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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May 31. 2023

목마름으로..

가방 디자인 해보기

내게 목마름 같은 거였지.


독일에서 우연찮게 "옷 만들기" 아뜰리에 수업을 한 차례 듣고부재봉틀과 사랑에 빠진 순간.

드르륵드르륵 재봉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는 늘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아뜰리에를 마치고서 나는 7시간 동안 물 한 잔 안 마셨다는 걸 문을 나서는 순간 알아챘다.

일분일초가 아까워였을까. 심장을 뛰게 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설렘이었을까.

이 느낌.. 독일에 미쳐서 한국에서 독일로 달랑 편도 표을 구매했던 그때와 다르지 않다.


그날로 그 아뜰리에를 1년 등록을 하고 재봉 기계도 멋들어진 것으로 하나 사들였다. 그리고 보이는 족족 온갖 천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춘다고 했던가. 선생님은 아직 초급 단계이지만 꼼꼼하게 옷을 만드는데 재주가 있다며 칭찬해 주셨고 나는 옷을 하나씩 만들 때마다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을 했다.

'어쩜 니가 이걸 만들었냐며' 칭찬인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선물을 건네고 나면 난 늘 뿌듯했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그게 괴로운 일일까 행복한 걸까 여전한 물음은 늘 머릿속에 맴돈다.

미친 듯이 재봉틀만 붙들고 천을 자르고 붙이고를 반복하며 그러던 1년 이후 나는 문득 디자인 공부를 하러 이태리로 다시 유학을 가야 할 거 같다는 생각에 다달았다.

둘러 둘러 찾아본 디자인 학교들만 해도 비용이 만만찮다.

어렵게 꺼낸 유학 얘기에,

엄마 친구가 말이야.
일본에서 옷 만드는 걸로 10년을 공부하고 돌아왔는데도
날고 긴다는 실력이라도 막상 돈을 벌려니 쉽지 않더래.
기억나? 엄마 친구 딸, 네덜란드에서 공부했다는..
유학자금만 어마어마하게 들고 음악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한데.

이러기냐 진짜.

성공한 예술가 중에 왜 우리 엄마 친구들은 없는가.

내 과감한 용기에 힘을 실어줄 그 엄마 지인은 없는가 말이다.

에둘러 말하는 엄마의 거절의사는 서른이 넘어 소위 "예술계"로 진입해 보겠다는 나를 다시 풀썩 주저앉히기 충분했다.

예술 세계는 더 냉정하다 했던가. 나름 어렸을 때부터 재능 있다고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쏟았던 열정이, 공들인 시간과 땀, 노력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결코 돈의 크기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지인들도 동네에서 다들 이름 있는 유명인들이었지만 현실적인 문제에서 만은 피해 갈 수 없었던 듯하다.


독일에 온 지 4-5여 년, 안정된 직장에 이제 겨우 괜찮은데 나는 늘 가만있지 못하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는가. 아마도 나는 나를 늘 벼랑으로 몰아야만 되는 못돼 먹은 근성이 있나 보다.


'먹고살려면 현실과 적절한 타협은 필요하니, 취미는 그냥 스트레스 푸는 용으로 남겨둬.'

나를 잘 아는 언니가 타협안을 이렇게 주었다.

스트레스 푸는 용도라.

그 언니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내 자리가 어디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허망한 꿈을 꾸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오랫동안 그 문구를 마음에 새기며 나는 점점 재봉틀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내 재봉틀 위에는 뽀얗게 먼지가 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가끔, 힘껏 날아오르지 못하고 어중간한 선에서 날갯짓만 해대는 가여운 새 같다.




올해 2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서 가슴 깊은 곳에서 울분 같은 게 팍 올라왔다.

그때 뭐라도 시작했으면 나는 적어도 내가 이루려고 했던 꿈 근처에서라도 서성이고 있을 텐데 저만치 동떨어져서 현실이랍시고 회사에서라도 인정받는 인재가 되겠다고 삽질만 하다가 돈만 열심히 벌었던 기억 밖에 없다. 마흔을 앞두고 이젠 꿈이 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게 더 미칠 노릇이다.


왜 나를 믿어 주지 못했어!
해보겠다는 나를 왜 그냥 이렇게 뒀냐고.


전화기에 대고 엄마한테 볼멘소리를 한창하고 나서야 나는 엄마 아빠에게 잘못을 떠넘겨야 그냥 속이 시원할 거 같았다. 결단할 수 없었던 내 잘못이었다는 것을 그냥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내가 너무 두려웠다.

그 몫을 감당해 낼 자신이.

오롯하게 내 밥벌이를 하는 것 만으로 나는 숙제를 다 했다고 생각했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집구석에서 찬란했던 그 꿈 따위야 늘 뒷전이 됐던 건 순간순간 내 선택이었다.

사실 엄마 아빠가 가라고 등을 떠밀었더라도 내가 훌훌 털고 갈 수 없을 위인이었다.


이판 사판이다. 나는 이제 두려운 게 없다.

독일에 살던 내가 프랑스 남자를 만나서 패션의 중심인 파리에 살게 됐을 줄 누가 알았을까.

더구나 회사를 두 번이나 잘린 것은 그야말로 지금이 운명의 때라고, 신의 부름라 믿어본다. 

회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하는 그날로 나는 다시 재봉틀 앞에 앉았다.

지금 내가 들이는 시간.

천을 자르고 기우고..  7시간 물도 안 마시고 첫 아뜰리에를 들었던 그때처럼 나에게는 재봉이 잡념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니까.

회사에서 잘 나가는 인재 되기, 적당한 현실과 타협이라는 것들은 잠시 미뤄두자.

스트레스 푸는 용도 말고 돈을 벌수 있는 걸로 현실화를 해보자.

미끄러지면 돈은 또 나가서 벌면 되니까. 다시 일하러 나가게 되면 월급 많이 못 벌면 적당히만 벌고 살지 뭐.


'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적어도 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은 하루에 3시간씩을 들여서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하다. 내가 디자인 자격증이나 그 공부를 해본 건 아니지만 눈썰미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므로 꾸준히 연구하는 시간만 더해지면 뭐라도 하겠지.

고집인지 잊기 어려운 꿈인지 딸의 긴 연설을 듣고는 엄마는 결국 해보고 싶으면 해 보라 하신다.

이젠 마흔을 앞두고 이걸 다시 하겠다니 엄마도 나를 말리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미안 엄마..


2019년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로 대상의 영예를 안았던 김혜자 배우님의 수상 소감을 끝으로...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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