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는 힘

러닝 하는 엄마 & 자전거 타는 아들

by 마담 조셉

러닝을 시작한 지는 햇수로는 3년이 다되어 가도 새벽 러닝을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다. 아들을 키우며 그저 10분이라도 쉼이란 건 늘 필요했으니 새벽에 일어난다는 건, 언감생심.. 아이들이 아프거나 해서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은 그 까마득한 시간에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킨다는 건 나에겐 그야말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하지만 늘 의욕은 있던 터라 6시 알람은 쉽사리 목록에서 삭제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간, 새벽 6시에 알람이 울리긴 해도 그건 그저 한 시간 뒤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전 경고 같은 거였다. 6시 알림을 끄고 따뜻한 이불속의 잠깐의 시간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에 의지를 꺾어버리고 나는 본능을 택했다.

생각 한켠에는 그 시간이 하루를 시작하는 황금 같은 시간이란 걸 알면서도 운동복을 갈아입고 신발끈을 질끈 묶기까지는 수많은 낭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이불을 박차고 나가 무작정 세면대에서 얼굴을 적시고 부은 눈으로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갔다. 천근만근 같은 다리는 1km를 남짓 달리고는 금방 지치는 거 같았지만 일주일에 한 서너 번을 계속 뜀박질을 했더니 몸이란 것은 금방 적응을 했다. 그리고 까만 새벽을 뚫고 집에 돌아올 때 즈음 어스름한 해가 떠오를 때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난 새벽의 힘을 믿는다.


어렸을 때 시간의 개념이란 걸 몰랐을 때 밤이란 것은 한참 까마득한 오랜 시간일 줄 알았다. 그러다 시간을 알고 불과 7시간 ~8시간 이후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무턱대고 밤을 꼴딱 새워본 경험이 있다. 아마도 학교 방학이거나 했을 때 엄마한테는 공부를 한답시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척을 하다가 마냥 시간이 가기 만을 기다렸던 거 같다. 그러다가 두루마리 휴지에 머리를 대고 한 30분씩 쪽잠을 자고 깨고 여러 번.. 애매한 새벽 2시, 잠이 쏟아지는 그 고비를 넘기면 이상하게 새벽 5시는 꽤 견딜만했다. 앞동 아파트 한 켠에 드리워진 찬란한 햇빛을 보며, 어제 져버린 해가 오늘이 되어 새로 찾아오는 그 감동은 아주 강렬했다. 나는 그런 새벽을 맞는 게 좋았다. 해돋이는 꽤 시간이 걸리는 듯해도 해가 떠오르고 나면 아침시간은 또 아주 빨리 흘러갔다. 까마득한 밤을 지나 황금 같은 새벽을 지나고 하루란 것이 시작된다... 내게는 벌써 언 30여 년 전 첫 경험이지만 그날 새벽을 맞아본 감동은 지금에서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새벽 러닝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조심해서 계단을 살살 밟아도 잠귀가 밝은 첫째가 삐걱대는 계단소리를 듣고 "엄마 어디가?" 라며 물어보았다. 그리고 겁도 없이 본인도 동행을 하겠노라 했다. 키도 쑥쑥 크도록 잠이나 더 자면 좋으련만 혹을 하나 더 달고 러닝을 하는 게 처음에는 좀 내키지 않았으나 용케도 아이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싫은 내색 없이 운동복을 입는 걸 보니 만류할 수가 없었다. 내가 노곤 노곤하니 새벽잠을 못 깨던 날도 첫째는 귓속 말로 나를 깨웠다.

"엄마 운동 나가자!"


그러니 본능에 충실하던 나에게 확실한 러닝 동기가 생겼다.

첫째는 자전거 라이트를 켜고 내가 앞서 뛰어가면 뒤에서 코칭을 해주었다. 30분 격렬한 운동 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지하창고에 세워두고 둘이서 숨 고르기 하는 5분 동안 해돋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30여 년 전에 느꼈던 그 감동을 어린 아이가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새벽에 하늘이 변하는 모습을 설명해 주자 아들은 잠자코 듣고만 있다. 아무 대꾸도 없기에 이해를 못 한 건가 보다 짐작했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고 아이는 여전히 새벽 같은 시간에 나를 깨웠다.

주말에는 시간이 넉넉해 새벽이 아닌 아침 9시에 조깅을 함께 나갔더니 돌아오는 길에 내내 시무룩한 표정이다. 그러고는 자기는 새벽에 해가 떠오르며 하늘이 변하는 걸 보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니 8시는 너무 늦고 주말이라도 적어도 7시에는 나가야 한다며 말이다. 겨울이라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기 때문에 그 차이를 설명해주니 아이는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멍해지며... 하아...

아이를 키우며 감동적인 순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내가 어릴 적 쪽잠을 자며 보았던 어스름한 새벽을 나를 닮은 아이가 그 감정 그대로를 느낀다는 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거였다. 황홀하지만 이상하리 마치 멍한 감정이었다.

많이 컸다 싶은 대견함도 있고 이렇게 세대란게 변하는 건가 하는 살짝의 아쉬움도 있고, 감정이 통했다는 것은 감격 같은 거였다. 해가 늘 떠오르고 새벽이란 것은 흘러가는 시간의 일부이지만 내겐 특별한 의미였단 걸 아들이 알아준다는 것은 참으로 뿌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 운동 메이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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