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끌리는 사람
텍사스의 뜨거운 7월. 수영장에서 셸리니를 만났다. 셸리니의 2살짜리 아들 쉬히드가 겁도 없이 수영장에 몸을 휙휙 내던지기에 그 용감함을 칭찬하는 말을 건네며 그녀와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He is really brave!”
“I know.”
나와 마찬가지로 작년 가을에 미국에 온 셸리니는 추운 뉴저지에서 겨울을 보내고, 3일 전, 우리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다.
같은 나이인 우린 30대 중반에 시작한 미국살이가 얼마나 팍팍하고 외로운지, 얼마나 물질주의적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뉴저지의 겨울, 남편이 출근하면 발이 묶여 밖에도 나가지 못한 채 홀로 외로움과 싸운 셸리니의 이야기는 이주 초기 3시간째 마늘을 까며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같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우린 바로 친구가 되었다.
셸리니와 대화 중 가장 흥미로운 건 바로 인도 이야기다. 때마침 그녀를 만나기 전 “인도천재”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본 터라 발전하는 인도의 중심에 엄청난 교육열과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사가 되길 종용받았고, 경쟁에서 도태된 후 약대를 졸업하고, 도저히 약사로 평생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해 MBA를 하던 중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남편은 현재 미국의 IT 회사에서 일하고, 그녀도 현재 IT전공으로 편입하여 미국에서 다시 한번 학사과정을 이수중이다. 경쟁과열 사회에서 좌절하고 피로함을 느낀 그녀는 미국이 그런 면에서 얼마나 살기 좋은지를 설파했다.
“미국은 정말 기회의 땅이야. 인도에서는 같은 노력으로 절대 지금과 같은 직업을 찾을 수도, 돈을 벌 수 없어. 네가 조금만 찾아보면 너한테도 엄청난 기회가 있을 걸?”
이 땅에서 아직 아무런 기회를 보지 못한 나는 그녀의 긍정적인 태도가 신선했고 마음에 들었다. 인도인 대부분은 자신만의 영적 스승(구루)을 두는데, 셸리니는 자신이 겪는 미국에서의 어려움을 기회로 보는 방법도 그녀의 구루를 통해 배웠다고 했다.
인도에서는 셸리니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집안이면 매일 출퇴근하며 밥을 해주고 청소를 해주는 가정부를 각각 두는데, 하루 두 끼를 매일 해주는 요리사는 75$, 아침마다 청소해 주는 사람은 17$정도를 매달 지불한다고 한다. 그 정도 비용이라면 가정부를 고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그녀 앞에서 말하긴 했지만, 그 정도 금액을 받고도 일하는 사람의 삶은 어떨까를 생각하며 인도의 뿌리 깊은 불평등에 대해서 생각했다. 상위 카스트 계급인 그녀의 이야기는 오늘날 인도가 겪고 있는 성장통에 한 겹의 럭셔리를 덮은 채 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뭐니 뭐니 해도 셸리니의 시어머니 이야기다. 고부갈등은 문화권을 막론하고 세계 어디서든 존재한다. 셸리니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 그녀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전통적인 사고를 가진 시어머니는 한국의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시집살이를 연상하게 했다. 그나마 손주가 태어나고 기세가 누그러진 시어머니는, 미국에 있는 며느리에게 하루 두 번씩 화상전화로 손주의 상태를 살핀다고 한다.
“하루 두 번? 정말 그걸 견딘단 말이야?”
“오, 진. 예전엔 정말 더 심했다고. 이젠 난 자유야.”
인도는 얼마 전 세계 최초로 달의 남극에 탐사선을 보내는 데 성공했는데 인도의 가정 안에서는 자식이 결혼할 여성의 카스트와 지참금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공존한다. 이 신비로운 나라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늘어만 간다.
“나는 죽기 전에 바라나시에 갈 거야. 그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해. 작은 집을 사서 명상을 하며 살 거야. 그리고 죽음으로써 윤회의 사슬을 끊을 거야.”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다 못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 매력적이다. 영적이며, 전통적이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인도를 가득 담은 그녀를 친구로 만들 수 있어 지난 2달간 정말 행복했다.
7월에 만난 우리는 9월에 헤어진다.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해도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어른 친구를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기에 이 헤어짐은 텍사스에서 맺은 관계 중 그 무엇보다도 아쉽다. 넓은 미국 땅을 건너 앞으로 우리가 몇 번 더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헤어진 다음도 그녀를 응원할 거다. 그녀의 아메리칸드림과, 영적인 행복을 위해 이름 모를 힌두 신에게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