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에 지은 미국집 고쳐 살기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온 지 두 달이 되었다.
남편의 가족들이 살던 집으로 들어왔고, 그간 방치되어 있던 집을 고치고 청소해 가며 삶의 터전을 닦아나가고 있다.
1942년에 지어진 이후 단 한 번의 보수공사만 이루어진 것 같은 이 집은 계륵 같은 존재다. 너무나도 좋은 위치에 있는 데다 구조며 골조가 좋고 넓기까지 한데, 엄청 많은 짐들과 (시어머님은 수집왕이다) 쓰레기, 먼지들이 쌓여있어 마주하고 있자면 답답함이 가슴 깊은 곳부터 턱 밑까지 차고 오른다. 또 시부모님이 언제든지 오실 수 있다는 위험요소까지 있다. (참고로 나는 엄마가 결혼 후 36년동안 친할머니와 사는 것을 봐온터라 시어머니의 존재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고 있고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DIY 적임자를 자처하는 이로써 내 짝꿍 힝구와 쿵짝쿵짝 집을 고쳐나갔다.
먼저 골치 아픈 짐들은 집밖으로 내놓아 필요한 이들이 가져갈 수 있게 하고 쓰레기를 분리해 내놓았다. 아날로그 당근의 느낌으로 주변 이웃들이 식기며 주방집기들을 싹 가져갔다. 감당할 수 없는 짐들은 트럭을 불러 처분했다. 한 짐 나가는데 1,000불.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다 내보내려면 앞으로 4번은 더 트럭을 불러야 할 것 같지만 집안에 있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잠시 못 본 척 눈을 감아본다.
다락을 침실로 쓰기 위해 몇 년 되었는지 모를 카펫을 뜯어내고 그 아래 삭아서 가루가 된 방습재도 긁어냈다. 새로 나무를 덧대고 바닥을 깔았고 페인트칠을 했다. 어느 정도 기능을 하는 침실을 완성했기에 그 후부터는 집 고치는 작업을 하는데 마음이 좀 놓였다.
주방은 타일로 깔린 빈티지한 느낌을 살리려 싱크대만 교체하려 했으나 뜯어보니 상판 나무가 물에 젖어 썩어있었다. 급하게 이케아에서 상판을 사다가 연필로 본을 떠 재단한 다음 톱으로 잘라 우리 싱크대에 끼워 넣었다. 간단한 작업 같지만 맞는 상판을 사기 위해 새크라멘토까지 왕복 6시간 운전한 것부터, 면적은 좁지만 독특한 구조 탓에 상판을 3개나 날라야 했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참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환풍기 교체까지 한 주방은 아직 바닥 교체를 앞두고 있는데 우리는 힘이 소진되어 잠시동안 이렇게 살자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
목조주택인 미국 집에서 물이 새면 나무가 물을 빨아들여 전체 골조가 약해지고 최악의 경우 썩어서 무너져버릴 수 있는 탓에 화장실 공사는 아주 큰 공사다. 게다가 이미 우리 샤워실은 물이 샌 전적이 있어 현재는 차고에 있는 간이 샤워실을 사용하는데, 처음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가도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이젠 로브를 걸치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게 할만하다. 1월에 한국에 계신 어머님이 들어오신다고 하니 그이후 어머님의 거취를 확정한 다음 화장실 공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만 불을 들여 지붕도 교체했다. 높은 곳에서 해야 하는 작업인 데다 시청에 공사 허가 등을 요청하는 행정절차까지 있어, 이건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힝구는 ‘이것처럼 쉬운 일이 없어.’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데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꺼냈다. 대부분의 경비가 인건비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나는 꼼꼼히 작업해 줄 것을 바라며 7명이나 되는 작업자들에게 부지런히 브리또와 사과, 바나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들을 날랐다. 5일이 되어서야 작업이 끝났다. 힝구랑 나랑 했다면 아마 6개월이 걸렸을 거다.
현관문과 거실 중앙 창문을 갈기 위해 견적을 내어보았다. 현관문 제작과 설치에 12,000불, 한화로 1,600만 원이 나왔다. 문 한 짝에 말이다. 이 역시도 힝구는 자기가 문을 사서 달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 물가가 아무리 “비싸다 비싸다” 하지만 300만 원이면 달 수 있는 문을 1,600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창문 가격은 생각나지도 않는다. 7,000불 언저리였던 것 같다. 우리는 창문과 문 모두 스스로 달기로 했다.
여기까지가 현재 진행상태다. 아직 버려야 할 쓰레기들이 너무 많고 정원도 가꾸어야 한다. 조금씩 관리하고 가꾸었다면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지 않아도 됐을 텐데, 유지 보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우리가 손대는 대로 집이 점점 아름다워진다는 거다. 힝구와 나의 손때가 묻고 애정이 묻은 집안의 곳곳에 우리의 취향과 우리의 향기가 스며든다. 기분이 좋다. 이제 어설픈 카페에 가는 것보다 거실에서 차 한잔 하는 게 더 좋다. 언제 이런 날이 올까 했는데, 두 달이 지나니 계륵 같았던 집에 애정이 생긴 집순이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