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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Feb 16. 2024

인도 사무실에 무작정 찾아가기

두드려라, 열릴지니.

  인도에 떨어진 첫날. 아빠는 하루쯤 자는 작은 방은 저렴한 곳을 구했다며 안내했다. 큰 기대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순순히 따라갔던 우리는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에어컨 공사로 숙소에서 잘 수 없다는 당일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분명 아빠에게는 예약해 줘서 고마워! 그 날 보자! 하는 해맑은 이메일도 남겨 두었던 숙소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우리는 어쩌지 하고 당황하고야 말았다. 물론 그 숙소에서 다른 숙소를 소개해 주어서 길바닥에 나앉는 불상사는 없었지만서도 이게 인도구나, 와 이게 인도? 의 사이에서 어리둥절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타지마할의 입장권도 사정은 비슷했다. 점심을 먹기로 한 식당(운전기사 순일이 추천해 줬지만 영 그랬다)에서 간단하게 이것저것 먹으면서 우리는 사뭇 비장하게 타지마할의 야간개장 티켓을 가이드가 정말 구해다 줄까 하는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고고학 사무실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순진한 얼굴에 거절을 못하고 아빠 말이라면 껌뻑 죽는 순일이라고 해도 ‘인도’라는 이름이 붙은 공공기관이 더 정확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정신없을 무렵 누군가가 우리 테이블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키가 크고 수염이 긴 순일의 친구이자 가이드는 아빠 옆에 서서 우리를 보며 인도 고갯짓을 했다. 고개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흔드는데, 방향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갈린다고는 하지만… 쉽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냥 대충 때려 맞혀야 한다. 그리곤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큰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는 말했다.


“야간개장 티켓? 그거 엄청 경쟁률이 센 데 당연히 못 구했지. 대신 새벽 타지마할 보여줄게 그것도 정말 멋져.”


  아, 우리가 원한 건 그게 아닌데! 웃음기도 하나 없는 그는 내내 단호한 태도였다. 하루 전에 구할 수 있냐 물어보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고 (아빠는 이미 한참 전에 물어봤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보러 오는데 정말 구하기 힘든 티켓이라며(순일은 밥 먹으러 가면서도 무조건 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렇지, 일단 새벽 타지마할이 그렇게 멋지다고 강조하는 가이드의 말에 그래 그거라도 하는 마음으로 티켓 구매를 부탁했다. 


  그렇게 애매한 결론을 내린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려다가, 도저히 미련을 버릴 수 없어 결국 방향을 틀었다. 인도 고고학 사무실이라는 곳을 직접 찾아 가 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미 야간개장 티켓을 구할 수 없다는 걸 안 이후로는 가이드와 기사에 대한 신뢰는 저버린 지 오래였고, 가능하다면 타지마할 문지기에게라도 대체 어떻게 하면 야간개장을 볼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명 숙소로 간다고 했는데, 의문의 길 안내를 하는 아빠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순일을 뒤로하고, 아빠는 꿋꿋하게 구글지도를 살피며 고 스트레잇! 롸이트! 래프트! 를 연신 외쳤다. 그렇게 도착한 인도의 고고학 사무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건물을 향해 거침없이 걸었다. 막상 오자고 이야기해 놓고 입구에서 멈칫거리던 나와는 다르게 아빠는 단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한국에서도 성격이 급하단 소리를 듣는 사람이 하물며 인도에서는 오죽할까. 너무나 답답한 마음으로 매번 가슴을 치는 아빠에게 지금 이 상황은 당장 책임자라도 불러오라고 꼬장을 부릴 태세였다. 인도 현지인들이 즐비한, 외국인의 ㅇ도 찾아볼 없는 사무실에 거침없이 들어간 아빠는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외쳤다. 


  "타지마할!"


  그러자 그 사람은 알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우리를 안내했고 우린 순순히 따라 들어가서 에어컨이 있는 작은 방에 앉아있는 젊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비교적 젊고, 뭔가 최신의 정보를 알고 있을 법해 보이는 그 남자는 정말 그랬다. 다짜고짜 찾아온 우리를 보고선 당황한 듯하더니, 명확한 답변을 주기 시작했다.


  하나, 타지마할의 야간개장은 사전신청 후 제한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

  둘, 신청은 타지마할의 온라인 티켓 홈페이지에서 받는다.

  셋, 우리가 방문하기 한 달 여 전에 방법이 바뀌었다고 한다.

  넷, 직접 확인한 결과 모두 맞는 정보다.


  언제 어떻게 예매하는지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확실한 건 온라인에서 판매를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인도에서 무언가 정보를 얻으려면 무작정 찾아가야 한다는 것.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을 믿지 말아야 한다. 가이드던, 기사던, 누구든지 간에 믿지 말고 비교적 믿을만한 정보는 공적인 시설에 앉아있는(방에 에어컨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라는 걸 꼭 잊지 말기를.


  속이 시원해진 우리는 그제야 수긍하고 돌아왔다. 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사라지긴 했지만 확실하게 해결이 되었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모든 미련과 찜찜함을 해결한 우리는 흔쾌히 새벽의 타지마할 티켓을 구매했고, 숙소에서 일출의 타지마할을 기대하며 이른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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