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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하 Feb 14. 2023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목적지까지 가려면 시간이 촉박한데 천지를 뒤흔드는 ‘따르릉’ 소리에 걸음이 계속해서 더디어진다. 그런 중에 갑자기 깨닫는다. ‘휴대폰 알람 소리이구나’. 날이 밝지 않은 어스름 새벽녘, 코끝에 닿는 공기가 서늘하다. 뒤척임도 망설임도 없이 침대밖으로 몸을 굴려 내린다. 정신을 차려야 하므로 뜨겁지 않은 물에 샤워를 한다. 머리를 적시면서 생각한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기를, 뒤돌아 후회할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를’. 저변을 맴도는 은은한 불안과 쌓여온 불만을 마른 수건으로 털어내고 어두운 도로 위를 달린다. 눈만 뜨면 달려가는 곳. 황금을 묻어둔 곳도,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누군가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주제넘고 배은망덕하고 오만하고 시샘이 많고 무례한 사람들 중 누군가를 반드시 만날 것만 같은 곳으로. 적막함과 부족한 인지능력과 육신, 불안정한 혼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나는 그 도로에서 10중 충돌사고 차량들 사이에 끼었던 적이 있었으므로 생사가 오가는 길이기도 하다), 위태로운 입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질책한다. 


    질책의 강도가, 혹은 의지가 약했던지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온 우주의 기운이 내게 그만하라고 명하는 것 같았다. 결국 항복하고 물러났다. 나 자신의 내면이 아닌 세상밖으로. 마르쿠스 황제는 곁에 붙어있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나무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이므로 공동체에게서 벗어난 종양과도 같다고 나를 꾸짖는 것만 같다. 하지만 황제는 다시 격려한다. 오직 이성을 가진 인간에게는 다시 그 나무로 돌아가서 완전한 공동체를 이룰 여지가 있다고(하지만 애초에 떨어져 나오지 않은 가지와는 다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 아침이 밝은 것을 확인하고 다시 옅은 잠으로 빠져든다. 쾌락이다. 황제의 말이 귓전에 울린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침상에서 이불을 덮어쓰고서 따듯한 온기를 즐기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 내가 대답한다 “하지만 이만큼 자고 나야 낮에 졸음으로 고통스럽지 않은 걸요.” 다시 황제의 질타가 들린다. “네가 태어난 것은 누리기 위해서인가, 행하기 위해서인가. 천하의 모든 미물들도 맡겨진 소임을 수행하면서 우주의 질서에 기여하기 위해 각자의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황제가 철학일기를 쓰던 당시에 그는 50만 대군을 지휘했다. 잉글랜드에서 이집트까지, 대서양 해안에서 티그리스 강까지 이어지는 대제국을 다스렸다. (나는 120제곱미터 남짓한 영역에서 개 두 마리를 지휘하지만 그들은 나를 따르지 않는다.) 나는 그가 어떻게 그 많은 전쟁을 겪고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면서도 굳건히 설 수 있었을지 생각한다. 그의 주변에는 넘치도록 많은, 훌륭하고 지혜롭고 탁월하거나 삶의 모범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 아주 좋은 성품의 아우가 있어서 그를 볼 때마다 내 자신을 더욱 살펴서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면서도 나를 존경하고 사랑해서 내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이라고 칭찬한 루키우스는 고대 기록에 의하면 잘한 일이 하나도 없는 위인이었고, “나의 자녀들이 지능 면에서나 육체적으로나 아무 문제가 없는”이라고 했던 그의 14명의 자녀들 중 그의 임종까지 살아있었던 자식은 코모두스 한 명이었으며 그 자식은 폭정을 일삼다가 암살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오만해 보였던 아폴로니오스에게서 그는 내면의 자유, 확고한 결심, 열정과 여유를 본받았다. 


    자연의 본성에 대한 그의 열정과 헌신이. “매 순간마다 로마인답게, 그리고 남자답게, 꾸밈없는 당당함과 동포애와 독립심과 정의감을 가지고서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사심 없이 완수하고, 다른 잡념들은 모두 다 날려버려라.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마치 그 일이 이 땅에서 네가 하는 마지막 일인 것처럼 행하고, 네가 의도적으로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너의 감정에 이끌려서 제멋대로 행하지 않으며, 위선과 이기심과 네게 주어진 운명에 대한 불만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너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다짐이, 한편으로 감히 애처롭기까지 하여, 그가 나와 같은 한낱 민생인가 해서 그에게 헌신적인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솟는다. 그가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내 어머니께 듣고 자란 말이 유익하고 가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명과 기술이 눈부시도록 발전해서 당신의 일기를 손바닥 만한 기계로 언제 어디서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인 게 틀림없는 ‘마음’만은 스스로 어떻게 하지 못해요.” 이런 말을 하다니, 친구는 나의 아둔함을 한심하다 여기겠지. 하지만 그에게 나의 생각이나 말은 다만 외부의 가치중립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내게 한 가지 해법을 알려준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더라도, 그 즉시 지체하지 않고 아주 정직하게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생각들을 하기 위해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 


    그가 살던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일하는 방식에는 변하지 않는 공통분모가 있는 듯하다. 그것이 그가 지금까지 명성을-그는 쓸모없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누리며 공감과 영감을 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어떤 사상이든지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우주의 본성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질책하고 격려한다. 역시 그는 황제이자 두 개의 천년이 지나도록 길이 남을 철학자다. 그가 쌓아 올린 정신의 숭고함은 높고 높아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한참 동안 넋을 놓고는 헤아릴 지경이다. 한숨이 새어 나와 돌아서는 내게 황제는 말한다. 모든 것은 자연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며, 우주의 거대한 계획 속에 있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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