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서, 멈출 수 없는 진통제

한병철의 <고통없는 사회>

by 이음음

고통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한병철의 <고통 없는 사회>

시작은, 고통을 그린 그림이었다.

케테 콜비츠의 드로잉, 판화, 조각 작품들.


작품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다 보면

작품 보다 작품과 관련된 텍스트를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게 맞나? 싶으면 다시 작품을 들여다본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풍문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한병철 님이 수려한 문장에 의지해 고통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나니 케테의 작품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된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논문에 써야 하기에 일단 아껴두고)


한병철 님의 문장은

매번, 뻔한 생각의 틀을 깨고 이전과 다른 바람으로 불어온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사랑하지도 살지도 않은 것이다.
삶은 편안한 생존을 위해 희생된다.

-한병철의 <고통 없는 사회>, 51페이지-



문득 내가 이 책의 독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고통의 한복판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태라면

이런 문장에 책을 바로 덮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한병철 님이 그렇게 문제시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성을 다해 고급스러운 문장으로 까면, 덜 기분 나쁘다)


고통의 느낌이 올 것 같으면 나는 자주 다량의 진통제를 복용한다.

요즘 진통제는 유튜브.

삶의 의미에 유머까지 되찾아주는 김창* 강사님과

친한 친구들 틈에 있는 것 같은 수다 떠는 카더가* 채널 등등. 덕분에 하루 정도는 거뜬하게 별일 없는 것처럼 지낼 수 있다

(쇼핑이라는 진통제는 가정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관계로 생략.)

이 외에도 현대인의 진통제는 얼마나 많은가.


진실만이 고통을 준다.
모든 진실은 고통스럽다.


고통을 회피하는 습관은 진실을 직면하지 않는 습관과

맞닿아 있었다. 진통제로 잠시라도 잊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진실은 무엇일까?

과도한 유튜브와, 술, 게임, SNS, 가벼운 만남을 즐기며,

"그냥. 쉬는 거야. 이 정도는 즐길 수 있지"라고 말하기에는

습관으로 굳어진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진실을 가리기 위해 먹는 진통제일까?




한병철 님의 고통에 대한 논의 중에

이런 것도 고통이라고 말해도 되나 싶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작은 문제라고 주머니에 넣어두기에 관계는 사람을 꽤 아프게 한다.


"고통은 결속이다. 모든 고통스러운 상태를 거부하는 사람은 결속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다. 오늘날 우리는 고통을 줄 수 있는 깊은 관계를 피한다."


헤야 할 일들을 해치우느라 이미 지친 상태.

그런 상태로 누군가를 만나서 또 상대에게 맞춰주고 맞장구쳐주느라 힘을 빼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오랜 시간 살을 맞대고 살았던 애착 티셔츠처럼 편한 친구를 찾지만 그런 친구와 깊게, 길게 관계를 맺을 능력이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다.


타자는 고통스럽다. 나와 다른 타자는 살펴야 하고, 주의해야 한다. 익숙해진 친구라 할지라도, 나와 다른 그 불편한 지점이 도드라지면 곧 타자가 되고야 만다.


타자를 호기심으로 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자의 낯설음이 익숙해지는데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타자의 불편함을 이상한 방법으로 깨려다 도리어 관계가 멀어지는 이도 있다.


그렇게 타자에 의해 실패와 고통이 쌓이면

한병철 님은 말한다.

내 자아의 윤곽선이 보인다고 한다.


"고통은 자아의 모습을 드러낸다."


타자가 고통이라면, 타자를 만날 때마다

는 고통과 함께 나의 윤곽선을 발견하게 된다.

타자를 피하고 있다면, 나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걸까?


한병철 님이 들려주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이외에도 너무 많다.

(그의 책이 좋은 점은, 어느 부분을 펼쳐 읽어도 괜찮다.

책 챕터가 연결된 듯 하지만, 그렇다고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챕터의 제목이 끌리는 대로.)




사골국물은 추울 때 먹어야 제맛이고,

믹스커피도, 산등성이에 서서 칼바람을 맞으며 마실 때

가장 달콤하다.

차갑고 매서운 고통이 없다면,

삶의 깊고 달콤함도 느낄 수 없다는 이 아이러니함.


"그럼 사골국물 안 먹고 믹스커피 안 먹을래"

고통은 그런 선택이 아니었다.

한병철 님은 이 뻔한 이야기 너머를 말하고 있었다.

고통이 없다면 자아의 윤곽선은 희미해지고,

안락함처럼 보이는 허무와 무의미만 남는다.


철학자들이 남긴 고급진 표현들과

시처럼 유려한 한병철 님의 문장으로

고통을 마주하니, 설득당했다.


"평균적인 안락함을 위해

고통을 가장자리로 밀어내지 않겠다."

고통을 피하지 않겠다.


(진통제는.... 한 번에 줄이는 건 좀 어려운데,

일단 올해 한달남은 시간동안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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