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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Feb 25. 2019

S에게 쓰는 편지

전해지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쓴다.


 내가 중학교 때 수련회 가서 사회 본 적이 있거든. 중학교 2학년인가 그랬을 거야. 무대 위에 서면 조명이 너무 환해서 객석이 하얗게 보여. 마치 아무도 없는 벽 앞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기분이 들어. 그러면 덜 긴장될 것 같지만, 사실 더 무섭고 떨려. 아무도 없어 보이지만, 누군가 분명 있다는 걸 아니까. 그 날도 그렇게 망친 날들 중 하나였을거야.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 행사가 끝나고 친구들이 달래줬는데, 나 진짜 쪽팔려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수련회 다녀와서였을 거야. 친구가 옆반 애가 너 좋다는데 휴대폰 번호 알려줘도 되냐고 물었어. 진짜 생전 처음 듣는 이름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걔 말로는 그 넓지도 않은 무대에서 당황하던 내가 좋았대. 지금의 나에겐 꽤나 낭만적인 말인데, 그때는 진짜 싫었어. 치부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나 되니? 그 옆반 애가 너야. 기억나? 친구들은 그 상황을 놀려댔고, 너 별로라고 악담하기도 했고, 나도 그런 말들에 끄덕이면서 동조했어.


 너는 날 계속 좋아했고, 나는 너를 계속 싫어했어.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네가 좋아해서. 그래서 싫었어. 내 기억에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내 생일날 집 앞에 네가 케이크 두고 갔던 것 같아. 다음날이면 친구들한테 말하면서 깔깔 웃었어. 얘 또 케이크 놓고 갔다고, 싫다는데 왜 이러냐고. 독서실이 새벽 2시까지 했는데, 맨날 네가 독서실 앞에서 기다리다 집에 데려다 주기도 했었잖아. 그리고 친구들한테는 말 안 했는데, 너랑 키스한 거 기억나. 엄청 놀랐었어. 그리고 집에 가서 울었어. 너무 좋아서. 싫지가 않고 좋아서. 그래서 울었어. 10년이 지났는데 그때 공기도 기억나. 망설이던 손가락이. 두 뼘 넘게 차이 나던 키 큰 네가. 빳빳하던 교복 셔츠 깃이. 옷에서 나던 섬유유연제 향기가.


 너 군대에 있을 때, 나한테 한번 전화했었잖아. 그 때 나 남자 친구 있었거든. 니 전화 한번 받고는 2년 내내 쭉 안 받았던 게 기억나. 열다섯부터 그때까지, 쭉 나는 나빴어. 그런 다정한 마음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몰랐어. 가끔은 모른 척하고, 싫은 척하고, 또 진심을 비웃으면서 상처를 주곤 했어. 그게 적당한 반응이라고 그땐 생각했었다. 너를 낮추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던 걸까? 아니면 또래들의 놀림에서 자유롭고 싶던 걸까? 스물여덟의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돼. 미안한 기억 뿐이네.


 요즘은 어떻게 지내? 여전히 그렇게 다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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