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무용지물

좋은 삶을 위하여

네이버 지식인 우주신 '녹야' 선생을 보고 쓰다.

by 줄타기인생

우리가 나이가 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나는 항상 궁금하다. 지금은 취미생활도 다양하니 우리가 나이가 들면 다양한 노년 라이프가 펼쳐질까? 적어도 지금은 빈곤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아보이지 않는가. 이런 주제로 월요일에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지금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됐을 때는 어떤 점이 달라질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부터, 현재 노인 생활의 비참함, 그리고 얼마전 내가 감명깊게 읽은 시사인 기사를 인용하며 우리는 노인이 분명 얼마 전까지 노동자로서 사회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는 점을 종종 잊는다는 이야기 등을 재잘거렸다.

그러다 문득, 나와 친구는 얼마전 인터넷에서 숙취 해소법을 검색하다가 찾은 한 네이버 지식인 답변을 떠올렸다. 자신을 당뇨 환자라고 밝힌 어떤 이가 숙취 해소에 대한 질문을 올렸는데, 여기에 대해 '녹야'라는 아이디를 가진 노인 한분이 숙취 해소에 대한 짧고 강렬한 답변을 단 뒤 (당뇨환자 특히나 여자가 숙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일은 자살행위에 버금간다 할 수 있습니다) 답변 마지막에 '나는 치과의사이고 당뇨를 30년째 관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자부심 가득한 코멘트를 달아놓은 것이다. 그 자부심이 너무 인상적이었지만, 우리는 그가 그냥 인터넷에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댓글러인줄 알았는데..다시 찾아보니 네이버 지식인 우주신이 아닌가! (네이버 지식인 답변자 레벨은 절대신이 최고고 그 아래가 우주신, 그 아래가 태양신인 것 같다)


이 분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무려 1935년생이다. 그 말인 즉슨, 그는 해방될때 10살이었고, 한국전쟁때는 15살이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작성하신 지식인 답변들을 스윽 보니 자신의 전문분야인 의료부터 지하철 노선도까지 안 다신 답변이 없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녹야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지식인에 질문을 올리기도 했다. 거기다가 이 양반 2010년도 경에 '핫바할배'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지신 적도 있고, 블로그에는 자신이 달았던 네이버 지식인 답변을 지금까지도 꾸준히 정리해서 올리고 있다. 대단하지 않은가.


실제로는 그런 활동들이 그의 단순한 습관, 버릇일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아무런 감흥이 없을 수도 있지만...나는 그 활동들을 보며 그가 분명 즐거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는 지식인에서 '조광현 할아버지께서 살아오시면서 겪으신 일 중 가장 기뻤던 일이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에 대해 '네이버 지식IN에서 우주신이 됐을 때', '내가 알려준 지식이 도움 될때 보람있다' 는 답변을 남긴 바 있다. 그리고 그에게 일종의 존경심 같은 것을 느꼈다. 물론 그가 유명해지게 된 '핫바할배'사건이라던가, 아내를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시켰고 시집살이를 시켰다는 둥의 이야기를 보면 옛날 사람이라는 사실. 어쩌면 좋은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1935년 일제강점기 시절 태어난 한 사람이 2016년에 네이버 지식인에서 온갖 답변을 다 해주며 남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고 있다니. 뭔가 SF소설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건강은 별로 좋지 않으시다고 하지만 이 정도면 꽤나 행복한 노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나이대의 사람들 중 꽤 교육받은 엘리트였기 때문에 노년에 지식인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가지게 됐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녹야 할아버지 처럼 이렇게까지 한가지를 생의 황혼기까지 집중해서 할 수 있고, 거기서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으면 그것을 꾸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한가지 취미를 15년 이상 해온 내 입장에서는 단언할 수 있다. 좋아하는 걸 찾기도 힘들거니와, 좋아하는 걸 꾸준히 좋아하는 것도 힘들다. 꾸준히 하려면 잘해야 한다. 잘하지 못하면 좋아하기 어렵다. 잘하지 않고도 좋아한다면, 거기에 정말 미쳐있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와 현실의 요구에 초탈한 상태인데 그 마음을 찾기가 쉽겠는가. 어느 쪽이 됐건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에도 절차탁마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비록 회사일 처럼 괴로움 속에서 지속되거나, 세상에 큰 효용을 가져다주는 일이 아닐지라도, 지식인에서 우주신의 자리에 오른 이러한 즐거움, 근면과 성실이야말로 우리가 존경할만하고 부러워할만한 일이 아닐까.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잊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기고, 놓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