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일본인문기행

한국문학평론가의 발길이 닿은 도쿄와 일본 구석구석

by 다자이

여행 좋아하세요? 일본에 가본 적 있으신지요?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집계한 수치에 따르면 지난해 2025년에 일본을 찾은 한국인이 946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는 이제 한국인에게 익숙한 여행지라서 색다른 일본여행을 꿈꾸는 분들은 일본 소도시를 알아보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저자가 일본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남겨 엮은 ‘일본인문기행’입니다. 기행문 모음집인데요. 한 꼭지의 분량이 원고지 13매 정도로 그리 길지 않습니다. 칼럼 하나 읽듯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다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틈틈이 한 편씩 읽어도 좋겠네요.


사진도 풍부하게 실렸습니다. 저자가 찍은 것을 포함해 150장 넘게 수록되어 있어요. 사진 덕에 일단 책을 펼치면 눈이 즐겁습니다. 기행문을 읽다가, 짝지어진 사진을 보면 그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제목의 ‘기행’ 앞에 붙은 ‘인문’이라는 용어에도 눈길이 갑니다. 글쓴이 이경재는 숭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문학평론가입니다. 이경재 교수는 일본에 머물며 “역사를 말하고, 문학을 논하고, 미술을 평”하는 과정에서 산문을 썼는데요. 이렇게 일본 문화를 탐구하는 과정이 자신의 본업인 평론 활동 그 자체로 여겨지기도 했답니다.


“문학평론이 미지의 텍스트를 읽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여 세상에 내놓는 것이라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분석(해석)하는 일이야말로 진정 비평에 가까운 일”이었다고도 말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놀러 가기 좋은 장소나 맛집 정보를 제공하는 서적이 아닙니다. 역사, 문학, 문화에 초점을 맞춰 써 내려간 여정의 기록입니다.



이경재 교수는 2024년 1월부터 일본 기행 산문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학회 발표, 동료 학자와 여행 등의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글을 남겼습니다. 2024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는 도쿄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1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에는 주로 도쿄를 답사했습니다.


이 책 ‘일본인문기행’은 제1부와 제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전체 분량의 40%를 차지하는 1부는 도쿄를 배경으로 한 열여섯 편의 산문입니다. 2부는 도쿄 이외의 지역인 홋카이도, 오키나와, 마쓰야마, 니가타, 히로시마, 효고, 나라, 시모다, 가와사키, 오사카, 교토, 치바, 가마쿠라가 무대입니다. 서른한 편의 글로 이곳들을 다루었습니다.



이경재 교수가 소개한 장소 가운데 저도 다녀온 곳이 있어서 반가웠어요.


<책으로 만나는 일본> 제2화에서 언급했던 진보초 헌책방 거리를 이 교수는 산문으로 세 편이나 할애해서 썼습니다.


그는 ‘간다헌책마츠리’에서 대중교양잡지 ‘모던일본’ 1939년 조선판을 얻고는 보물 같은 헌책이라며 이 문헌을 분석했는데요. 평론가, (한)국문학자라는 ‘본업에 진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재 문인 이상이 도쿄제대 부속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진보초에 머물렀다는 사실도 저는 이 교수 덕에 알 수 있었네요.


야스쿠니 신사, 교토 귀무덤,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 또한 저도 가보았는데요. 사실 이곳은 인기 있는 여행장소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관광보다는 역사탐방 목적으로 갈 만한 곳이죠.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 ©다자이

일본고교야구의 성지로 불리는 고시엔 구장. 이곳에서 저는 유료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 구장 안까지 둘러보았습니다. 3루 쪽 불펜과 더그 아웃도 둘러보고 그 유명한 ‘내야의 검은흙’도 가까이서 봤습니다.

고시엔 구장, ©다자이


못 가본 곳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 곳도 있습니다.


이즈반도 남부에 위치한 시모다는 조그만 항구도시인데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소설 ‘이즈의 무희’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 소설을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하지만 이경재 교수가 기행문에서 줄거리를 친철하게 알려주었어요. 시모다항에 소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고 하네요.


가까이에 미국 페리 제독의 동상도 있는데요. 이곳이 “1854년 미일 화친 조약이 조인된 곳이며, 하코다테와 함께 일본에서 최초로 개항된 곳”이라고 합니다.


가마쿠라는 이 교수가 네 편에 걸쳐서 소개했습니다.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본만화를 한 편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말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이 교수의 말을 들으면 다들 눈치채실 겁니다. 가마쿠라 바로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곳이죠.


오버투어리즘에 시달리기도 했다지만,

저도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오프닝에서 강백호와 채소연이 마주 보는 장면으로 유명한 가마쿠라고교 근처의 철길 건널목”에서 인증샷을 찍고 싶어요.


이 책에 언급되지는 않지만 가마쿠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본 평화롭고 잔잔한 장소들을 거닐어 보고 싶습니다.



이경재 교수는 ‘일본인문기행’에서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를 곁들이는데요. 그가 소개한 작품들이 어찌나 매력이 있던지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참지 못하고 그것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도쿄의 지역성이 매우 풍부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도쿄의 동쪽에 살면서, 도쿄 서쪽의 시부야구로 출근해 화장실 청소를 하며 지”내는 주인공의 일상을 영화가 “지루할 정도로 차분하고 정밀하게” 따라갑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히라야마의 일상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바로 그 평범의 지극함에 있습니다. 히라야마는 우리가 별다른 의식도 없이 행하는 일상의 그 모든 일들에, 마치 엄숙한 의식을 치르듯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저는 이 책을 완독하기 전, 도중에 영화를 찾아보았습니다.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하루는 대도시로 출근하고 외곽의 거주지로 퇴근하는 저의 일상과 엇비슷했습니다. 저는 별것 아닌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최초의 근대 여성작가로 꼽히는 히구치 이치요의 단편소설 ‘키 재기(타케쿠라베)’”야말로 제가 찾은 보물이었습니다. “어느 나라에나 국민들이 애독하는 첫사랑 소설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이 “일본의 국민 첫사랑 소설”이라고 하기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았습니다.


용화사 주지의 아들 신뇨, 그는 승려의 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요시와라에서 잘 나가는 유녀를 언니로 둔 미도리, 그녀 역시 유녀가 될 몸입니다. 열네 살, 열다섯 살 언저리의 이 아이들 사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애틋했고 여운을 남겼습니다. 1896년작이라는 게 놀라웠어요. 전혀 낡지 않은 단편소설이었습니다.



재일 한인 3세인 이용덕이 쓴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라는 장편소설은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인상에 끌렸습니다.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는데 어서 빨리 읽고 싶네요.


“배외주의자들이 꿈꾸던 재일 한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하게 실현된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살아나가는 다양한 재일 한인들의 분투가 이 작품의 기본 서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경재 교수처럼 인간, 역사, 문화를 중심에 두고 일본 구석구석을 누비는 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져다줄까요.


우선, 일본을 두고 쉽게 단정 지어 말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은 이러이러한 나라야’, ‘일본인은 이러이러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야’ 하고 쉽게 말하곤 합니다. 이경재 교수의 말을 들어보시죠.


“...제 스스로 깨닫게 된 사실들이 있습니다. 일본은 단선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일본 역시 우리처럼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인구 약 1억 3천만의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를 하나의 명제나 단순한 이분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년은 ‘일본은 검다’고 규정하면, 어딘가에서는 ‘일본은 희다’라는 명제가 튀어나오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일본이 오히려 나, 우리, 한국을 이해하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본을 답사하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총·균·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집에서 자란 쌍둥이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겼는데요.

양국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습니다. 오늘날은 최신의 과학적 증거를 통해서도 이러한 유전적·문화적 유사성이 증명되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일본을 이해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넓고 깊게 보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 속으로 파고 들어가 둘러보기 위해 ‘일본인문기행’을 해야겠습니다.


달력을 넘겨 휴가일정을 확인해 봅니다.

항공권 가격도 비교해 봅니다.

호텔방도 찾아보고요.

환율은 100엔당 944원대군요.


아니, 지금 이렇게 할 게 아니죠.

방구석에서도 일본인문기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요.

일본여행은 잠시 접어두고 다음 달에 소개할 책을 찾아서 읽어야겠습니다. /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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