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를 이루다
2월 22일 일요일, 그녀를 만났습니다.
살아생전 그 사람을 실제로 한번 보는 게 제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였죠.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녀가 누구냐 하면
바로 ‘영원의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 데뷔 후 45년 만에 내한 공연을 했습니다.
저는 지난해 11월 말에 티켓팅을 하고 공연 날짜만을 기다렸는데요.
미리 말해두지만 저는 뉴지오지(뉴진스를 좋아하는 아저씨 팬)가 아닙니다.
하니 양이 도쿄돔에서 커버곡을 부르기 훨씬 전부터 제 휴대전화 컬러링은 마츠다 세이코의 데뷔곡 ‘푸른 산호초’였습니다.
4년 전 마츠다 세이코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요. 푸른 산호초로 덕통사고를 당했어요.
조금 공부했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던 일본어를 각잡고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이코 노래 들으며, 동사변화쯤부터 일본어 공부를 재개해서 한 단계씩 올려가다가 JLPT N1도 땄습니다.
그녀는 제 일본어 공부의 어머니 같은 존재예요.
일본어 실력을 쌓아, 마츠다 세이코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싶었어요.
BTS 노래를 한국어로 따라 부르고 BTS 멤버들이 출연하는 콘텐츠를 감상하는 외국 아미(ARMY)들의 마음을 저도 알겠더군요.
공연장인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 도착하여 주변을 구경했습니다.
일본 팬클럽 분들도 많았어요. 멋진 옷에 세이코의 이름과 곡명을 새긴 일본 팬이 있어서 같이 사진 찍자고 부탁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자그마한 기념품을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팬도 있었습니다.
‘세이코달콤’으로 튜닝한 ‘새콤달콤’과 증명사진을 저도 받았어요.
어떠한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닐 텐데,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며 베푸는 분들의 정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감사한 마음과 숙연한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에 맞춰 아레나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좌석에 앉아 공연이 시작하길 기다렸죠.
제가 앉은 자리는 1층 앞쪽 블록. 예상보다 무대가 가까이, 잘 보였습니다.
어느 순간 일본에서 온 ‘세이코 친위대’를 중심으로 팬들이 그녀의 이름을 외쳐댔습니다. 공연 시작이 임박한 것이었죠. 외침이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언제 시작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려고 할 때, 초록 레이저가 무대 주변을 화려하게 물들였습니다.
무대의 막이 열리며 첫곡으로 익숙한 음이 울렸습니다.
바로 푸른 산호초!
환히 빛나는 무대 위로 프릴 드레스를 입은 마츠다 세이코가 등장했습니다.
영상으로만 봐왔던 그녀가 저와 같은 공간에, 제 눈앞에 있었습니다.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핑 돌았는데요.
나중에 다른 공연 후기를 보니 이때 울었다는 팬 분들이 많더라고요.
공연 내내 명곡이 이어질 때마다 제가 보았던 세이코의 과거 영상들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후렴을 따라 부르고 추임새를 넣었어요.
시공간을 건너와 제 앞에 서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 맞지?’하고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한국어 인사를 열심히 준비한 세이코가 고마웠습니다. 한두 마디만 선보인 게 아니라 본인의 소감을 꽤 길게 말했는데요.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갈아가며 공연 곡 하나하나를 소개하기도 했어요.
비빔밥과 순두부찌개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고백도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 두 음식을 예사로 볼 것 같지 않네요.
세션과 댄서 분들도 인사할 때 각자 한마디씩 한국어로 말해주어서 기뻤어요. 세이코가 시킨 걸까요?
예정된 두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더군요.
노래도 좋았지만 여러 가지로 즐겁고 알찬 공연이었습니다.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계속 남아 여러 후기와 사진을 찾아보며 마음을 달랬어요.
마츠다 세이코를 책으로 만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는 ‘1980年の松田聖子’ (石田伸也 저, 德間書店 출간)와 ‘松田聖子の誕生’ (若松宗雄 저, 新潮社 출간)을 읽었는데요. 그녀의 데뷔 과정, 활동 중 있었던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하네다 공항 활주로 가창 사건의 비화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1980년, 세이코가 앞선 일정을 소화하고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 스케줄을 위해 비행기로 이동했는데요.
하네다 공항에 착륙한 직후 곧바로 내려 활주로에서 푸른 산호초를 불렀습니다.
실시간으로 일본 전국에 중계되었죠. 레전드로 남은 사건입니다.
마츠다 세이코를 다시 한국에서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음 내한 일정이 불투명하다면 제가 일본 공연장으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팬이긴 하지만 일본 공연을 보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는데요. 열성적인 분들은 이미 일본 내 투어나 디너쇼에 다녀오기도 했더라고요. 저도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보려 합니다.
아~ 와따시노 코이와~ 미나미노~ /번외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