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나의 직장이우다 - 양윤열 할머니
- 할머니가 맨날 불렀던 노래 고라주카?
할머니를 도와 밭에서 비료를 주고 있었다. 믹스 커피를 마시면서 쉬고 있는데 대뜸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노래 열정을 익히 알고 있다. 어렸을 때 벽에 노래 가사를 붙여 놓고는 흥얼흥얼거리면서 부엌일을 했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 무슨 노랜데? 콩밭 매는 아낙네야~ 그 노래야?
- 아니여~ 이거 할머니가 혼자 있을 때만 부른 노래라. 니는 들어본 적 어실꺼여.
- 무슨 노랜데? 불러봐~
[물로 빙빙 돌아진 섬에
삼시 굶엉 물질허영
혼푼 두푼 벌어 노니
낭군님 술상에 다 들어갔네]
우리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술을 많이, 정말 많이 매일 마시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 대신 소주를 머그잔에 비워서 마실 만큼. 그렇게 술을 마셔야만 했던 할아버지의 속은 아무도 모른다. 열정을 가지고 공부했던 일본어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느껴서 생긴 상실감인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좌절감 때문인지는. 아무튼 젊은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은 알코올은 20대에 간경화를 가지고 왔고, 결혼을 할 때쯤엔 조금만 고된 일을 해도 쓰러질 정도로 힘들어했다. 할머니는 기꺼이 가녀장에서 가모장으로의 전환을 했다.
당시에 해녀들에게는 해외 출장의 기회가 있었는데 해외라 함은 타 지역으로의 장기 출장 물질이었다. 우선 육지(제주도민들은 제주도 외를 육지라고 부른다.)의 선주가 바다를 산다. 산다는 개념이 정확하게는 할머니에게 들을 수 없었으나 소라를 양식할 바다를 말하는 듯했다. 그 후에 선주가 해녀를 모집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 부탁을 받은 해녀가 대표가 되어 3월부터 추석 전 9월까지 육지에서 머무르며 물질을 할 해녀들을 모집한다. 그 해녀들이 채취한 것을 팔아 선주와 해녀가 나눠 갖는다. 선주 입장에서는 그물로 잡기 힘든 소라나 전복을 따 와 주고 해녀들은 겨울 내내 제주에서 수확하고 제주 바당의 해산물들도 자라는 동안 수확물이 더 많은 육지로 이동하여 채취를 하여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 서로 이득인 셈이다. 거기에 대표 해녀를 하게 되면 돈을 조금 더 얹어서 받게 되는데 젊고 한창 물오른 물질 실력을 갖춘 할머니는 더 얹어준 다는 말에 우리 아빠를 낳은 다음 해부터 대표 해녀가 되어서 3월에서 9월이면 매 해 육지로 물질을 하러 갔다.
- 할머니 진짜 힘들었겠다.
- 무신 거 힘들어? 돈 많이 준댄하믄 하나도 안 힘들어라. 경 정직하게 버난 남편이 술마시멍 돈 하나도 안 보태줘도 영 집도 나가 번 돈으로 지스고 아빠영 고모영 삼촌이영 대학까지 다 보내져셰. 너네 집도 사주곡.지금도 물질 허난 제사상에 구쟁기영 그 비싼 성게영 다 올려지는거라.
할머니는 2살, 6살 터울로 아들, 딸, 아들 삼 남매를 낳았다. 첫 째인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결혼한 이듬해 5월, 음력으로 석가탄신일에 태어났다. 마치 할머니가 믿는 부처님처럼 눈도 크고 잘생긴 아기였다고 했다.
- 느네 아방은 눈도 이만씩(달걀 쥔 듯한 손 모양을 한 뒤 엄지와 검지로 크기를 표현했다.) 학고 코도 크고 잘도 잘생기댄 해나서. 애기 낳잰 하난 그 해엔 육지 못갔져. 얼마나 아쉬운지 다음 해에는 시어멍신디 느네 아빠 맡겨놩 바로 가켄행 갔주.
- 그럼 거기서 밥은 어떵행 먹언?
- 원래는 해녀들이 돈 모앙 주믄 선주 어멍이 밥 해주매. 겐디 그 돈도 아까운 거라. 해녀들이 묵는 숙소가 선주 집 바깥터레 이서나신디 가만보난 선주 집 옆에 노는 밭이 이서? 나가 경허난 이거 밭 써도 되쿠광? 물었주. 거기에 고추영 양파영 상추영 심엉 그걸로 밥행 먹었져. 선주 어멍이 놀라 자빠져. 영 해서 먹는 해녀는 없었댄하멍.
지독하게 벌었다. 밥 먹는 돈도 아까워서 지친 몸을 이끌고 물질하고 와서는 밭에 가서 검질을 매며 채소들을 길러서 밥과 된장에 찍어먹었다고 했다.
- 체력이 돼?? 물질 엄청 힘든데 그렇게 6개월 하면 쓰러질 거 닮은데.
- 선주가 가끔씩 잡은 구쟁기(소라)를 챙겨주매. 경허믄 이제 해녀들끼리 같이 나눵 쪄먹고 해났져. 게믄 또 힘낭 물질하고.
젖먹이 아이를 떼어놓고 와서 악착같이 번 돈은 고스란히 남편의 병원비로 들어갔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정직하게 번 돈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바다라는 든든한 직장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신이 망하게 하지 않는 한 망할 수 없는 직장이라고 성실하기만 하면 일한 만큼 가져갈 수 있는 정직한 직장이라고도 했다.
할머니 말대로 그 직장은 정년 퇴직도 없다. 80대 중후반인 우리 할머니는 회사에서 출근해달라고 하는 날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을 한다. 남아서 초과근무를 하는 날은 내가 좋아하는 보말도 따와서 무쳐서 주곤 한다. 그런데 요즘 정직한 회사에 자꾸만 배신을 당한다고 했다.
- 겐디 요즘은 막 해녀들 일도 못하게 햄쪄. 더 해질거 닮은디 못잡게 허여. 해녀들보다 더 좋은 기계들이 이시난 그걸로 잡암신고라. 일하고 싶어도 못햄쪄. 경허난 나가 아빠신디 자꾸 밭 사랜, 귤 허랜 곧는거네. 바다에 못가난 돈을 벌어져? 귤 농사라도 지서사주.
할머니의 명예 퇴직을 빙자한 권고 사직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할머니도 직감하고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