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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Feb 23. 2016

헬조선이 아니라 헬월드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을 읽고 쓰다

 헬조선 바깥에 헤븐서양이 있을까? 미국가면 좀 나을까? 유럽 가면 그나마 좀 나을까? 호주는? 일본은? '헬조선'을 보고 있자면 버릴 수 없는 질문 중 하나다. 유럽은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고, 미국은 한국만큼 경쟁이 고도화되긴 하지만 그래도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한다. 일본은 한국만큼 막장은 아니다..등의 비교를 우리는 헬조선이라는 단어와 함께 끊임없이 듣는다. 파울 페르하에허라는 벨기에의 정신분석학자가 쓴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라는 책이 이 물음에  하나의 예시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우리 시대 정체성의 원인을 분석하는 책이다. 저자는 정체성이 단순히 유전이나 뇌과학을 통해서만 형성되는게 아니라,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현대인들의 정체성들을 '엔론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정체성'이라고 판단한다. 쉽게 말하자면, 적자생존을 지고의 선으로 삼는 정체성이란 얘기다. 하위 10%를 부적격자로 낙인찍어 퇴출시키는 엔론 시스템과 같이 능력주의의(니가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망상을 토대로 모든 것을 양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하여 승리만을 지고의 선으로 삼는 사회. 이런 사회는 결국 특정한 인간상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19세기 독일의 강압적인 사회분위기가 노이로제와 히스테리 인간들을 대량 생산했고, 한국에만 '홧병'이 있듯이, 지금의 고도경쟁사회에서는 부주의한 인간,배려심이 전혀 없는 인간,왕따,묻지마살인 등 이전의 공격성/심리장애와는 전혀 다른 증상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엽기적인 사건들과 망해가는 경제,정치를 보며 윤리가 실종됐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윤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윤리가 실종된 게 아니라, '적자생존'이 지금 시대의 윤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왜 유난히 싸이코같은 인간들이 많은지에 관해 하나의 적절한 분석 틀을 준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이 책이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앞서 말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얻게 된다. 헬조선이 아니라 헬월드다! 조선 바깥이라고 해서 헤븐 따위는 없다. 


 책에서 저자가 드는 유럽의 현실은 한국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대학은 기업화되어 숙고가 필요한 학문활동을 저버린지 오래다. 직장은 과도한 경쟁에 시달린 나머지 노동자간 연대감 상실과 생산성 저하로 시달린다. 노동자층 내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심해진다. 능력주의가 만연해 가난과 해고는 '노력하지 않은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정리해고는 막을 수 없는 자연적 법칙처럼 이야기된다. 유럽 최고의 성장률을 자랑하는 독일의 비정규직,워킹푸어는 나날이 늘어가는데, 독일 바깥의 유럽국가들은 독일의 노동개혁(하르츠 개혁)이 성공적이었다며 왜곡된 통계를 가져와 자국 노동시장을 개조하려 한다.


 더 이상 기회가 없는 청년층과 저소득층에 대해 우파는 '복지국가가 사람들을 오냐오냐 키워서 그렇다'며 혀를 차며 비판한다. 시민들은 계속해서 유입되는 이주노동자를 보며 공포와 불안을 느끼면서도 그들 때문에 지금의 물가가 유지된다고는 상상도 못한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아무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학생-교육자간의 상호관계는 붕괴됐고 왕따와 학교폭력이 만연한다.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환자의 치료보다는 환자가 일으키는 불편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약물시장은 급격히 발전하고 사회 부적응자는 늘어간다. 모두가 '1인 경영자'가 되길 강요받는다. 사람들은 냉소에 젖어서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니 내 할일이나 하자' 라며 산다. 저자가 볼 때 이런 모든 상황은 지난 시대의 복합적 산물이다.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거치며 변화된 정체성, 2차대전 이후의 탈권위, 경제시스템의 급속한 변화...한국은 그야말로 이런 모든 변화의 최전선에 서있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이야말로 모든 세계의 미래이며 지옥 중 가장 깊은 층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유럽은 더이상 의미가 없을까? 우리와는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끊임없이 들여오고,공부해서 적합한 방식을 찾아내는 일. 그리고 본받을 만한 점들을 본받는 일은 분명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서구사회가 이뤄낸 성과가 지금 무너지고 있더라도 우리가 갖지 못한 소중한 가치들이란 사실도 틀림없다. 그러나 서구 사회가 우리가 도달하게 될 미래인 것처럼 말하는 일, 우리가 갖지 못한 온갖 좋은 점을 다 가지고 있는 듯 말하는 일은 곧 지적 파산에 이르게 될 것이다. 유럽은 복지가 좋고, 인간이 존중받는다더라-라는 말은 곧 유럽도 한국처럼 복지 줄이고 인간이 개차반처럼 취급 당한다더라-로 곧 반박당할테니 말이다. 매드맥스의 결론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가 찾아갈 녹색의 땅 따위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유럽 또한 한국의 모습이 될 것이다. 낡은 것은 수명이 다했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았고, 모범을 삼을만한 사례들조차 위태로운 것이다. 저자가 개인의 각성과 개인 내부에서의 실천을 이야기하듯, 한국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한국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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