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미학

뭘 눈치를 봐! 그게 그림이고, 그게 인생이지

로즈 와일리 전시

by 이음음
KakaoTalk_20201216_011008963.jpg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면,

커튼을 열고 전시장에 들어선 후

당황한 눈빛으로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 있다.



언뜻 보면 일러스트 같기도 하고, 만화 같기도 하며,

낙서 같은 그림 앞에서 물을지도 모른다.


'뭐야? 이게 그림이야?'


점잖고 말끔하게 정리된 그림을 본 게

마지막 미술관 경험이라면

이런 어색함과 당혹스러움을 씻어내는데

좀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로즈 와일리의 전시를 본 후 왠지모를

자유로움과 유쾌함이 마음에 조금씩 담긴다면,

당신은 발견한 것이다.

로즈 와일리의 매력을.


KakaoTalk_20201216_010850059_01.jpg


현대미술은 말한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작가가 주장하면 그것은 작품이다."

그래서 현대미술을 접하는 관객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껴야 할지 난감한 기분만 남긴 채

전시장 문을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전시장 첫 작품에서 느낀

당혹스럽고 어색했던 감정이,

"괜찮네. 재미있는데!"로 바뀌는 마술을 일으키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있다.

몇 분만에 사람의 마음을 바꾸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래서 훌륭한 작가의 좋은 작품은, 슬쩍 밀고 당기며

우리의 마음을 유연하게 만드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로즈 와일리 또한 이런 재능을 보여준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 7관으로 구성되어있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


로즈 와일리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

그녀는 영국이 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던 그때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1934년생이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그녀의 그림을 보기 위해

많은 20,30대 젊은층이 전시장을 찾는다.


세대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어

그녀의 작품은 어떻게

젊은 관객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을까?



전시장에 직접 가서 봐야 하는 작품들이 있다.

로즈 와일리의 매력적인 컬러를 확인하고 싶다면

전시장 방문을 추천한다.

유쾌하나 가볍지 않은 핑크와 민트.

파스텔 컬러에 둘러쌓인 자유분방한 붓의 움직임과

캔버스 곳곳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텍스트.


그녀를 그저 86세 할머니 작가로만 지칭한다면, 큰 실례.

그녀가 보여주는 작품은 어느 젊은 작가의 작품보다

젊고 발랄하다.


하지만, 단지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화풍만

캔퍼스에 가득했다면

관객의 시선을 끄는 힘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로즈 와일리는 현명했다.



작품 안에 현대인에게 익숙한 모티브를 담아 그림은 친숙하게 와 닿는다.


유명 감독의 영화와 영국 축구에 대한 그림.

(그녀가 그린 축구선수 손홍민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정원의 식물, 반려동물 등 우리 일상과 비슷한 이야기를

로즈 와일리만의 언어로 그려냈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신나게, 자유롭게

뛰노는 일상에 동참하다 보면

코로나로 답답하고 지루했던 우리의 일상도

조금은 가볍게, 유쾌하게 느껴진다.


축구선수 손홍민을 그린 그림


즐겁고, 자유롭고, 직관적이며 위트가 넘치는 그림.

관객에게 무엇을 해석하고 깨닫기를 바라지 않는 그림.

그래서 그녀의 전시는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만을 남긴다.

(모든 미술 작품이 얼굴에 인상 쓰며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해야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살랑거리는 봄옷을 입고 행복한 표정으로

자유롭게 춤추는 어린 소녀를 바라보는 순간처럼,

전시장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로즈 와일리의 그림에는 소녀가 많이 등장한다.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이다.


전시장에서 로즈 와일리가 주장하는 건 하나다.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이라고. 너무 심각하지 않기를.


그녀의 작업실을 보고 나면 작가로서,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철학이 좀 더 선명하게 들리는 듯 하다.


"뭘 눈치를 봐. 그냥 해봐. 자유롭게.

틀려도 되고, 여기저기 묻혀도 괜찮아."


작품을 그리며 그녀가 자신에게 속삭이던 목소리가

보는 이에게 들다.

그래서 관람객은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가 보다.



로즈 와일리의 작업실을 재현한 모습. 물감 묻은 신발 한짝도 있었다.


지치고 우울한 사람에게 어설픈 위로나

부담스러운 동기 부여는 금물이다.

코로나로 안그래도 힘든데 어설프고 부담스러운

언은 생략하는 걸로.

로즈 와일리의 작품과 삶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뭘 눈치를 봐. 그냥 해봐. 자유롭게.
틀려도 되고, 여기저기 묻혀도 괜찮아.
그게 그림이고.
그게 인생이야.



86세 할머니 화가가 들려주는 유쾌한 응원에

미간의 주름을 펴고

다시 웃어본다.



* 로즈 와일리 전시 *
2020.12.04~03.28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장 출구를 나오면 구매욕을 강하게 일으키는
로즈 와일리의 굿즈 상품들을 만난다.
지갑이 너무 크게 열리지 않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현대미술로 성경을 표현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