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의 효과는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심리에 달렸다
이 세상에는 지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교 수업에도 지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친구들간의 만남에도 지각하는 사람이 있고,
출발시간 맞춰놓고, 여행을 갈 때도 지각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어린이집 하교 시간에도
지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것이다.
사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면,
결국 선생님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은행이 4시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은행 직원들이 4시에 퇴근하는 것이 아니듯,
어린이집 프로그램이 3시에 끝난다고,
선생님들이 3시에 퇴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뒤이어 처리할 일들이 있고,
내일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몇몇 지각하는 부모들로 인해
아이를 돌봐야 하는 보너스아닌
보너스 업무가 생긴다?
무척 곤란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혼자 집에 가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아동학대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문제다.
이스라엘의 한 어린이집에서도
이런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자꾸 늦는 부모님이 계신 것이다.
그래서 특단을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지각비를 물기로 한 것이다.
10분 지각할 때마다 1만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자! 어떻게 되었을까?
지각하는 부모가 획기적으로 줄고,
아이들은 모두 제시간에 집으로 갔을까?
헐...
이게 웬일.
지각하는 부모가 줄기는커녕,
지각하는 부모가 늘었다.
지각비가 지각하는 부모를 줄이는 효과는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인간의 심리가 나타난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10분 당 지각비 1만원이 처벌로 작용하길 바랬을 것이다.
학부모들이 1만원을 굉장한 손실로 여기고,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굉장히 노력할 것이라고 기대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그렇지 않았다.
10분 당 만원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비용으로 여겼다.
심지어 학부모들중에는
아이를 더 봐주는 것에 대해 지불하는 정당한 비용으로 여겨 버렸다.
그리고 자신 있게 늦게 왔다.
아이 더 봐주는 비용을 내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심리의 오묘함을 깨닫고,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처벌을 진행하는 사람이 처벌이라고 이름 붙인다고
처벌이 아니다.
처벌을 받는 사람이 그걸 처벌이라고 느껴야 처벌이다.
학생들에게 처벌을 해서 뭔가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을 때,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학생들이 이걸 처벌이라고 여길까?
팀원들에게 처벌을 해서 뭔가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팀장이 있다면, 잠시 멈춰서 생각해봐야 한다.
내 팀원들이 이걸 처벌이라고 여길까?
처벌은 심리의 문제이지,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돈으로 처벌하는 것은
언제나 이런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국립공원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사람을 벌금으로 처벌한다?
그 사람은 벌금을 쓰레기 처리 비용 정도로 여길 수 있다.
차라리 국립공원 화장실 청소 100시간으로 처벌하는 것이 더 처벌 같을 것이다.
어린이집에 지각하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이는 지각을 부추길뿐이다.
지각하는 부모는 일정기간
아이를 맡길 수 없게 하거나,
지각하는 부모가
일일 방과후 교사를 하는
봉사를 시킨다거나 하는 것이
더 강력한 처벌이 될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들도 지각을 하면,
지각비를 내게 하고,
연습에 빠지면 돈을 내게 하고,
경기 중에 실수를 하면 돈을 내게 하는데,
프로가 된 지 얼마 안 되서
연봉이 낮은 선수들에게는
이것이 엄청난 처벌이 될 수 있겠지만,
연봉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선배들에게는
이것이 처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도 처벌이 되려면,
연봉이 높아진 것의 비율에 맞게
지각비나 실책에 대한 벌금을 올려야 하겠다.
처벌이 처벌같지 않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의Maria Lu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