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티(Preeti)는 프리티(Pretty)해요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 이웃이었다. 앞집에 살던 프리티(Preeti).
남편은 내가 결혼해 이사를 오기 전에도 앞집에 사는 인도인 커플을 종종 보곤 했지만, 달리 교류 없이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고립되어 살던 가족. 집을 산 지 5년이 지나도록 그 어느 이웃과도 교류가 없던 이 집 식구들은 어머님이 한국으로 가시고 내가 샌프란시스코 집에 오면서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정리하고 집을 고치면서 그나마 괜찮은 물건들을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게 차고 앞에 놓아두고 뒷마당에 열린 사과를 내놓았다. 물건을 구경하고 사과를 집어든 이웃들과 사소한 이야기를 하며 내 주변에 누가 사는지, 어떤 이웃들이 있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웃들과 인사를 하기 시작했지만 앞집에 사는 사람들은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재택근무를 하는지 번쩍이는 테슬라는 항상 차고 앞에 충전 중인 채 주차되어 있고, 아주 가끔 외출하는 인도계 부부가 보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를 뵙기 위해 잠시 한국에 왔다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인천공항에 있던 차에 남편이 문자를 보내왔다.
‘자기. 내가 차 고친다고 오늘 계속 밖에 있었는데, 앞집에서 어떤 백인 남자가 쓰레기통을 집 옆으로 옮겨놓고는 집 안을 살짝 들여다보다가 가더라고. 아침부터 현관문이 열려 있었는데, 저녁 6시가 되어도 그대로 열려있어. 처음엔 환기하는 줄 알았는데 너무 의심스럽잖아. 어떻게 해야 돼?’
‘모르는 백인 남자가 다녀갔다면,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야? 혹시 살인 사건 아니야? 쓰레기 통에 시체가 있고 그런 거 아니냐구?’
당시, 용감한 형사들이란 범죄 프로파일링 프로그램에 심취해 있던 나는 곧바로 강력 사건을 떠올렸다.
‘내가 창남이랑 한 번 가봐야겠어. 누가 있는지 노크라도 해야지.’
‘그래, 이웃에게 무슨 일이 나면 안 되니 한번 살펴봐.’
잠시 후, 남편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집 문 앞까지 가봤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아. 거실 부분이 약간 어질러진 것처럼 보이긴 해. 그런데 괜히 집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오해라도 받으면 어떻게 해. 경찰에 신고해야겠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에 닿고 나는 우리의 이웃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남편에게 물었다.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경찰차 5대가 출동해서 집 안을 다 살펴봤는데, 특이사항 없데. 집주인이랑 화상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이 집안에 있는데도 작동을 안 하나 봐.”
그렇게 일단락된 앞집 현관문 오픈 사건은 3주 뒤 집주인들이 돌아오고 나서야 그 전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좀처럼 울리지 않는 우리 집의 초인종 소리에 남편이 밖을 나가보니, 앞집 부부가 초콜렛 한 상자를 들고 현관에 서있었다. 자신들이 없는 사이에 집을 봐주고 신고까지 해줘서 고맙다며 시간이 되면 오늘 저녁에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저녁 7시, 우리는 검정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커플로 맞춰 입고 앞집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사 온 마스크팩 10개 세트를 들고선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유쾌한 인도인 부부 프리티와 프리카쉬는 40대 중반, 50대 초에 결혼한 지 3년이 조금 넘은 신혼이었다. 둘 다 IT업계에 종사해 재택근무를 하는 둘은 경찰이 출동한 당일, 급하게 인도로 출국하느라 현관문이 닫았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쓰레기 수거일이었던 그날 동네 지인에게 쓰레기통을 집 앞 도로에서 원래 자리로 넣어달라는 부탁을 남겼고, 남편이 목격한 바로 그 남자를 머릿속에 소설을 써가며 살인자로 의심했다. 웃기게도 그 사람은 집주인들이 인도로 간 걸 알면서도 열린 문을 바라만 볼 뿐 닫아주지 않았다.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고 시킨 것만 한 이웃을 둔 결과다. 프리티와 프리카쉬는 집안과 밖에 설치된 동작감지 모니터로 이 모든 장면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경찰에 신고까지 해준 우리가 너무 고마웠단다.
지금까지 교류 없이 조용히 지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은 사교적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오래된 집을 고치고, 스마트 홈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과 샌프란시스코의 치안, 차 유리창이 깨진 경험까지 공통점이 많은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는 정치로까지 뻗어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그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유를 지닌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에서 정치적 견해가 맞지 않을 때 그 관계는 불편할 수 있다. 나의 20대 시절, 부모님과 달랐던 정치적 성향이 선거 때마다 여실히 드러나면서 수면 아래 있었던 갈등이 붉어지는 것이 싫었다. 개표 방송을 같이 보던 어느 해의 선거에서 아빠가 신나서 만세를 부를 때 나는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이들이라도 모든 것의 결을 같이 할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정치는 아무것도 아닌 듯 날카로운 칼처럼 마음에 쉽게 상처를 낼 수 있는 신비로운 주제다. 나는 이제 막 친구가 된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주제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 물꼬를 튼 남자들의 정치 이야기는 한 시간 반가량 이어졌다. 남편과 프리카쉬는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펼쳤다. 평소 남편과도 괘를 달리 하는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우리 부부는 정치를 주제로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치 말고도 남편과 살면서 해야 할 이야기는 많았기에.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프리티도 이 이야기에서 빠지고 싶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른 입장을 고수하는 듯한 남편과 프리카쉬는 사실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 미국 사람인 남편은 미국의 이익, 인도 사람인 프리카쉬는 인도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당을 지지했던 것이지 그들의 정치 성향은 동일했던 것이다. 한 발짝 떨어져 봤을 때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가 다른 줄 알고 열심히 싸우는 것이 조금은 바보같이 느껴졌다.
남자들이 추상적인 정치적 신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프리티는 자신이 취했던 보다 더 정치적인 행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의 테슬라의 창문이 깨지고, 노트북을 도난당했을 때의 일화였다. 테슬라는 온 사방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한 남자가 창문을 깨고, 노트북을 가져가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녀는 선명하게 적혀있는 자동차 번호판까지 가지고 경찰에 증거를 제출했다. 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샌프란시스코 내에서만 하루에 50건씩 일어나는 자동차 파손 절도사건을 모두 추적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1,000불 미만의 도난 사건은 생계를 위한 범죄기 때문에 기소를 할 수 없다는 아주 획기적인 진보주의자들의 정책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는 하루에 50개씩 파손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미술관 앞에 세워둔 나의 유리창도 새해맞이 이벤트처럼 1월 2일에 깨어졌고, 샌프란시스코 내 경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자동차 보험료도 3년 대비 30% 증가했다. 더불어 사는 삶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로서도 나와 나의 재산, 이웃들에 대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진보를 외칠 수만은 없었다.
프리티는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기로 결심했고, 자신이 아는 경찰 친구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아 범죄자의 집 앞에서 잠복까지 했다. 가까스로 경찰의 협조를 얻어 그를 기소한 그녀는 법정에 그 범인을 세웠다. 그녀는 증거로 테슬라가 찍은 범인의 얼굴과 자동차 번호판, 범행당시의 모습을 모두 제출했다. 그가 범인인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기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중 까무러칠만한 판사의 요청이 있었다. 프리티에게 그가 범인임을 그의 앞에서 증언하라는 출석요구가 있었던 것이다. 프리티 역시 그가 범인인 줄 테슬라에 녹화된 비디오를 통해 알았는데, 법정에 출석해서 그를 증언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의 얼굴을 범인에게 보여주면 이후 보복을 당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실리콘벨리의 요람에 있다는 샌프란시스코 법원의 판사가 기술 진보의 결과물을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프리티는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이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잠재적 피해자로서 경찰과 법원에서 이 문제를 심각한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했다. 적어도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다.
생활과 삶에 변화를 주는 행동이 관념적 정치토론 보다 더욱 정치적일 수 있다고 믿는 나는 프리티와의 대화가 너무 즐거웠다. 어쩜 이렇게 멋진 여성이 내 이웃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휴스턴에서도 인도인 친구 셸리니를 사귀었는데, 나는 이곳에서 또 다른 인도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우리는 정치적 성향뿐만 아니라 정치를 대하는 태도마저도 닮아있었다. 이민자 집단의 일원으로서 따뜻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또 한 명 생긴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나보다 10살이 많고, 20년 간 미국에 거주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었지만 고압적인 태도나 조언보다는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의견을 전하는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이곳에도 생긴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든든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설렘보다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난 그녀와 몇 마디만 나누고도, 내가 그녀를 엄청나게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끌림이 가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나의 남편도 프리티와 프리카쉬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에게 말했다. “자기가 저 사람을 엄청 좋아할 것 같아.” 그 말이 맞았다. 나는 그녀가 너무 좋다. 이쯤 되어 다시 돌이켜보니, 내가 미국에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들은 인도 출신 이다.
나는 전생에 인도사람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