌아가서 그곳에 남을 거라고 하자 장고가 이미 모든 게 끝난 곳에서 대체 무얼 할 거냐고 되물었다. 그가 대답하지 않고 추진기를 발동시키는 바람에 장고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옆자리 조종석으로 가서 앉았다. 우주선이 지구로부터 3만 6천 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때 단은 다시 유리창 덮개를 열었다. 그는 여태 근사한 지구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곳에서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게 나쁠 리 없다고,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