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연필

by 이은주



이 연필 안에는

한 번도 씌어지지 않은 단어들이

웅크리고 있다.

한 번도 말해진 적 없고

한 번도 가르쳐진 적 없는 단어들이.


그것들은 숨어 있다.


그곳 까만 어둠 속에 깨어 있으면서

우리가 하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사랑을 위해서도, 시간을 위해서도, 불을 위해서도.


연필심의 어둠이 다 닳아 없어져도

그 단어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공기 중에 숨어서.

앞으로 많은 사람이 그 단어들을 연습하고

그 단어들을 호흡하겠지만

누구도 더 지혜로워지지는 않는다.


무슨 문자이길래 그토록 꺼내기 어려울까.

무슨 언어일까.

내가 그 언어를 알아차리고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것들의 진정한 이름을 알기 위해.


어쩌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이름을 위한 단어는.

오직 한 단어일지도.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일지도.

그것이 여기 이 연필 안에 있다.


세상의 모든 연필이 이와 같다.



W. S. 머윈

이 시의 원제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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