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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밀 May 16. 2023

엄마의 집된장

시금치 된장국


엄마가 직접 된장을 담그기 시작한 건 내가 나주에서 세종으로 이직을 한 무렵이었다.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버거움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다소 실망한 기분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이라서 그래. 3개월만 지나면 지금보다 괜찮을 거야. 다시 3개월이 지나잖아, 그러면 더 괜찮아져. 그러다 보면 금방 1년이 되고 3년이 돼. 엄마는 다 아는데. 은이도 해봐서 잘 알 거야." 그리고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며칠 뒤에 엄마가 된장을 담그겠다고 말했다. 된장을 담근다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신선하고 놀라웠는지 모르겠다. 마당도 없는 아파트에서 메주를 으깨고 치대기는 쉽지 않을 텐데. 걱정이 앞섰지만 엄마에게는 좁은 베란다도 무거운 항아리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택배로 받은 첫 된장은 짙은 고동색이었다. 짠맛이 강하니까 시판용 된장과 5:5로 섞어 쓰라고 했다. 나는 엄마 말대로 집된장을 조금씩만 사용해 수육도 삶고 찌개도 끓여 먹었다. 그러는 동안 1년이 지났다. 엄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딱 세 달만 그리고 다시 세 달만, 그렇게 조금씩 버티다 보니 힘든 순간은 어느덧 지나가 있었다.


얼마 전, 엄마의 두 번째 된장이 완성됐다. 항아리에서 퍼 담은 된장은 아주 밝은 황금색이었고, 그 맛이 너무도 훌륭하여 시판용 된장과는 결코 섞어 쓰면 안 되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남아 있던 된장을 다 먹을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다가 드디어 오늘, 아껴놓았던 두 번째 된장을 사용해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기로 한다.




1. 1L의 물, 집된장 한 큰 술 반, 코인 육수 2개, 새우가루 조금 넣고 팔팔 끓인다.

2. 손질한 시금치와 다진 마늘을 넣는다.

3. 시금치 숨이 죽으면 두부를 넣고 조금 더 끓인다.


호호 불어 한 입 가득 떠 넣으니 구수한 된장맛과 개운한 감칠맛이 어우러진다. 시장기를 달래며 뜨끈한 국물을 몇 차례 들이켜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쌀밥 한 술을 떴다.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이 꿀맛인 날이 있다면 바로 오늘이다.



살면서 엄마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 손에 익지 않고 배워보지 않았던 일들 일색이었고, 변화무쌍한 환경이었지만 우리들, 우리 가족을 위해 무던히 견뎌냈다. 그 매콤한 인생의 맛을 엄마는 더 잘 알면서 언제나 모르는 척 나를 다독인다.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타지에 사는 딸의 하소연을 등에 업고 엄마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된장을 담갔을까. 더 많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깊은 사랑의 맛을 알기에, 된장 속 콩 한 톨도 나는 결코 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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