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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Jan 31. 2024

검색이 항상 내 편인 세상은
좋은 세상일까?

검색 엔진의 검색 필터로 인해 불신과 혐오가 확대-재생산되는 나쁜 세상

2007년 6월 6일.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한 소문이 미국 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2008년 11월 4일에 있을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 중 한 명에 관한 소문이었다.

소문의 핵심은 당시 민주당 소속 대통령 후보 버락 오바마(Barak Obama)가

미국 출생이 아니라는 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오바마가 미국 출생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오바마가 미국에서 출생한 기록이 없으며, 등록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소문이다.

미국 영토에서 출생한 사람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도(속지주의)를 운영하는 미국에서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미국 시민권이 없다는 뜻이고,

미국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일이고,

미국 시민이 아닌 자가 한 정당을 대표하여 대통령 후보가 된 것 자체가 무효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나라-한국-는 속인주의다. 부모가 한국인이면,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든지 한국 시민이다. 그래서 미국에 원정 출산을 가서 아이를 낳을 경우 아이는 일시적으로 이중 국적이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 소문이 시작되었을 때, 오바마 대선 캠프는 별일 아니라고 무시했다.

너무 말도 안되는 소리라서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미국 사회에서 미국 시민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인데, 뜬금없이 출생지 문제라니.

이런 소문 자체가 인종차별적이기도 했다.

오바마가 흑인이고, 흑인은 미국 사회의 주류가 아니며,

미국 사회의 주류가 아닌 사람은 미국 출생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적 비약이 적용된 것이다.

과연 오바마가 백인이었어도 이런 소문이 있었을까?

너무 명확하게 이런 소문이나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이런 소문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의 정치인 출생지가 의심된다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는

흑인과 같은 유색인종에게만 적용되는 색안경이다.


그런데 이 말도 안되는 소문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오바마가 미국 땅에서 태어난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내용을 믿는 것이 아니었다.

오바마는 미국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아프리카 땅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오바마는 아프리카 사람이지, 미국 사람이 아니기에

대통령 후보 자격 자체를 박탈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다.

루머(rumor)가 금방 없어지리라고 생각했던 오바마 대선 캠프는

루머가 1년 가까이 지속되고, 확대 재생산 되자 무척 당황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처음엔 굳이 이렇게 까지 할 생각이 없었지만,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오바마의 출생증명서를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2008년 6월 12일이었고, 미국 대선이 5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증명서에 의하면, 오바마는 미국 출생이 확실했고, 미국 시민이 확실했다.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자!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오바마는 미국 출생! 끝?


이렇게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이 이야기는 이렇게 아름답게 끝나지 않았다.

증명서 공개 이후, 논란의 파급력이 줄어들긴 했지만, 논란 자체가 사라지진 않았고,

2008년 11월 4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때까지 지속적으로 오바마를 괴롭혔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미국인 10명 중 2명(20%의 미국인)은 오바마가 미국 출생이 아니라고 믿고 있고,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똑똑한 미국 사람들이 이런 말도 안되는 가짜 뉴스에 휘둘리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드디어 심리학자들이 나설 차례다.

이런 일이 있을 때 가장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들 아니겠는가!

과연 심리학자들은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진단했을까?

연구 결과는 정말 의외였다.

구글과 같은 검색 사이트가 제공하는 '강력한 검색 필터'가 가짜 뉴스의 확산과

루머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보겠다. 검색 사이트들은 각자 나름의 검색 필터(검색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

사용자가 검색어(검색 문장)을 입력하면,

사용자가 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상의 사이트 주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사용자가 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이트를 제공하기 위해 인공지능은 정말 최선을 다한다.

사용자가 과거에 검색했던 것들, 좋아요를 눌렀던 것들, 클릭했던 것들, 구매한 것들,

사용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검색하거나, 좋아하거나, 클릭하거나, 구매한 것들

사용자와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검색하거나, 좋아하거나, 클릭하거나, 구매한 것들을 종합하여

사용자의 입맛에 딱 맞는 사이트가 검색 결과 최상단에, 적어도 첫 번째 페이지에 오도록 만든다.

검색 엔진은 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것, 보고 싶어 하는 것,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을 언제든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소리다.


오바마의 출생지 논란때도 이런 검색 필터가 열심히 일했다.

오바마가 미국 출생이 아니라고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오바마, 출생' 이런 식으로 검색을 했을 때,

오바마가 미국 출생이 아니라는 그럴듯한 증거(검색 결과)를 열심히 제공한 것이다.

이런 검색 결과를 받아든 사람들은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고,

확신이 행동으로 이어져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하게 만들었다.

물론 오바마가 미국 출생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위한 검색 결과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검색 결과는 차츰 힘을 잃어 갔다.

왜냐고? 오바마가 미국 출생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런 검색 자체를 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직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만 검색을 하게 되면서, 오바마의 출생과 관련 기록을 검색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줄 검색 결과들만 제공되게 되었다.

이게 무서운 것이다.

가짜 뉴스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기억에서 잊혀지지만,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찾아보는 사람들에게는 확신이 된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는 그럴듯한 검색 결과들이 언제든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검색 엔진들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 개발자들과 대중들은 검색 엔진이 세상의 편견을 줄이고,

가짜 뉴스를 줄이는 것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은 그 반대의 일이 발생하고 있다.

개인 맞춤형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검색 엔진은 편중된 사람들에게 그 편중에 부합하는 정보를 제공하면서

더더욱 편중되게 만든다.

검색 엔진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세상의 편견과 이견이 줄어들지 않는다.

갈수록 집단은 양극화 되고, 극단적 신념을 가지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혐오하고, 공격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검색 엔진이 처음 만들 때의 아름다운 세상은 온데간데 없고,

집단 극화가 이루어져 반목하고, 갈등하는 어두운 세상만 나타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검색 엔진을 다 없애버려야 하는가?

이런 극단적인 생각은 언제나 정답이 아니고, 잘못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검색 엔진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검색 엔진이 제공하는 검색 필터가 이런 양극화를 조장한다는 것을 알고,

정보를 얻는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책에서 정보를 얻고, 도서관에서 정보를 얻고, 직접 취재를 하고,

논문을 읽으면서 과학적 정보를 얻고, 자신이 들은 내용을 무분별하게 퍼나르지 못했던

아날로그 사회의 방식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디지털이 편리하다고 모든 곳에 디지털을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탈디지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다이어트 문화, 아날로그 시간을 늘리는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지금의 문화는 인공 지능이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자기 멋대로 조작하여 인간 사회를 분열시키기에 딱 좋다.

새로운 아날로그 문화 운동이 필요하다.


책을 보는 시간을 늘려서 인터넷 사용 시간을 줄이고,

책을 보는 시간을 늘려서 유튜브 사용 시간을 줄이고,

책을 보는 시간을 늘려서 검색 엔진 사용 시간을 줄이고,

책을 보는 시간을 늘려서 온라인 쇼핑 시간을 줄여야

책을 보는 시간을 늘려서 인공지능에 의해 조작된 세상을 만날 시간을 줄여야

세상의 갈등과 양극화, 혐오, 분노, 공격을 줄일 수 있다.


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배하게 되는 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다. 그런 일이 발생 가능이 없으니까.

오히려 나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로 인해 극단화된 인간끼리 싸우다가 멸망하는 것이 두렵다.

이건 지금도 현실이니까.


구글 검색이 항상 내 편인 세상은 극단적인 세상이고, 혐오로 가득한 나쁜 세상이다.

인터넷하는 시간이 줄고,

독서, 운동, 일기쓰기(글쓰기), 만들기, 산책 등의 건강한 활동 시간이 늘어

구글이 항상 내 편임을 거의 경험하지 않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갈등과 혐오를 줄이고 싶다면, 구글이 내 편임을 경험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참고문헌

Perry, B., & Olsson, P. (2009). Cyberhate: the globalization of hate. Information & Communications Technology Law18(2), 185-199.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Christin H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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