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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욱 Jan 20. 2024

전화와 콜미팅

하나의 몸짓, 그예 꽃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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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부터 다시 배우고 있어."


14년간 잘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옮긴 새 직장에 잘 적응하고 있냐는 이전 동료들의 안부인사에 나는 예전에 좋아했던 예능프로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장난처럼 대답했지만 그건 나름 뼈 있는 농담이었다. 남아있는 연차와 휴가를 소진할 여유도 없이 맡았던 대형 프로젝트를 최대한 마무리하고 덜컥 다른 회사로 출근하니 그제야 오즈로 떨어진 도로시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된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낯선 공간과 바뀐 조직문화 그리고 처음 접해보는 업무방식. 무엇하나 새로 펼친 공책처럼 신선하지 않은 게 없으니 하루하루 출근은 자의적 타의적 배움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최근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움은 관점의 전환이다.  관점, 사전적 의미로는 사물을 관찰하거나 고찰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방향이나 생각하는 입장이란 뜻인데 어쩌면 이 단어는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무형의 에너지와 가능성'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단적인 예가 전화와 콜미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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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간 회사를 다니며 숨 쉬듯이, 밥먹듯이 매일 자연스럽게 하는 게 거래 업체와의 전화 통화였다. 그런데 그 전화 통화에 콜미팅이란 예쁜 이름을 지어주니 놀랍게도 나도 바뀌고 통화도 바뀌었다. 


"하던 전화 끊고 얼른 회의 들어와요."

"진행하던 콜미팅 끝내고 얼른 회의 참석하세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분명 같은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문장인데 미묘하게 다르다. 상사가 부하직원이 하고 있는 통화를 그냥 전화로 보느냐, 콜미팅으로 보느냐에 따라 통화의 태도와 사용하는 어휘, 내용이 사뭇 달라진다. 가급적 사담을 줄이고 업무적인 용건에 더 집중해서 대화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건 미팅이니까. 그리고 저 문장을 말한 사람이 지금 나의 행위를 업무로서 존중해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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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미팅 대신 전화라는 단어를 쓰면 그날 점심에 팀 동료들에게 커피를 사야 되는 그런 룰이 있는 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통화를 콜미팅이라고 굳이 한 음절을 더 붙여서 말할 필요는 없다. 전화라는 단어도 사용하지만, 그 와중에 콜미팅도 같이 존재하니 놀랍게도 사무실에 앉아있던 나의 관점이 달라진다. 말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무한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면 내 자식에게 사용하는 어휘도 신경 쓰게 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낙서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작품이라고 이름 지어줄 것인가. 그저 하나의 몸짓으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꽃이 되게 이끌어 줄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와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기에.



24.01.20 토요일_베란다에 크고 예쁘게 핀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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