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중독

by gloomee

모든 인간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관계에 종속된다. 작은 세포 하나가 자궁에 착상하는 순간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낯선 엄마와 연결 지어진다. 관계 중독은 그렇게 어느 순간 시작된다.


관계의 형태는 다양하고 때로는 아주 기형적이다. 온전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고 자괴감 없이 죽도록 미워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진득한 애착 관계가 생기기도 하고 사랑을 구걸하는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도 가능하다. 불우한 환경에서 나를 키워낸 부모나 돌아오는 월요일을 저주하는 이유가 되는 직장 상사 같이 선택하지 않아도 강요되는 관계도 있다. 한 번 건네었던 마음을 회수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중독의 부작용을 더 강하게 실감한다. 중독의 가장 큰 부작용은 회복을 위해 또 다른 관계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이다. 관계에 가졌던 기대는 언제나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마는데,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보면 그 사람의 중독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심한 중독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빠른 정리 후 곧바로 새로운 사람을 찾는 사람의 중독 정도가 더 심한 경우가 많다. 길이와 깊이에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관계가 형성되고 결국 사람은 타인 없이 살 수 없는 관계 중독자가 되어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는 음울한 외로움이 기저에 깔려있다. 외로움은 때때로 몸집을 키워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고독은 생각의 갈무리가 필요한 사람, 소음으로부터의 완전한 차단을 바라는 사람, 자기 성찰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 세상과의 단절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필연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그 아무리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일평생 관계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관계에서 파생되는 지독한 불순물들을 계속해서 걸러내다 보면 감정의 삭제를 넘어 존재 자체가 투명해져 버린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누구도 손을 뻗어주지 않는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떨어진 한 방울의 비처럼 수많은 관계의 틈에서 서서히 말라죽어갈 것이다. 겹겹이 쌓인 외로움이 고독을 낳지 못하도록, 시간에 걸쳐 피어난 고독에 침식되지 않도록, 예측할 수 없는 관계 속에 나를 던져 넣어야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중독에서 오는 희로애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개인의 독특한 취향을 알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배적하는 이들은 신경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쉴 새 없이 쳐내며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노력하고 자기 연민에 취한 이들은 고통을 수반하는 파괴적 관계에도 기꺼이 응한다. 감정은 배제한 채 이성적인 관계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성적 판단 없이 감정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기준과 잣대로 관계의 옳고 그름을 정하고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개인의 우주 안에서 충돌하며 또 유영하며 일생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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