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E

26.04.11

by 이동욱

1.

믿기지 않지만 벌써 7년이란 시간이 지났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인천으로 향하는 경인고속도로 위에서 아내에게 그가 예전에 부른 드라마 OST인 「안녕 사랑아」 와 「It’s You」 를 들려주며 물었다.


“만약 박효신이 오늘 콘서트에서 갑자기 이런 노래를 부르면 어떨 것 같아?”


곡을 들어본 아내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답했다.


”여전히 멜로디는 참 좋은데 왠지 마음에 와닿지 않네.”


2010년대 초반에 발매되었던 그 두 곡을 들은 뒤, 지난주에 공개된 「A & E」 EP를 바로 이어 들었는데 귀로 가사를 읽으며 지난 10여 년의 세월 동안 그의 음악이 얼마나 세련되게 변화했는지 체감됐다.


나는 촌스럽게도 그걸 세련되다 적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고등학생의 나이로 데뷔해 26년간 활동한 최정상의 아티스트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소중한 일상의 삶과 그 시간 속에 존재하는 관계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물이라 읽는 게 맞을 것이다.


7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날 또한 나는 어느 차력사의 시범을 보러 가는 길이 아니었기에, 그가 대표곡을 부를 때 후렴구에서 음이탈이 나느냐 안 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아티스트가 노래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고, 건네받은 그 메시지를 통해 내가 어떤 위로를 받고 일상을 살아가는지 중요한 나이가 되었다.


인정보다는 이해를 구하는 그런 나이.

내가 이번 A & E 콘서트를 기대하는 이유일 것이다.



2.

현장에 들어가 무대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그의 세계관에 곡선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문학경기장의 지붕 곡선은 한국 전통건축의 처마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직선적 박스형 스타디움이 아니라, 위로 가볍게 들리는 선의 흐름을 만들어서 거대한 건물인데도 덜 둔중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만약 이날 스테이지의 거대한 와이드 스크린과 무대 중앙의 A자 구조물이 직각과 직선의 언어로 구성되었다면 주변을 둘러싼 온화한 경기장 지붕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것처럼 보였을 텐데 곡선을 활용해 디자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관객석을 감싸는 아늑한 느낌이 만들어졌다. 반면, 이날 현장의 대부분의 직선은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하늘을 향해 사위로 쏘아지는 빛기둥으로 그려졌는데, 나는 그 빛들이 땅에 단단히 뿌리내린 그의 마음과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는 의지를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의 세상에 색이 더 많아진 것도 참 마음에 든다. 세월이 지나며 점점 입술색이 옅어짐을 보며 속상해지는 마당에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구현하는 세상이라도 색이 풍부해지고 선명해지는 것이 반갑다. 미발표곡인 「Alice」 무대에서 하늘로 터져 나오는 색색깔의 컨페티를 보며 잠시나마 회색 현실에서 벗어나 이렇게 컬러풀한 세상 속에서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행복하고 감사했다.


중간에 송출된 고해성사 영상이 조금 과했다 이야기하는 주변인도 있었는데, 호오가 갈릴 수 있겠으나,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과 실천을 전한다면 설령 나의 종교와 다르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금처럼 필요 없는 전쟁이 발발하고 심지어 그 전쟁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세상 속에서 누군가는 자본주의와 혐오, 섹스와 한탕주의가 아닌 그런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이번 콘서트에서 「Prayer」 무대의 조명 연출이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아티스트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제외한 다른 조명을 최소화하니 배경 스크린의 스테인글라스 그래픽과 무대 중앙의 A 구조물의 철제 프레임이 오버랩되면서 폐허가 된 어느 성당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미지가 연상되어 순식간에 곡 분위기와 어울리는 프레임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3.

눈빛은 여전히 10대 소년 같지만, 왠지 세상을 향한 배려와 여유가 생겼달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추억은 사랑을 닮아」 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에 대한 약간의 자조적인 솔직한 농담도 참 좋았다. 만약 그가 육체도 목소리도 전혀 늙지 않고 나는 예전 그대로라고 말했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나도 아이돌 후배들처럼 한 번 해보고 싶었다며 카메라에 뽀뽀를 할 때, 그리고 뽀뽀를 해달라고 할 때 나는 그가 한 명의 인간이자 아티스트로서 꽤나 솔직한 성장을 이뤘다고 느꼈다.


한 회사의 대표로서 소속 아티스트인 샘 김을 다독이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함께 계단을 오를 때 시야가 어두웠는지 샘 김이 발을 살짝 헛디딘 것 같았는데, 마이크를 통해 “어,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후배이자 직원을 살피는 리더의 모습이 연상되어 평범한 회사원인 나는 괜히 흐뭇했다. 이날 샘 김은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그 덕분에 무너진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어디 샘 김 한 명뿐일까. 내가 너를 A라 부르고 너는 나를 E라 불러준다는 알 듯 말 듯 울리는 가사에 이제야 내 마음에도 벚꽃이 피고 비로소 진정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4.

이번 콘서트가 열린 인천문학경기장은 한국적인 선의 미학을 살리는 것 외에도 항구도시인 인천의 개성을 반영해 경기장 지붕과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바다를 가르는 범선의 돛과 돛대로 읽히도록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준비를 마치고 새로운 배를 만들어 항해를 시작하는 그의 진수식을 축하하기 위해 이보다 적절한 장소가 있을까.


공연의 마지막 곡인 「Stellar Night」 을 듣고 있자니 별이 가득한 밤의 바다로 출항하는 배가 떠오른다. 허비그하로호의 선장이자 우리의 영원한 대장인 그가 좋은 동료 선원들과 함께 더 넓은 세상으로 멀리 오래 항해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못다 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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